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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래잡이 - 라말레라 부족과 함께한 3년간의 기록
더그 복 클락 지음, 양병찬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4월
평점 :
향유고래 한 마리만 잡으면 부족민 전체가 한동안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 방식을 지켜온 라말레라 부족. 이 부족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렵채집사회 중 하나이며, 가장 작은 규모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부족이다. 식민지부터 산업화의 물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 소멸의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앞날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전 세계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3억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들은 규모에 관계없이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해 있는데, 산업화된 생활 방식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전통에 충실함으로써 현대 세계의 혜택에서 소외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화를 받아들임으로서 전통사회의 단점이 해소되는 이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주민의 삶에 있어 생태 친화적 생활이 생태 파괴적 삶으로 전환되고, 부족 고유의 신화나 정체성은 국민이라는 더 큰 범주에 종속됨으로서 상실되는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515/pimg_7776601042948976.jpg)
라말레라 부족을 비롯한 많은 원주민 부족이 현대화를 받아들일 경우 그 선택권이 매우 제약적이라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이것은 바꿔말하면 현대화를 부추기는 서구인들의 전략이 매우 악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라말레라 부족 기준으로 볼 때, 가진 선택권이래봐야 그들의 전통적인 고래잡이로 일할 것인가, 아니면 공사장 인부로 일할 것인가가 고작이다. 전통적인 물물교환의 경제에서 화폐경제로 강제 이동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자녀들의 교육문제도 한몫을 하고 있다.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시키면서도 전통을 지킬 수 있는 여건이 불가능하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농업이 최초로 발달한 이래, 정착 생활이 대규모의 집단으로 확장되면서 수렵 채집인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제국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수렵채집사회를 문명화에 끌어들이거나 제거하는 가운데 줄어들어왔던 언어와 문화의 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500년 전만 해도 당시 전 세계에는 1만 5,000개의 언어가 존재했다고 한다. 식민지화가 시작될 때만 해도 전 세계 수렵채집인은 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했다고 하는데, 대항해시대 이래 유럽인들이 자행한 약탈과 살인, 집단학살은 너무나 끔찍했다. 대표적으로 아메리카대륙에서 원주민이 95% 이상 감소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라멜라라 부족은 외진 곳에 있었고 탐욕의 대상이 될 만한 자원이 없어 오늘날까지 전통을 지키며 명맥을 유지할 하나의 조건을 확보했던 셈이다. 이 책은 또한 2000년대에 접어들어 20세기의 제국형 식민주의가 사라졌는지는 몰라도, 산업화라는 새 시대의 식민지 운동이 다시 지구를 점령해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돈이 될 만한 땅의 원주민들이 살해당하고 문화가 강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불어 역사상 멸종이 동식물뿐만 아니라 언어 같은 문화의 멸종도 겸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515/pimg_7776601042948977.jpg)
이 책의 주인공인 라말레라 부족의 독특한 풍습들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고래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고래가 사납게 구는 것은 조상님의 분부를 어겼기 때문이며, 따라서 앞으로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선배 고래잡이의 상황 파악과 해결책 제시, 고래잡이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경우, 앵무조개 껍질을 수습되지 않은 시신을 대신해 매장하는 장면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에게 앵무조개 껍질은 영원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가뭄이 들면 일월신 레라울란이란 신이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기우제에 해당하는 의식을 치르는데, 사람을 두 패로 나누어 싸움을 붙여 거기서 흘리는 피를 제물로 바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뭄이 들때마다 피를 얻기 위한 싸움이 벌어진다. 동물의 피가 제물에 쓰이거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사물이 제물이 되는 경우는 더러 봤는데, 집단 싸움을 일으켜 거기서 나오는 피를 기우제에 활용한다는 건 또 생소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이전의 서구사회의 탐욕으로 빚어진 영토와 자원의 수탈, 즉 전통사회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산업사회에 들어와서는 물질의 맛을 보여주어 더 이상 전통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악랄한 방법을 사용하는 방식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주면서, 앞으로는 기본적으로 전통사회의 문화와 현대사회의 문화가 다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사회의 단점이 현대사회의 장점으로 극복되는 사례도 있고, 반대로 현대사회의 병폐에 대해 전통사회의 미덕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전 지구적인 평등과 상호적 관계를 구축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 조율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는 없겠지만, 지향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