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 -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가 밝혀낸 악의 근원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신혜원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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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악의 원인 혹은 특성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접근 방법은 학문적으로 다양하다. 생물학, 신학, 유전학, 정신병학 등 여러 학문을 바탕으로 악의 존재에 대해 탐구한다. 그러나 악을 어떤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기에는 그 양상이 너무도 광범위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자는 다양한 악의 측면들을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실제 사례들을 통해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악을 유발하는 몇 가지 특징적인 상황이나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우선 악이란 부정적이거나 나쁜 것, 파괴적인 것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종교에서는 신에 대한 적대적 행위나 불복종으로 이해된다. 철학에서는 자연의 재앙처럼 피할 수 없는 불행, 혹은 인간 자유의 남용을 악과 관련짓기도 한다.

위대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독특한 설명을 시도한 바 있다. 신이라는 절대 선을 중심으로 점점 멀어질수록 악이 된다는 것이다. 광원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현상으로 선과 악의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마치 그라데이션 같은 개념으로,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될 수 없거나 인간 안에 혼재되어 있다는 이 책의 설명과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또한 파괴와 파멸의 이미지로서, 어떤 근원적인 질서를 흐트러뜨리려는 시도도 악의 한 측면으로 설명될 수 있다.

 

 

 

 

 

 

둘째, 인간의 범죄 행위의 양상을 통해 악의 모습을 구체화한다. 이 책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살인의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도덕적 본능을 가진 인간이라면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잔인한 범죄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할 말을 잃었다. 여기에는 질병, 즉 정신 장애에서 비롯되는 사례와 태생적으로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 무감각한 자들의 불가해한 살인 행위, 또 타인의 고통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가학 성향의 범죄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두려운 점은 누구나 특정 환경에서는 얼마든지 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악이라는 요소 역시 인간이 적응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셋째, 인간의 의지가 방해받거나 붕괴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의 학대 받은 경험이나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동물 등에게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부터 시작해 인간으로 확장되는 전형적인 범죄자들의 스토리부터, 본인만이 강하게 느끼는 타인으로부터의 모멸감이나 부정적 감정이 확신으로 발전하면서 시한폭탄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한번에 폭발하는 것처럼 일어나는 살인 사건 같은 것이 포함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의 부재 혹은 어려움으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악감정으로 저질러지는 범죄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주창한 악의 평범성’, 즉 무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기반으로 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가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매체를 통해 노출되고 있는데, 이 책은 많은 악한 행동들이 상당히 계획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즉 조직적인 것과 비조직적인 것, 선천적인 것과 우발적인 면 모두를 품고 있는 것이 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악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 예의의 상실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남을 상처 입히거나 죽이는 것을 악의 구체적 형태로 규정한 이 책의 기획의도를 볼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가장 빈번한 원인이,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방하거나 억압하거나 강요하고 학대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에 대한 처방이랄까, 그것은 가장 단순한 해법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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