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늬들 - 이병철 사진 에세이
이병철 지음 / 새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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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말고다른 나라로 여행을 많이 하며 경험이 축적된 사람들은 마음 속에 또 다른 세계를 품게 된다이 세계는 현실 세계의 괴로움과 답답함슬픔을 현실 차원에서 간단히 해결할 수 없을 때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비슷한 예로 시를 비롯한 문학은 현실을 견디게도 하지만 현실이 아름답다는 착각을 통해 세상을 살 만한 곳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문학에는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어 있고 성실한 독자라면 그 세계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간 사랑의 무늬들에 포함도니 무늬라는 단어의 느낌은 그 순간의 움직임이나 스침으로 형성되는 흔적이다하지만 흔적이라는 것은 그 속성상 현재적이기보다 과거에 치우쳐 있다따라서 사랑의 무늬라는 것은 사랑의 기억추억그리움 같은 것을 의미하는 표현일 것이다한편 이 책의 저자는 무늬를 상처와 흉터의 비유로 쓰기도 한다.







이 책에서 그 무늬다시 말해 기억이나 추억의 조각들은 대략 두 갈래로 펼쳐진다하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상황들에 대한 애정다른 하나는 옛사랑과의 추억처럼 보이는 그리움의 기억들이다그래서인지 두 번째 갈래로 인도하는 이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언뜻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일본 소설이 떠오른다츠지 히토나리가 남자의 입장에서에쿠니 가오리가 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들이 각각 한 권씩한 쌍을 이루는 독특한 소설이다왜 이 소설이 떠올랐냐 하면 사랑의 무늬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마치 아직 남자편만 출간된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책에 등장하는 그녀는 같은 시공간에서의 생각과 느낌행동들을 그녀의 입장에서 어떻게 묘사할까 궁금해진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들은 다음의 몇몇 장면들이다싸움에서 진 지친 수사자가 목을 축이기 위해 마신 물이 넘어가지 못하고 뜯긴 목 사이로 흘러나오는 장면을 떠올리는 장면은 그 장면을 보았던 나의 기억도 소환시켜 잠시 먹먹한 감정에 잠겨들게 했다또 별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낮 동안 세상의 모든 별을 씻어 밤에게 쏟아주는 하늘이란 표현은 수많은 하늘에 대한 표현이 넘쳐나는 가운데서도 독창적이라는 느낌이었다또 이 책에는 윤슬이라는 예쁜 단어가 두 번 정도 나오는데사전을 찾아보니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한다는걸 처음 알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성공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다.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이 성공이라면다른 것을 얻는 일은 실패가 아니라 다른 성공이라고나는 내 삶의 모든 다른 성공들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문장은 실패라고 다 실패가 아니다라는 의미에 있어서는 다소 진부한 면이 있지만그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과 단어 선택에(‘다른 성공’) 있어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로코는 술 판매가 금지되어 있고 허가된 업소에서만 사거나 마실 수 있다는데그 업소에서 미리 사둔 술을 숙소(까지 적용되는 줄 모르고)에서 마시다가 거기서까지 제지를 받는다그런데 거기 관리인이 주의와 함께 빈 페트병을 내밀며 옮겨 마시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저자는 이것을과거에 신림동 순대촌에서 교복 입은 과거의 저장게 칠성사이다 병에 담은 소주를 팔았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기쁨이라고 표현한다여기서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이 법을 지키는 토대 위에서 위법이나 편법을 통해 누리는 기쁨이나 이익에 어떤 의미나 가치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볼 수 있다나는 이런 게 불편하다한편 그런 위법과 편법이 있기에 관광지로서의 모로코가 이득을 보고 있다는 점도 엄연한 사실이다하지만 어찌 하랴그 이기심이 인간의 외적 생활의 풍요를 가져온 동력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자신의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경험과 통찰들을 사진과 산문시 등을 통해 다채롭게 풀어놓고 있다수많은 여행지에서 담은 풍경들은 매우 아름답거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었고때로는 사진과 글이 서로 어울리지 않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느낌도 있어 한 번 더 내용을 들여다보게도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도 한다지나간 삶의 흔적들에 담긴 저자의 감수성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었다.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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