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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ㅣ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평점 :
동시대에 부와 영향력에 있어 우열을 가리기 힘든 강대한 두 나라가 공존하고 있다면 이들의 전쟁은 필연적인 것일까?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 기록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지금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흔들리는 왕좌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의 미래가 저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두 나라의 대결은, 적어도 이 책에서는 한 군사 천재와 탁월한 정치 시스템의 대결로 축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로마 정복을 위한 카르타고 군대를 이끄는 역사상 뛰어난 군사 천재 중 한 명인 한니발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로마의 내부 상황도 자세하게 살펴가면서 전략을 세워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전쟁의 판을 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에 반해 로마는 본토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서도 군대의 지휘관을 겸하는 집정관 선출 행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 치르며 새로운 지휘관들이 전장에 나서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군대의 지휘관이 계속 바뀌는데도 어떻게 로마 군대의 조직력이 평균 이상을 유지하면서 기어코 한니발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였다. 하루라도 빨리 전면전을 일으켜 빠른 결판을 내고 싶었던 한니발과, 그의 계략에 완전히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신의 축복이 임한 듯한 로마의 대응이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것이 이 책의 포인트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로마 내부의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인데, 국내에 발생한 이상 현상을 불길한 징조로 보고 종교적/초자연적 의미를 부여하여 속죄 의식을 통해 민심을 다스리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미신으로 인한 두려움이 발생했을 때, 로마 원로원은 ‘시빌의 예언서’라는 것을 찾아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기이한 일들이란 하늘에 방패 형상이 나타난다든지, 조각상들이 피를 흘린다든지, 돌비가 내린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예언서에서 적절한 대응 방법을 찾아 시행하는 것이다. 전투를 앞두고서도 징조, 즉 길조와 흉조를 점치는 과정이 일반적이었다는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보통 전쟁터에서는 한 명의 지휘관과 하나나 둘 이상 복수의 전략적 조언자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인데, 로마는 전쟁터에서조차 사실상 두 명의 리더를 두어 전쟁을 이끌어갔다는 것이 놀라웠다. 싸움에 대한 대비보다 논쟁이 주를 이루는 황당한 상황이 자주 만들어지기도 했다.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두 지휘관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지휘권을 행사할 때 하루는 지연 전술, 하루는 적극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일이 빈번했다.
2차 포에니 전쟁의 주요 인물로 카르타고의 한니발과 로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중점적으로 언급되고는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역사적인 전쟁이 몇몇 영웅들의 활약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파비우스 막시누스라는 인물은 파죽지세의 한니발 군대를 지연 전술로 대응하여 자국군을 위기로부터 구원하는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또 이런 범상치 않은 전략을 보여주는 상대방 지휘관을 신중하게 구분할 줄 아는 한니발의 통찰도 볼거리 중 하나다. 또 당시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국가와 부족 등의 관계 및 힘의 균형 등이 두 강대국 간의 세력 다툼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사실상 로마의 홈그라운드에서 치러졌던 카르타고의 전쟁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대로 패배를 향해 흘러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로마는 지속적 보급과 인근 국가와 부족들간의 견고한 동맹이 힘을 발했고, 카르타고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속전속결로 끝내지 못하고 17년간이나 끌어온 전쟁 과정에서 갖가지 균열과 고장을 일으켜 결국 멈춰버린 기계 같은 운명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 네이버 리뷰어스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