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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문명 1~2 - 전2권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개미’에서부터 최근 출간된 ‘기억’, ‘심판’에 이르기까지 근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내에 나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나 관련 서적은 단순 계산으로도 100종이 넘는다. 그만큼 베르나르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작품 성향이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는 그의 작품이 그의 세계관을 맴도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반대로 이미 작가에 의해 창조된 세계관 자체의 방대함 안에서 오랜 세월 누리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10대 때의 어느 시점에 ‘개미’로 베르나르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서는 몇몇 작품을 건너뛰기는 했지만 꾸준히 그의 작품을 읽어왔던 것 같다.
앞서 얘기했듯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세계관은 ‘개미’에서 출발하여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천사들의 제국’, ‘신’ 등으로 어느 정도 테두리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하고 있다. 이후의 작품들은 그 세계관에서 이전 작품의 확장이나 부분의 확대, 변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출간된 『문명』은 이전에 출간된 ‘고양이’의 속편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독립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볼 수 있는데, 독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전의 작품들에서 나왔던 친숙한 이미지 혹은 장치들이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작품으로 한정해도 ‘기억’에서 나왔던 최면을 이용하여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는 설정이나 ‘심판’에서 볼 수 있었던 재판의 이미지 등이 『문명』에서 효과적으로 재활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문명』의 주인공 바스테트는 세 살짜리 암고양이며 완벽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다. 청결 강박증이 있고 거만하며 앙칼진 성격에다 식탐이 많고 잔인하다.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독립성과 활발한 성생활, 그리고 철저한 실용주의(이기주의와는 다른 기본적 생존 지혜라고 우김)와 강한 자기애는 재미있고 독특한 도도함을 지닌 캐릭터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바스테트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그동안 인간들이 저질러 왔던 테러, 전쟁, 전염병 등이 쌓이고 쌓여 ‘대멸망’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지구의 인구는 80억에서 10억으로 줄어들었고, 세상은 쥐떼들이 점령하게 된다.
쥐떼들이 세상을 뒤덮으며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것을 알게 된 바스테트는 자신을 따르는 고양이 동료들, 그리고 함께 있는 인간들과 함께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새로운 피난처를 찾아나선다. 첫 번째 피난처에서 쥐떼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한 바스테트 공동체는 안전하게 두 번째 피난처로 이주를 하게 되지만 세력이 더 막강해진 쥐떼의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선다. 갖은 고생 끝에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다다른 그들이 본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 작품에서 특징적인 캐릭터는 연회색 몸통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샴고양이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는 이마에 USB 단자가 있고 그것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특이한 고양이다. 이런 특징은 피타고라스 한 마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르세대학이라는 곳에서 인간이 어떤 동물실험을 진행하면서 실험용으로 사용했던 동물 중 하나가 피타고라스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위험요소로 등장하는 쥐떼의 우두머리도 바로 이 실험실 출신이다. 쥐들의 대규모 공격에 생존을 확신할 수 없었던 피타고라스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것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바스테트는 그 중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중심 사건은 이렇게 인류가 자초한 위기와 과학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특별한 능력을 얻은 동물들의 의해 발생한다. 이 사태에서 살아남은 인간과 고양이들은 과연 세계를 정복한 쥐떼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을까? '제3의 눈‘이라 불리는 인터넷과 연결가능한 USB 단자를 이마에 지닌 동물들은 인류가 멸종된 뒤 인류를 대체할 대표 지구 생물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베르나르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이야기와 지식(정보)이 한 장씩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 이전 작품들의 장치들이 효과적으로 사용되면서 베르나르 작품의 독자들에게 확장 혹은 연결되는 세계관을 경험하게 한다. 이번 작품이 수많은 작품들에 의해 구축된 베르나르의 세계관 안에서 같은 재료를 모습만 조금 바꿔 교묘하게 재활용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더 기발한 상상력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인지 그 판단은 독자 개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 네이버 「북뉴스」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