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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속이는 말들 - 낡은 말 속에는 잘못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20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다 보면 ‘삐뚤게 보기’와 ‘이미 삐뚤어진 상태로 보고 있음’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생각이나 타인의 표현들을 보면서 어떤 상태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통념 자체를 비판하기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빠지게 될 편견과 오만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오만한 숙명론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환경이나 유전적 요소가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변화하는 존재인 인간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 즉 인간 전체의 보편적 특징이나 본질로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 환경에 주관적 대응을 결합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신념과 의지가 간접적이고 간헐적이라면 고통과 쾌락은 직접적이고 매일 매 순간 작용한다. 성격과 기질에 가장 일차적이고 크게 영향을 준다.
이해관계가 작용하지 않는 평생 친구를 만들 수 있는 때는 보통 중고등학교때이다. 공부는 때가 있다라는 말은 이렇게 인생을 함께 다독이며 걸어갈 진정한 친구 하나 만드는 것도 불필요 것으로 여기게 하고 자녀를 평생 외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함정이 숨어 있다. 첫사랑도 같은 맥락에서 청소년기에만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을 제공한다. 바로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다가설 때 품는 감정이다. 그런 때묻지 않은 마음 상태로서 ‘첫’사랑의 기회는 아마 청소년기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여기서 에리히 프롬의 ‘존재로서의 사랑’과 ‘소유로서의 사랑’ 개념을 우리의 교육 현실에 적용하여, 부모들의 왜곡된 사랑의 표현이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공부는 때가 있다’는 말은 이렇게 한 인격체의 자연스럽고 독립적인 욕구를 억압하는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말은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지나친 위계질서 의식이 얼마나 사회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으로 경직시키는지 보여준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치에서 빼야 할 것은 권위주의와 이를 바탕으로 한 보수적 관념이다.
인간의 ‘진정성’과 관련해서는 그 실체가 모호하고, 인간을 허구적 개념으로 규정하고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무차별적인 의무를 덧씌움으로 인간 존재 자체가 더 진실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은 다 이기적이다’는 말에 대해서는 유전학적으로 그것이 부분적인 면일 뿐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기성과 이타성이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호혜적이고 협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협동과 유대의 전략을 취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다. 여기서도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으며, 인간을 무조건 이기적인 존재로 간주하여 사회까지 냉정하고 계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인간에 대한 편견의 말을 다루었다. 다음은 세상을 왜곡시키는 말들을 살펴보자.
먼저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저자는 감각보다 지식을 중시함으로써 발생하는 왜곡되고 무미건조한 시선에 대해 지적하는데, 특히 예술적 영역에서 이런 폐해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예술 감상에 있어서 엘리트주의가 일반 감상자들을 예술의 주체적 감상자가 아닌, 전문가들의 난해하거나 차갑거나 적당함으로 범벅된 비평의 단순 소비자로 전락시킬 위험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예술에서 느낄 수 있는 본연의 기쁨과 감동으로부터 멀리 떼어놓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감각을 통한 감성과 정연한 지식의 균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술은 물론이고 세상과 사물을 보는 건강한 시선을 가질 수 있다.
아주아주 유명한 말,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원래 의도가 가장 심각하게 왜곡되고 오용되는 사례다. 저자는 병목현상이란 용어로 우리나라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기회구조 자체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 개인이 새롭게 사회활동을 시작하거나 낯선 환경을 앞에 두고 느끼는 불확실성이나 그에 따른 불안과는 다른 종류의 절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비현실적인 위로와 격려라 할 ‘아프니까 청춘이다, 시련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은 자조와 분노만 일으킬 뿐이다. 저자는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절망적인 전망에 대한 대안으로 ‘기회구조의 개혁’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현실과 동떨어진 격려로 변질된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청년들의 미래 전망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활로를 열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목을 늘리거나, 병목을 여러 개 만들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확행’에 대해서는 인간의 욕구 발현이 자율적이냐 타율적이냐는 문제로 연결시켜 논한다. 살기가 어려워져도 기업은 장사를 해야 되고, 정부는 대중을 통제해야 된다. 이런 맥락에서 소확행이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 기준, 생활 양식을 조종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지적이다. 소확행을 대안적 라이프스타일로 꾸미는 다양한 광고와, 대중매체의 이미지메이킹 등이 그 예다. 내가 자발적으로 욕구를 발현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물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건, 소비 중심의 가치관, 세계관, 행복관이 일반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가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되는 시대, 이런 시대에서 실질적인 자율성으로서의 욕구가 가능한지 묻고 있다.
‘손님은 왕이다’의 경우, 실제로 왕과 귀족을 고객으로 접대했던 호텔 창업주가 한 말이 소비주의, 자본주의, 상업주의로 넘어온 것인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간의 감정까지 서비스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당연시하는 특유의 ‘갑질문화’와 연결시켜 논한다. ‘그놈은 그놈이다’의 경우 ‘양비론’의 무익함을 통해, 모든 정치적 구성요소를 싸잡아 비판하는 태도로는 정치의 선진화를 이룰 수 없으며, 우리의 삶을 개선시키고 발전시키는 유일한 도구는 정치임을,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결코 우리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정치와 희망이라는 단어가 서로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지만, 어울리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아니 시민으로서의 숙제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은 모성애가 있다’는 말도 허구임을 알려준다. 얼핏 들으면 의아하겠지만, 여성에게만 부담과 굴레를 씌우는 작용을 한 것이 ‘모성애’라고 한다. 그러니까 모성애는 인위적이었던 것이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여성에게만 덧씌워진 만들어진 본능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모성애라는 신화로 둔갑한 것이다. 원래 아이를 책임지고 보살피는 것은 남녀 공동의 역할이었다고 한다. 이걸 보면 ‘모성애’라는 말보다 ‘부모애’, ‘가족애’ 같은 용어가 부각되어야 할 것 같다. 과도한 역할 분리의 폐해로 보인다. 바람직한 양성 평등의 길은 오히려 문명 이전 사회에서 배워야 할 상황이다.
이 책에 나오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들 속에 감춰진 장치들, 주로 낡고 변질된 유교적 사고방식과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상업 논리가 강하게 개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맥락을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대중의 능력이 점점 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삐뚤어진 것을 바로 잡고, 그 다음에 눈 앞의 현실을 뒤집어 보고 기울여 볼 수 있는 역량이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왜? 내가 보기에 그것은 세상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모두가 쓸려 내려가는 국가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 피해는 오롯이 무지한 대중의 몫으로 떠안을 것이기에, 두 눈 번쩍 뜨고 정신차려야 한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 본질을 통찰하라! 우리의 의식을 왜곡과 편견, 숙명론으로 물들여 통제하려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