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개정증보 3판
서중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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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부분은 해방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서술이다. 해방공간은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이전 사이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가장 중대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강대국의 입김과 내부 분열이라는 안팎의 문제를 극복하고 단일 정부를 수립하여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자주적이고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절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국의 논리와 이승만의 권력욕, 그리고 제때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 문제는 결국 분단을 야기했고, 막대한 피해와 손실을 낳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이후로 현재까지 그 후유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방공간에서의 실패가 두고두고 우리 역사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승만 시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이 서평의 포인트다. 왜냐하면 이승만으로부터 비롯된 민족 역사의 악재가 이후 박정희 시대부터 박근혜 시대까지 모든 정치,사회사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삼상회의로부터

 

해방 소식이 알려졌을 때 기쁨으로 나부낀 태극기들 중에는 일장기에 먹칠을 하고 줄을 그어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민족의 앞날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암시가 이미 환희의 순간에 깃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말끔히 해소되지 않을 친일 행적을 비롯한 일제의 잔재가 두고두고 한국 현대사를 어지럽힐 것이라는. 둘째, 온전한 자주 독립을 실현하지 못하고 외세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전조로서.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려는 상황에서, 한마음으로 뭉치지 못한 민족지도자들의 행보도 너무나 안타까웠다. 왜냐하면 그 틈새만큼 친일 잔당들이 숨 쉬고 활개칠 여지가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미군정의 현상 유지 정책으로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할 여건이 되면서 정국은 다수의 정당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좌우 대립과 갈등이 깊어지게 된다. 이승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미군정이지만, 좌익이 주도하는 정치 상황을 개편하기 위해 그를 돕게 된다. 미국과 소련이 나라를 휘젓는 가운데서 이렇게 국내 상황이 도무지 화합을 이루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조선의 임시정부와 협의 하에 미···중의 신탁통치를 최고 5년 기한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의 미국의 정책이었던 신탁통치 계획을 소련이 주장했다는 언론의 왜곡보도로 상황은 더욱 혼란과 갈등으로 치달았다. 왜곡보도의 사실 관계를 따지기에는 감정이 너무 격앙되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김구 측은 반탁의 초기 국면을 주도하면서 중경 임정 추대에 열중했고, 이승만 측은 단독(분단) 정부 수립의 기회로 이용했다. 언론의 왜곡보도가 상황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세력이었는데, 힘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아무튼 즉시 독립을 바라는 한국인의 열망과도 맞지 않아 신탁통치라는 개념 자체가 더욱 불을 당긴 격이었다.

결국 이 문제의 근원은 미국과 소련이 서로 한반도에 자국에 이익이 되는 정권을 세우기 위한 다툼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론의 사실 왜곡과 자기 진영이 임시정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대립이 이 땅에 새로운 민주 정부가 세워지는 것을 힘들게 만든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심화됨에 따라 국내의 사정은 더욱 한반도 통일 정권이 세워지기에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좌우합작을 어떻게든 성사시켜 문제를 풀어보려던 노력은 이승만과 그의 지지세력의 방해와 앞서 말한 세계정세와 맞물려 무산되고, 결국 남한 단독정부가 세워지는 분위기로 흐르고 만다. 미국의 거수기 노릇을 하던 유엔이 남한 단독의 총선거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김규식과 김구가 북의 지도자들과 만나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방안을 구체적인 단계까지 논의한 남북협상의 노력이 눈에 띄다. 해방 이후 분단을 막기 위해 힘썼던 뚜렷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구는 우익 대통합을 위해 이승만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며 협조했지만, 단선·단정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승만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중도좌익과 손잡으며 나라의 미래를 도모했다.

 

 

 

 

 

 

단일 정부의 희망이 사라지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 이후의 상황은 가관이다. 미군정은 친일파가 일본에 충복 노릇을 했던 것처럼 자기들에게도 충성할 것이라 판단하고, 자기들에게 비판적인 민족주의자들 대신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극우인사들을 파트너로 삼았다. 국내 공권력의 핵심인 경찰 집단의 주요 구성원이 친일파로 대부분 채워지면서 게임은 사실상 끝이었다. 반민법(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면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친일파 청산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경찰의 요직에 있는 친일파를 잡아들이자, 이승만이 치안의 혼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민특위 활동을 비판했고, 결국 공권력을 이용해 6.6 반미특위습격사건을 저질렀다. 이후 사회는 친일파에 대해 함부로 말도 못하는 분위기가 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다. 친일파가 각계각층의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사회정의와 바른 가치관을 세워 국가의 미래 중흥을 일으키는 일은 물건너간 것이다.

 

국회프락치사건, 김구 암살 사건, 5·30선거 이승만 세력 줄줄이 낙선, 중도파 민족주의자들 다수 당선, 다원적 정치 실현 기대감으로 희망적인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권력욕에 절레절레 - 악마도 와서 한수 배우고 갈 경지. 이승만과 친일파 일당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미국과 유엔이 허락하지도 않는 실현 불가능한 북진통일론, 반공·반통일 정책을 내세워 반대파들을 탄압했고 나라를 개판으로 만든 시대였다. 뜻있는 야당 인사들이 반이승만·반자유당 전선을 구축하며 힘을 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진보당 사건으로 조봉암을 사형 시킨 이승만은 영구 집권을 위한 작업에 집착한다.

 

해방공간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해방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영향 아래에서 제대로 친일파들을 처단하지 못한 후유증으로, 통일을 위한 조속한 노력, 단합이 무산되고,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터졌고, 이후 북한과의 긴장 관계를 이용한 이승만 무리의 더러운 정치와 사법 농락으로 너무나 많은 무고한 대중이 반공-보안의 연결고리에 엮여 학살당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시기에 대한 것이다.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서 알처럼 튀어나온 반공이라는 이념적 정서를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했다. 통일에 관심이 없었다. 친일파들은 입과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좋아했다. 자기들의 죄악에서 눈을 돌리게 해주는 좋은 재료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존에 누리던 것을 그대로 쥐고서 더 큰 번영을 도모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새로운 시대의 사회상과 한국전쟁

 

전후 당시 교육 상황이 나온다. 이승만과 그 무리들은 반공 내용을 중심으로 교육정책을 시행했다. 주로 배우는 게 반공이었고 세뇌 수준이어서 당시 교육 시스템 내에서 학생들은 이승만이 조종하는 인형 부대 양산소의 인형들이나 다름없었다. 그와중에도 진보·개혁적인 사상에 대해 눈뜬 이들이 있어, 좌익성향의 학생들도 많이 나타났다. 문제는? 바로 좌익성향의 학생들과 우익성향의 학생들의 대립 심화였다. 이들은 자기들이 무엇 때문에 반대편과 날을 세우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저 날 때부터 세뇌받은 세대이거나 세뇌받은 세대와는 다른 성향을 가지고자 했던 계층의 학생들의 날선 신경전에 불과했다. 그들의 이상이나 꿈, 열정은 이승만과 탐욕 세력들의 장기판 위에서의 말들의 움찔거림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까지도 무조건 반공이 진리인양 신념을 버리지 않는 자들의 무논리·무근거·인지편향은 무식한 꼴통보수의 양분이 되어 있고, 진보를 떠드는 무리들도 자가당착에 빠져 좌우기득권세력연합따위의 더러운 개념을 만들어 조롱거리로 쓰이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돈의 흐름에 약삭빠른 자들은 이념과 권력, 이익 투쟁으로 난장판이 된 정치판, 운동판을 굿판 보듯 구경하면서 떡 먹듯 사리사욕을 충족해갔다. ! 우리 조상은 왜 이 부류에 속하지 않았을까! 하하~

전쟁비용을 충당한답시고 머리 굴릴 생각은 않고 농민들의 피를 빨아먹었던 악당들 또한 이승만 무리였다. 미군정도 다를 바 없었다. 백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착취의 대상이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조삼모사가 정답이다. 하긴, 자기 배나 채울 궁리만 했을 악마들이 국가의 진정한 재건과 발전을 생각했을 리 없다. 그런 인간이 장로였다니, 기가 막히고 부끄럽다. 그리고 지금 보수기독교 양아치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겠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족속들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망령난 노인네는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줄행랑치기 바빴고,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과 전후 거덜난 재정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엄두도 못낸 채 미국 및 외국의 원조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걸 또 군사비로 털어먹고 있었으니 답이 없다. 왜냐하면 미국이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공된 것이 원조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외국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금융유전자를 우리 경제에 깊이 박아버렸다. 또한 제1차 중석불사건이나 원면사건은 정경유착과 국민을 똥으로 보는 당시 지배층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부패한 권력.

노동단체의 역사도 끔찍하다. 정당한 노동운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파업사건을 이승만이 강경진압하며 모든 노동조합은 사실상 권력과 조합의 어용조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로써 노동자는 삶이 고되고 힘든데, 간부 및 관리자들은 먹고 살 만한 비정상적인 한국 노동조합의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젊은 세대와 지금 세대가 절망하는 공통적인 부분은 사회정의와 기회평등의 부재, 그 원인이 모범적이지 못한 지도층의 부패에 있다는 것이다. 모범이 없는 사회. 스스로가 각자 답을 내야 하는 세상.

 

 

 

 

 

 

이승만의 하야와 현재까지

 

1960년 상상을 초월한 3·15부정선거는 한국민주주의의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 이승만의 병적인 영구 집권 의지, 자기기만적인 자존심, 친일파가 대부분인 추종자들의 권력욕이 빚어낸 갖은 기상천외한 부정선거 전략과 실행은 이승만과 추종자들의 몰락을 재촉했다. 이후 유신체제와 군사정부를 지나 문민정부에 이르렀고,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 연속으로 두 차례씩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현재 문재인 정부까지 온 것이다. 박정희 이후 문재인 정부까지를 몇 단어로 축약해버린 것은, 앞서 말했듯이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맥락이 해방공간에서의 실패로부터 빚어진 분열과 대립이라는 결과물 위에서 반복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기득권들은 항상 반공과 안보의 문제를 거론하며 국민들을 기만했고, 진보·개혁 세력은 끊임없는 자가당착으로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행보를 보여왔다. 그리고 남아 있는 것은 껍데기만 남은 사상 아래에서 살을 찌워온 천민자본주의라는 알맹이뿐이다.

 

물론 우리의 역사가 늘 부정적이고 비상식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한 줄기 빛의 가능성을 믿고 붙잡고 버텨온, 가려진 작은 영웅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면, 그때 그곳에서의 안타까운 실패를 우리의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가져보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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