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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 - 글로리아 스타이넘, 삶과 사랑과 저항을 말하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서맨사 디온 베이커 그림, 노지양 옮김 / 학고재 / 2021년 7월
평점 :
우리사회는 지금 남녀의 성 갈등이 매우 심한 상태에 처해 있다. 물론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로 바쁘거나 자기의 일에 집중하는 성실한 사람들이나 보통의 건전한 상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리석어 보이는 갈등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들이 겪어온 차별과 억압, 폭력의 상처들을 생각하면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 양상이다. 점점 악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어떻게 여겨지고 있냐를 살펴보면 페미니즘의 본질과는 떨어져도 한참 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누구나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의 저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명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업적은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시민운동과 정치운동이다. 이 책에서는 그녀의 생각과 지난 삶의 흔적이 그녀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그녀가 만들어낸 다양한 경구들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당연히 “페미니즘”은 무엇인가에 대한 그녀의 정의도 여러 표현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것들을 하나로 모아보면, 결국 페미니즘은 어떤 갈등이나 대립, 파멸을 의미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모든 차별과 폭력, 억압, 부당한 권력의 압제로부터 자유를 되찾자는 가치관을 품고 있는 것이 페미니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본래의 인간이 지니고 있던 고유의 존엄성과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적극적 움직임이고, 그 첫 단추로 여성이 그동안의 역사에서 겪어온 폭력과 차별, 억압으로부터의 피해를 공론화한 것이다. 흔히 여성성이라고 알려진 복종과 수동적 행태의 의미를 뒤집어 모든 것을 인내하고 포용하고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남녀 할 것 없이 회복해야 할 궁극적인 긍정적 인간상으로서의 여성성을 회복하자고 나선 운동인 것이다. 남성은 잃어버린 여성성을, 여성은 잃어버린 남성성을 각자 겸손함으로 되찾아 서로의 인격적, 정서적 균형을 맞추어나가는 것, 나는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의 본질을 이렇게 이해했다.
이 책의 원제는 저자가 성경 구절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만들어낸 표현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나 그에 앞서 먼저 너희를 분노케 하리라(The truth will set you free, but first it will piss you off!)”인데 이걸 왜 굳이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으로 번역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의문은 제자리다. 저자의 목표가, 비록 여성문제로 출발하고 있기는 해도 궁극적으로 인종과 성의 구별로 상징되는 모든 형태의 악의적이고 계획적인 차별을 타파하는 데 있다면, 한국어판 제목 번역은 그 의미를 축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은 페미니즘 시민운동가로서의 저자와 그 동료들의 신념을, 짧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강렬하고 멋진 경구들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여기에는 언어가 가진 확산성의 힘과, 민주주의의 성공은 진정한 평등이 실현되는 건전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인류를 고통스럽게 하는 폭력의 역사의 첫 단추가 가정 내 여성 폭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건 딱 한 가지 - 바로 인간을 위한 인간애라는 것 등 하나하나 보물 같은 가르침으로 채워져 있다.
사회운동의 참 의미와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페미니즘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이 책을 통해 좀 배웟으면 좋겠고, 이런 내용들이 토론에서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페미니즘 논쟁은 너무나 저급하고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 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