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성과 용기를 최후까지 지켜 낸 201인의 이야기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 올드벤 / 2021년 4월

언어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책에 나오는 사형수들의 편지글에 담긴 말 하나하나를 보며 언어에는 정말 무게가 있을 수 있음을 실감한다. 그 무게의 빛깔과 냄새, 질감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사람들을 보면 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듯이, 또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것처럼, 죽음을 앞둔 사람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말들도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결을 보이고 있었다. 인간은 그래서 특별한 존재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편지들을 읽기 위해서는 ‘레지스탕스’의 개념과 역사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책 서두에서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고 있지만, 간략하게 말해보자면, 레지스탕스는 ‘저항’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저항 운동이나 단체를 상징하는 단어다. 때문에 이 책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나치에 항거하던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내용일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이 책은 실각한 무솔리니가 나치당에 의해 구출된 뒤 다시 이탈리아의 수반이 되어 북쪽의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을 이끌며 반파시즘으로 뭉친 남부의 이탈리아 해방 세력과의 내전 상황에서 비롯된 내용이다. 즉 레지스탕스라는 것은 불의한 세력에 맞서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인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오르고, 국내 추천사에도 잠깐 언급이 되지만 세월호 아이들이 떠올랐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신념을 지키고 대의를 잃지 않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과 대비되는, 악의 평범성으로 상징되는 아이히만의 성실함에 담긴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비극이 마음을 떨리게 했다. 또 죽음이라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을 눈앞에 두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며 울며 공포에 떨었을 아이들의 마음이 사형수들의 담담하면서도 비통한 심정과 겹쳐 밀려오는 것 같았다.

지독한 고문과 그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상황인식이 또렷한 가운데 남긴 메시지가 있는가 하면, 정확히 어떤 역사적 흐름 위에 있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인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만으로 행한 헌신의 결과로 맞게 된 죽음을 앞두고서 떨리는 목소리도 있었다.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담담하게 전하는 말 한 마디, 오히려 남아 있을 사람들을 걱정하고 격려하는 초연하고 강인한 정신도 볼 수 있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지금 이 시대, 이 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편까지 갈 것도 없다. 같은 아시아 저편의 미얀마라는 곳에서 흘리고 있는 순결한 영혼들의 피가 이 책의 내용과 공명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울림이 나의 삶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이 책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인간 생명의 의미와 가치, 그 궁극적 목적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