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세상 - 개정판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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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인간 없는 세상이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인간 중심의 가치관이 과연 정당한가? 라는 물음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인간 발생 이전과 이후로 구분지어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과학만능주의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지구의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라는 것을 깨뜨린 사건인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인간이 이 지구상의 생명 체계를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에 보편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의미 부여가 아직도 부족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 중심의 윤리, 세계관이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은 요즘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으로 인간이 지구에서 특별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과 자연에 대한 특별한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몇몇 철학과 종교를 통해 그런 거듭난 존재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파괴적 번영으로 누려도 된다는 착각에 빠졌고, 그것이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복수처럼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보자. 성경에서 묘사하는 창조의 시간에 인간은 맨 마지막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신은 인간에게 앞서 만들어진 바다와 땅, 땅위의 모든 식물과 동물들에 대해 이름을 짓고 잘 관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관리자라고 할 수 있다. 신은 인간에게 자신이 만든 세상을 아름답게 잘 관리하여 자신에게 영광을 돌릴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인간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신의 메시지를 이후 어떻게 해석하였나? 자연을 마구 개척하고 약탈하고 자원을 소비하여 경제적 풍요를 누리라는 의미로만 맹렬히 실천했다. 자연에 대한 파괴적이고 약탈적인 태도는 곧 인간과 인간의 투쟁 상태로 반영되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인간의 본능적인 파괴 본능이 자연 세계로 번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인간과 인간이 갈등을 심화하면서 적대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연에 대한 난폭한 약탈이 환경오염과 이상기후, 생물다양성 감소와 멸종이라는 재앙을 불러오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선을 지키지 않는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전염병의 세례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읽는 인간 없는 세상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류가 총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이 현상이 지구의 자정 능력에 의해서인 것은 아닐까? 인간이 없어도 충분히 지구가 자체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그 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자연 환경과 생명체들의 생존과 순환을 보장할 것이라는,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그려내는 미래상은, 인간에게 회개와 겸손을 요구한다. 종교적 차원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생명 현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대가를 치르기 전에, 어서 조금이라도 탐욕과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를 줄이라고 호소한다.

 

 

 

 

 

 

인간이 없어도 천년만년 그 자리에 서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강철 콘크리트 구조물이 사실은 하루라도 인간의 관리에서 벗어나면 엄청나게 위험해질 수 있는 취약성을 가진 피조물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견고한 도시 시스템이 약간의 방치와 균열만으로도 붕괴의 위험을 떠안고 있는 날선 칼 위의 두부나 다름 없는 처지라는 것이 불안감을 일으킨다. ‘인간만이 사라졌을 때 남아 있는 동물들 중 침팬지 같은 지능이 뛰어난 종들이, 그들이 가진 인간과 유사한 공격성과 권력 투쟁의 행동양식을 가지고 인간과 같은 지위에 올라 새로운 재앙을 불러올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흥미로웠다. 역사상 대부분의 생물 종 멸종이 인간과 관계되어 있을 것이라는 전격전 이론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각종 분쟁과 그에 따른 정치적 역학 관계에 따라 생긴 중립지대가 희귀 동식물의 재생과 번영의 터전이 된다는 아이러니 역시 이 책이 보여주는 놀라운 현실 중 하나다. 미세 플라스틱이나 핵 방사능의 영향이 자연적으로 해소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은, 그런 것들을 만들어낸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고 악질적인 재능에 기인한 것이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 없는 세상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 위기나 이상 기후 문제, 전염병 위기, 인구 폭발에 의한 식량 위기 등 인류의 모든 문제에 대해 인간 중심 윤리에서 인간을 포함한 지구 위의 모든 개체들을 존중하고 아우르는 생명 중심 윤리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또 하나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경고는 경고 내용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피해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라는 생명 현상에 대해 겸손과 존중의 태도를 계속 거부한다면, 지구 역시 인간을 거부하는 것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실현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더 이상 상상의 영역에 방치해두어서는 안된다. 이미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그 권리 행사의 영향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 네이버 북뉴스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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