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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뉴턴에게 물었다 - 물리학으로 나, 우리, 세상을 이해하는 법 ㅣ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
김범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저자 김범준 교수는 과학자의 꿈을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형성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세대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고 과학도로서의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물음, “내가 누구인가?”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누구인가는 곧 인간 존재의 근원과 의미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인간이라는 주제에서 가장 최소 단위인 ‘나’에서 시작하여 과학적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우주를 살펴본다. 그리고 모든 물체들의 관계, 현상들의 관계를 탐구한다. 다음으로 우리의 물리적 형상이 왜 필연적인지를 밝힌 후 인류가 왜 서로를 소중히 생각하고 대해야 하는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관계에 있어 고전역학에서 카오스 이론을 넘나들며 시간의 의미를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시점에서 예측가능한 미래의 위기 상황을 진지하고 고민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것을 피력한다.
이 책의 1강에서는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인간의 노력의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우주로 눈을 돌려 그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한 지점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기에서 저자는 과학의 성과로, ‘티끌 같은 인간의 티끌 같은 이성’이 이 거대한 우주에서 스스로가 얼마나 사소한 티끌 같은 존재인지를 깨달았다는 그 사실 자체를 매우 대단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무한한 우주에서 우리의 입장은 너무나 허무하고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반대로 그런 존재가 우주의 광대함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와 비율을 인식하게 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는 논리다. 따라서 과학을 한다는 것은 한쪽 눈으로만 보던 세상을, 감겨 있던 또 하나의 눈을 떠서 두 눈을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또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더 깊이 보는 일과 같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자가 되는 일은, 또 과학자가 하는 일은 무한한 바다 앞에서 예쁜 조약돌 하나를 줍는 기쁨에 비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앞에 둔 복 받은 직업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행복감과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2강에서는 서양과 동양의 고대 우주관을 소개한다. 먼저 고대인들은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오랜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서 시간과 날짜, 계절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심으로 뭉치는 물질의 특성을 통해 4원소설을 떠올렸고, 불완전한 땅 위의 원소들과 달리 하늘의 완전한 형태가 구(원)형을 띄고 있다는 데 착안해 지구와 우주가 둥근 구의 모습일 수밖에 없음을 주장했고. 이는 서구 세계에서 2,000년간 지속되었다. 천상의 구성 물질인 제5원소, ‘에테르’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나왔다. 반면 동양은 모든 물질이 아래로 떨어진다는 현상을 통해 평평하게 놓인 네모난 땅과 그 위쪽 둘레를 하늘이 둥글게 감싸고 있다는 우주관이 발전했다. 땅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거듭 만들어내면서 인도와 같은(땅을 떠받치는 코끼리들, 코끼리를 떠받치는 거대한 거북이, 이 모두를 또아리를 튼 채 받치고서는 자기 꼬리를 물고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뱀이라는 세계관) 독특한 세계관이 나타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잇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우주관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우주관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전개한다. 케플러에 이어 이윽고 뉴튼의 시대에 이르러 그때까지 따로 놀던 천상계와 지상계의 물리적 움직임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단순하게 밝히려고만 했던 그때까지의 과학적 관점이, 현상에 대한 법칙을 설명하는 방법적 전환으로 일대 변혁이 일어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3강에서는 저자가 주로 연구하는 분야인 통계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내용이 펼쳐진다.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가르치는 4대 과목, 혹은 4대 역학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고전역학, 전자기학(전기역학), 양자역학, 통계역학이다. 고전역학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큰 입자의 운동을 설명하는 분야이며, 양자역학은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작은 입자들의 운동을 다룬다. 통계역학은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커다란 물리 시스템을 기술하는 방법인데, 다른 분야와 나뉘는 기준은 입자의 크기가 아닌 입자의 많고 적음이다. 그 크기에 따라 다시 ‘고전통계역학’, ‘양자통계역학’으로 나뉜다고 한다. 통계물리학은 통계라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물리학의 한 전공 분야라고 설명할 수 있다. 가끔 방송에 나와 통계적 관점으로 해당 주제나 이슈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이해가 되었다.
물리학에서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일상의 용어로 바꾸면 ‘관계’가 된다. 관계는 곧 서로에 대한 소통과 연결,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통계물리학을 ‘관계 과학’이라고 정의한다. 저자가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 주제는 ‘복잡계’인데, 쉽게 말해 부분의 합이 전체와 다른 현상의 이유나 특징을 연구하는 것이다. 전체가 부분의 합과 다른 이유는 부분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전체에서 새로운 거시적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통계물리학은 구성 요소와 더불어 구성 요소들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들여다봄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함께하는 방식에 따라 전체의 모습과 속성이 달라진다는 것, 그래서 저자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함께하면 달라진다”고 표현한다.
더불어 저자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진술을 당위와 가치에 대한 진술로 오해하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피해야 함을 말한다. 이는 과학 연구의 결과로 얻어진 정보를 가치판단의 결정적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현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이해의 첫 번째 목적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을 위한 노력의 객관적인 출발점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자신의 믿음이라고 한다.
3강은 관계를 주제로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부분인데, 물리학의 열역학 법칙 중에서도 특히 제2법칙인 엔트로피 증가 법칙에 관해 깊이 있게 다룬다. 이 장에서는 제법 많은 수식과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와 수학이 편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약간 마의 구간(?)일 수 있다. 이외에도 통계역학의 아버지 볼츠만에 대해서, 그리고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뉴턴의 물리법칙 등을 통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존재 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 속 상호작용에 대해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 통계물리학이 거시세계를 분석하는 데 왜 유용한지, 또 물리학에서 대칭성이라는 개념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한다.
4강에서는 우리가 왜 지금의 외형을 갖게 되었는지 물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여기서는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환상이 깨지는 함정도 있으니 미리 알고 있으시길.
원(구체)의 완전성에 매료된 고대 사람들은 모든 천체는 둥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갈릴레오 시대부터 둥글지 않은 천체가 발견되면서 사람들의 우주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달조차도 자세히 보면 완전한 구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둥근 천체와 둥글지 않은 천체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부터 4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서 중력과 전자기력의 서로 밀고 밀리는 힘의 관계가 간단히 언급된다. 큰 위성이 둥근 이유는 중력이 더 크기 때문에 작은 위성이 둥글지 않은 이유는 중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작은 물방울은 전기력이 커서 둥글고 큰 물방울은 중력이 크기 때문에 퍼진 모습을 가진다. 이렇게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퍼텐셜 에너지’라는 것이 가장 작은 값이 되었을 때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큰 위성은 중력이 커서 둥근 모습이어야만 퍼텐셜 에너지가 낮은 값이 되고, 작은 물방울은 전기력이 커서 둥근 모습이어야 퍼텐셜 에너지가 낮은 값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둥글거나 울퉁불퉁하거나 납작한 모습을 결정하는 요인은 바로 이 ‘퍼텐셜 에너지’의 낮은 값이 어떤 조건에서 이뤄지느냐인 것이다.
위성이나 물방울의 사례 외에도 갈릴레오의 ‘제곱-세제곱의 법칙’을 통해 인간의 외형, 뇌가 주름진 모양을 갖게 된 이유, 코끼리는 왜 그렇게 큰가? 등등 각각의 생명체가 왜 그런 모양과 크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이처럼 물리학을 통해 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양이 그 모양이 되었는지, 아니 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5강의 주제는 만남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모두 물리학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학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최소 구성 단위는 원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부분의 합과 전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통해 원자들의 합으로서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미묘하고 기적적인 존재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6강은 미래라는 주제를 다룬다. 뉴턴의 고전역학의 결정론적 특성이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것이 아님을 세상에 산재해 있는 비선형성으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아주 작은 차이 하나로도 미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나비효과’라는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다. 자연법칙을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하고 표현하는 것이 물리학자들의 목표이지만, 자연에는 질서정연한 법칙만큼이나 예측을 어렵게 하는 비선형적 요소들이 산재해 있어 물리학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산더미 같기만 하다.
7강은 지금까지의 모든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우리 인류 앞에 닥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핵심 이슈는 인공지능, 기후변화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지만 전제조건은 지금부터 심도 있는 고민과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문제는 아직까지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 저자는 각종 기후 관련 데이터 분석을 근거로 좀 더 강한 어조로 그 심각성을 표현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탈출할 수도 없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인류의 거처인 지구를 더 이상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며, 희망을 가지고 책을 마무리한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