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 - DNA 속에 남겨진 인류의 이주, 질병 그리고 치열한 전투의 역사
요하네스 크라우제.토마스 트라페 지음, 강영옥 옮김 / 책밥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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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아주 오랜 시간의 단위를 다룬다. 그러나 다루려고 하는 시대와 지금의 엄청난 시간 간격만큼 학문적 성과를 내는데 근본적인 제약이 있다. 이를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유전학이다. 이번에 출간된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은 이 두 학문이 결합된 고고유전학의 성취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고유전학은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가장 깊고 넓은 범위의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유전학은 그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이룬 성과는 대단하다. 당장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만 해도 유전자 감식으로 범죄자를 밝혀낸다든가, 여태껏 확인할 수 없었던 몇 십년 전의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든가, 태어날 아기가 어떤 질병이 걸릴 수 있는지 미리 확인한다든가처럼, 유전자 분석을 통해 많은 일들이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하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인 쟁점이 있는 것이지, 기술 자체는 상당히 진보한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책을 보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이 편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그저 유전자의 생존 전략에 이용되는 도구라는 게 정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책의 제목을 보면, 최초의 인간에서 지금의 인류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진정한 주인공인 유전자다. 그래서 책의 전반부는 최초의 인간과 전 대륙으로 확산되는 인류의 행보를 따라가며, 후반부에서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처럼 미생물의 여정을 유전자 이동의 관점에서 추적한다. 즉 유전자가 사람에서 사람, 혹은 동물에서 사람, 사람에서 동물, 동물에서 동물 간에 어떻게 스스로를 복제시키고 변형되어 왔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무엇보다 인간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지구에 빙하기와 온난기가 번갈아 찾아올 때마다 인구 이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너무 더우면 생존을 위해 북쪽으로 올라갔고, 너무 추우면 역시 살아남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원시 인류들의 교류가 있었고, 문화가 발달했고,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현생인류가 되었다. 하지만 현생인류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보면 먼 과거에 교류가 있었던 다양한 인종, 동물, 환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유전적으로 시기나 거주 환경에 따라 멀고 가까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인류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인종이나 민족, 국가나 문화적인 이유로 차별을 한다든지, 이를 정치적 다툼거리로 삼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특히 피부색으로 인종 우열을 연상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인류는 오히려 검은 색 피부로 진화를 시도하기도 했으며, 피부색이 결정되는 것은 거주하는 지역의 위도가 어디냐에 따른 생존전략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고고유전학은 인간의 기원, 특히 인간이 형성되는 데 필요한 재료는 무엇이었으며, 그 형성과정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유전자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인 이동과 이동성에 대해 밝혀내고 있다. 책은 유럽 위주로 기술하고 있지만, 그 속성이 동서양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핵심은, 민족이나 국적, 인종의 우열을 유전자로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고고유전학의 성과 중 중요한 것은 현재 전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주 문제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특히 생존을 위한 인간의 이동 욕구는 근원적인 것이기에, 모든 국가가 이 문제를 정치적이고, 민족주의적으로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큰 우려를 보인다. 인류의 이주 역사는 지금의 인류가 누리는 풍성한 문명의 혜택을 가져다 준 원동력이기도 했으므로, 현재의 갈등과 분쟁도 공동의 발전을 위한 과정으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은 뼛조각 하나로 인류의 시작과 발전, 또 함께해온 질병의 역사가 매우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는 책이다. 개와 인간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의 유전자인 평행돌연변이’, 이미 초창기 인류 단계부터 엿볼 수 있는 공존과 거래의 역사, 호주의 피부암 발생률로 돌아보는 인종과 환경과 피부의 관계, 자연적으로 거리두기가 될 수밖에 없다가 필연적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었던 인류의 여정, 페스트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구원한 시궁쥐의 활약, 테레사 수녀가 한센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필 수 있었던 유전학적 이유 등 읽을거리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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