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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 비트코인에서 구글페이까지
라나 스워츠 지음, 방진이 옮김 / 북카라반 / 2021년 2월
평점 :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돈을 쓴다. 돈을 사용하는 방식, 그러니까 결제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현금과 카드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내 경험상 학생들의 현금과 신용카드의 사용 비중은 현금이 좀 더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2014년쯤이었던가, 전국적인 체인망을 가진 한 편의점에서 일할 때 카드 대 현금 사용 빈도는 체감상 7대 3이나 8대 2 정도였던 것 같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지폐나 동전 같은 물질 화폐가 돈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전산상으로 오고가는 화폐 거래는 이미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전자상거래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우리로 하여금 돈을 쓴다는 개념이 더욱 비물질적인 것, 가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신용카드와 같은 여신금융산업의 발달과 성장은 돈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더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실제하지 않고, 나의 소득도 아니지만 미리 끌어 쓰는 돈의 맛은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망쳤다. 정상적인 경제 감각을 제대로 기를 여지를 주지 않은 채 사람들은 빚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제 활동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채무에 저당 잡힌 삶을 살아간다. 또 돈을 게임머니처럼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화폐, 즉 돈은 우리의 삶의 방식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상태,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반영하는 존재다. 수단을 넘어 목적이 되고, 돈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가 생성되거나 낡은 것은 폐기되는 시대가 되었다. 돈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니고 돈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게 되는 다양한 메리트가 중요한 것인데, 문제는 우리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것까지 떠안겨 삶을 복잡하고 더 고되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소비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치를 정해주는 돈의 역할과 기능이 굉장히 공정하고 평등한 어떤 절대적 존재나 기관을 통해 발행되어 늘 그런 기준 역할을 해줄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은 오랜 세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풍파 속에서 불안정성과 유동성을 견뎌내고 현재의 자리에 정착하여 쟁취한 업적 같은 것이다. 즉 태생적으로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그 왕좌가 바뀔 가능성이 내재된 것이다. 물론 지금의 달러 중심의 경제 시스템이 쉽게 붕괴되진 않겠지만, 한 번씩 경제 위기로 환율이 들썩거릴 때마다 금 자산이 고개를 들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돈은 바로 이거야’라고 정의할 만한 고정된 형태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돈을 사용하는 행위, 즉 결제 행위에 담긴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돈이 가치 측정의 수단 이외에 지닌 미디어적 요소, 캠페인적 기능이었다. 또한 모든 것의 질(퀄리티)을 양과 수치로 변환시켜, 그 어떤 것이든 비교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모든 사물과 행위에 동등성을 부여한다는 점이었다. 또 결제라는 행위를 통해 세계 곳곳이 고유의 문화와 사회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들을 아우르는 단일성을 부여한다는 것도 눈에 주목할 만한 내용이었다.
이 책은 ‘벤모’라는, 미국에서 주로 쓰이고 있는 소셜미디어와 결제 시스템이 결합된 서비스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을 하나의 사례로 제시하면서, 결국 소셜미디어가 화폐의 존재 방식과 결제 시스템의 미래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돈을 단순하고 단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써왔던 사람들이라면, 돈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사정을 가진 생물 같은 존재인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돈과, 그 돈이 순환하는 과정을 통제하는 어떤 주체들에 의해서 얼마나 장악되어왔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 네이버 북뉴스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