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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평점 :
이 책의 배경은 비뫼시(市)라는 가상의 도시다. 이곳은 사회적 계급의 경계가 공간적으로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지배자가 사는 궁전, 보통의 시민들이 사는 중간지대, 그리고 도시의 외곽 빈민지대. 소설에서 도시의 외곽 빈민들이 사는 유형지 같은 곳의 풍경 묘사는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 묘사된 19세기 런던 뒷골목의 숨 막힐 듯한 퀴퀴하고 질척하고 지저분한 인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희망이라고는 한 줄기도 기대할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속해 있거나 그 언저리에 있다.
소설의 도입 부분부터 무척 인상적이다. 망해버린 눅눅하고 어두운 고서점, 그리고 박쥐와 송골매, 고양이, 노숙자, 난쟁이 약재상, 관절성 질환을 앓고 있는 유리부인, 일터를 잃고 몇 달 째 놀고 있는 그의 남편이 연이어 등 동물이고 사람이고 힘겨운 생존 환경과 바닥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원히 비참한 운명의 상징 같은 이미지들이 휘몰아친다. 이 세계는 차라리 니코틴 냄새가 쾌적한 선택지가 되어버릴 만큼 악취가 진동하는 세계이며, 인간성을 말살하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어리석음이 끝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소설 초반부터 타락한 문명의 교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선악을 가리지 않는 심판과도 같은 대형 사건이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그 폭풍 같은 비극의 일차적 피해자는 낮은 곳에 있는 빈곤한 자들이다. 아무리 커다란 재앙도 우선은 가진 자들과 통치하는 자들을 비껴 간다. 그러나 더 큰 폭풍을 위한 전주곡에 불과함을 이 대목부터 느낄 수 있다.
이런 열악하고 참혹한 조건에서 태어난 한 아기의 탄생 장면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의 주인공이 태어나던 처절하고 기묘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 아이는 내던져진 운명 속에서 이름도 없이 특정 번호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두운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다만 마지막 문장에서 조금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탐욕에 기댄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 무수한 가엾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 죽음조차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한 채 쓰레기처럼 처리되는 비극적인 전개가 나오더니, 그뿐만이 아니라 더욱 끔찍한 것은 끔찍한 것은 작중의 악역들이 죄를 죄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재지변이 일어날 경우 빈민들이 대량으로 죽어나갈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그 천재지변이 발생했고,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씌울 희생양까지 계산에 넣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악마 같은 인간상을 저자는 그리고 있다. 무지의 악의 아니라 의지에 충만한 악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악을 마음속 준칙으로 삼’게 되는 역사의 흐름 혹은 힘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수많은 고전 텍스트들로부터 인용되고 변용되는 문장들의 향연이 일품인 특이한 소설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200여권이 넘는 고전 텍스트들을 오마주하고 패러디한 상호텍스트성으로 구축된 지적 놀이터”로서 소설을 읽는 재미 이상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준다. 책 뒷편에 활용된 작품들의 미주 목록들을 보면 저자의 공부의 내공과 글에 내재된 고민과 깊이를 엿볼 수 있다. 이런 노력과 시도들은 한국문학의 양식을 확장시키고, 좀 더 광범위한 외부세계를 대면하고 품게 하는 접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