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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바이러스다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21년 4월
평점 :
‘자아’란 무엇인가? 이 책의 제목인 『자아는 바이러스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흔하게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이 ‘자아’라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검색창에 ‘자아’를 입력하게 엔터키를 친다. 당장 떠오르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 여러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 결국 자아란 그 기원이 내부이든 외부이든 상관없이 반응을 필요로 하는 껍질을 가진 내부가 필요하고 그 껍질을 건드리거나 파괴하려는 외부의 작용이 필수적이라는 걸 생각해볼 수 있었다. 즉 외부 작용과 내부 반응의 발현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생각하고 표현하는 ‘자아’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보고 있자니,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유전자’의 개념이 생각났다. 인간은 단지 유전자가 대를 이어 생존하기 위한 이동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자아는 그것을 포괄하거나 초월하는 개념처럼 읽힌다. 처음 자아가 발현되는 순간부터 인류의 발전 양상에 따라 새로운 속성들이 더해지거나 새로운 속성으로 변해가는 자아의 초상을 저자가 여러 장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처음 인류가 다른 생명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조금 숨돌릴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자아라는 것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불을 발견하고, 추상적인 가치를 생각해내게 되고, 종교란 것이 생겨난다. 특정 인물을 신격화한다거나 영웅화하는 것, 신화는 자아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오랜 시간 자아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후의 과정이 이 책에서 흥미롭게 소개되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지는 기독교 중심의 자아 정체성은 그 내부적 모순으로 인해 붕괴되고 마는데, 이때 구원자처럼 등장하는 인문주의의 영웅들, 데카르트, 흄,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등으로부터 나온 철학은 자아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고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다.
홉스와 칸트, 루소,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의 무의식,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지성사가 ‘자아’를 재정의하거나 발전시키는 과정을 묘사하는 이 책의 흐름은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의 낯설음을 잊게 만들며, 좀 더 지적인 몰입감을 갖게 해준다. 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의 정신과 이성 중심의 사고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자아가 경험과 측정, 검증이라는 과학적 사고방식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고 의미를 드러내는 서술 과정도 이 책을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저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변화된 세상의 양상에 굉장히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은데, 나는 좀 의견이 다르다. 사실 과학과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좀 더 상황을 잘 파악하게 되어서 그런 것이지, 과거에 존재의 근거 자체에 의심과 불신, 체념을 가지게 한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은가. 유별나게 코로나에 그렇게 의미를 둘 필요가 있을까? 우리 시대의 사건이기에 더 크게 와닿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무슨 종말론이나,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거나 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 혹은 인식은 동시대에 대한 과한 의미 부여, 혹은 과잉된 시대 의식이거나 일종의 교만일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