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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ㅣ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책을 읽다보면 아는 게 많이 없는 나로서는 참 많은 부분에 밑줄을 치거나 여러 방법으로 표시를 해두게 된다. 그런데 특히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읽다 보면 그런 표시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만 해도 프롤로그와 1장의 분량이 책 전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음에도 벌써 얼마나 많은 표시를 했는지 모른다. 먼저 저자가 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 같은 저자로서 두 번째로 필진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는 읽기가 잘 되는 매끄러운 문장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저자가 개인의 이야기와 선택한 주제를 연결지어, 책의 주제로 페르메이르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을 하나의 그럴듯한 동기로 풀어내는 전개가 재미있게 읽혔다. 1장에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그림을 볼 때 빛의 방향을 통해 실제 그림에 나타나 있지 않아도 존재하는 창문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읽고 나면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막상 아무 가이드 없이 그림을 보면 좀처럼 그 의미나 숨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없는 것은 비단 미술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페르메이르의 많은 작품들에는 ‘그림 속 그림’이 있어서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해석할 수 있는 힌트를 준다” - p.16
페르메이르 작품의 특징은 빛과 그늘의 효과를 세심하게 활용한다는 것과 ‘그림 속 그림’의 존재가 그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해석할 수 있는 힌트를 준다는 점이다. 그의 사후 대부분의 시간 존재감이 없었던 그가 오늘 이 시대에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스토리의 힘과 가치, 그리고 그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부각되고 있는 21세기의 흐름과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해당 인물의 정보가 부족하고, 또 그가 남긴 작품들의 수가 많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확장성이 특징인 이야기의 속성이 오늘 비로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주로 갈등의 양상으로 조명되고 있는 이야기를 갈등이 해소된 온화한 분위기로 풀어내는 표현법을 통해 작가의 성품을 추론하는 분석법도 흥미로웠다.
“네덜란드 황금시대 그림의 밑바닥에는 근면함과 신실함을 강조하고 게으름이나 사치, 허세를 용서하지 않는 시민사회의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 p.83
2장에서는 페르메이르라는 화가가 있게 한 17세기 네덜란드의 독특한 분위기를 전한다. 당시 네덜란드의 상황은 15세기의 피렌체와 비슷했다고 한다. 어떤 문화사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밑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 쳐야만 하는 물웅덩이“ 같은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황금시대라 불리기도 했고 반대로 모두가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했던 그 시대의 양면성은 어느 시대에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본질은 유사한 것 같다.
특히 봉건제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시민사회로 접어들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종교개혁, 즉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과 봉건사회가 될 수 없었던 지리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형성된 네덜란드 특유의 근면과 성실, 종교적이고 실용적인 시민의식이 어떻게 예술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고, 더불어 네덜란드의 역사와 문화의 특징을 개략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고요하고도 온화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보는 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 p.110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보는 재미 중 하나는 그림에 그려진 인물뿐만 아니라 사물들까지도 숨겨진 이야기를 해준다는 데 있다" - p.115
3장에서는 그가 생애의 대부분을 살았던 델프트를 여행한다. 짧은 공식 기록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아 페르메이르 연구자들은 당시의 모든 기록들, 편지나 경매, 재판 기록 등을 뒤져가며 그의 단편들을 찾아내 깨진 도자기를 맞추듯 그 일생을 재구성했다고 한다. 중요한 부분이 많이 빠져 있긴 해도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하는데, 앞서 그림에서 드러나는 정보를 통해 감춰진 정보를 찾는 것처럼 그가 그림을 시작한 시기나 스승이 누구였는지를 추측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생을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으나 만년이 불우했는데, 페르메이르는 그림 한 장을 그리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비싼 재료를 쓰는 스타일이어서 큰돈을 벌기 어려웠다고 한다. 아이들도 많이 낳아서 생활비도 엄청나게 들었던 것 같다.
이 장에서는 또한 페르메이르의 그림의 특징을 다시 설명하고 있는데, 그의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평온함과 근면함을 통해 종교적 성찰이 드러나기도 하며,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서 그 자신의 모습으로 빛날 그때가 가장 천국에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감각을 표현한 화가가 페르메이르라는 것이다.
4장에서는 일하는 여성을 주제로 한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17세기 네덜란드의 그림들이 그들의 시민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일하는 모습은 그 일의 종류와,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외모, 나이와 상관없이 아름답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실하게 일하는 하루하루가 우리의 삶을 이루며 존재와 존재성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 장에는 19세기 후반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의 시초를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흥미로운 내용도 있다.
5장에서는 그 유명한 ‘진주 귀고리 소녀’가 있는 헤이그로 간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덴하흐’라고 부르는데, 헤이그는 영어식 명칭이라고 한다. ‘진주 귀고리 소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 간결한 표현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돋보이는 생동감, 대범한 붓 터치, 화가의 원숙한 자신감 등을 설명하고 있다.
6장에서는 페르메이르가 생전에 방문한 적은 없지만 그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도시인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간다. 빈 미술사박물관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회화 중심의 미술관인데, 이곳에 ‘진주 귀고리 소녀’와 함께 페르메이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회화의 기술’이 있다고 한다. 페르메이르가 사망한 후 아내가 생계를 위해 그의 작품들을 처분하면서도 이 작품만은 꼭 지키려 했다는데, 결국 1677년 경매에 부쳐졌고, 그것을 시작으로 이 박물관에 오기까지 거의 30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파란만장한 유랑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때 히틀러의 소유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의 개성과 능력이 캔버스 한 장에 집약된 가장 중요한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가 팔기 위해서 그린 그림들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팔지 않고 가장 아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장에서는 그의 죽음과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반적으로 평온했던 그의 인생에 비해 말년은 불운했다. 1672년에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했는데, 이때 네덜란드군의 대처 과정에서 페르메이르 일가의 자금 사정이 나빠지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경제는 위축되었고, 문화 관련 지출이 줄어들면서 다른 일을 하거나 파산하는 화가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그림을 팔기 위해 작풍에 변화도 주며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그의 대가족은 빈곤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페르메이르는 죽고 말았다. 이후 빚을 갚지 못한 남은 가족은 결국 파산했고, 그의 작품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망각 속에 가라앉아 있던 페르메이르를 되살려낸 이는 테오필 토레뷔르거라는 19세기 프랑스 비평가라고 한다. ‘델프트 풍경’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그림들을 페르메이르의 작품으로 확인했고, 그의 이름이 ‘페르메이르’라고 바로 잡은 것도 이 사람이다.
20세기 초반 미국 수집가들, 특히 미국의 사업가들이 진가를 알아보고 페르메이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들의 가치가 오르게 되었다. 이후 유명세가 높아진 그의 그림들은 미국과 영국, 독일과 아일랜드, 프랑스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세계의 수많은 관람객들이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고흐가 이야기했던 “화가는 비록 죽어서 땅에 묻힐지라도 그림을 통해 후세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라는 말을 그대로 실현한 인물이 페르메이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커다란 눈망울의 소녀 이미지 뒤에 감춰져 있던 화가 페르메이르의 짧지만 굵은 인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가장 큰 교훈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지나치기 쉬운 부분을 통해 가려진 의미를 추론해보거나 나아가 전체 그림을 재해석해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재해석된 전체를 통해 부분의 의미를 더욱 예리하게 파악하고 통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