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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의 유산
장웨이 지음, 조성환 옮김 / 파람북 / 2021년 3월
평점 :
최근 출간된 홍준성 작가의 「카르마 폴리스」란 소설 속 등장인물 간의 대화에서 성경이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해석에 저항하는 텍스트의 속성’ 때문이라고 서술된 장면이 있다. 이는 곧 성경이 메시지의 통일성과 일관성 뿐만 아니라 그에 준하는 여러 방면의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성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오래도록 인류 역사에 살아남아 큰 영향을 끼치는 텍스트는 단순하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으면서도 아무나 그 의미를 깊이 있게 체득할 수 없는,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아무나 그 의미를 확장시킬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도연명의 유산』에서 다루고 있는 4세기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작품들은 오래도록 그 생명력과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기에 위대한 인류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비견될 만큼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이 그 시대의 사회상이었던 위진 시기에 살았던 도연명은 시대의 환란 속에서 특정 무리에 속하거나 특정 권력을 쫓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았고, 군체 밖의 특별한 개체로서 존재했으며, 두드러진 그림자의 존재감으로 스스로 음미하며 살아가는 즐거움 찾으며 살았다. 그의 삶은 외롭고 고독한 느낌이 짙었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이는 일이 드물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적 삶을 살아냈지만 반면 고난과 괴로움을 극도로 인내하며 살아가는 삶이기도 했다. 아무런 구속이 없는 상태로,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사라져간 인물이다. 현재는 그가 남긴 100여편의 시문을 통해, 그가 역사상 얼마나 중요한 흔적을 남기고 갔는지 알 수 있다.
도연명은 당시 평균적인 지식인과 예술가의 모습을 뛰어넘어 소박한 자아의 생활을 추구했다. 그러면서 어떤 하나의 사조에 치우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독불장군은 아니었다. 당시 혼란스런 세태에서 등장한 다양한 주장이나 이론들을 다방면으로 시험해보고 유익한 것은 수용하는 유연한 모습도 보여준다. 그는 전통과 풍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대 풍조의 산아이며 일부였다. 그의 탁월한 업적은 완전한 독립적 창조나 시대에 대한 극단적인 반항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또한 예술과 사상의 차이에 대해 논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둘 다 어려운 시기에 특출한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건 동일하지만, 예술은 난세에나 태평성세에나 그에 맞게 표현될 수 있는 반면, 사상의 영역에서는 시절이 좋으면 열매를 맺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상이란 개인의 독창성의 발현에서 나오는 것인데, 살기 좋은 때에는 주류 의식에서 벗어나 독창성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개체와 집단, 정글의 법칙과 문명의 법칙의 대비에 관한 논의가 책 전반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도연명이 당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분노와 한탄을 쏟아놓을 때, 그의 계획적인 회피와 자아 환기는 이해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설명되고 있다.
혼란스러운 시대의 대명사와도 같은 춘추전국시대보다 더 잔혹하고 위험한 시기가 위진시대라고 한다. 도연명은 동시대인들이 죽음의 공포가 만연하고 생존하기에 너무나 힘겨운 환경에 처해 있음을 목격하면서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한 지식인이다. 비록 소극적으로 보이는 그의 저항이 당대에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후대에 이렇게 여러 학자들과 문화를 흠모하는 사람들로부터 계속 연구되고 회자되는 것을 보면, 그의 방식은 혼란스러운 세상을 대처하는 하나의 삶의 지혜로서 계속 그 영향력을 유지할 것 같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