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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 - REASON OF STATE,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김용운 지음 / 맥스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 명분과 실리다. 둘 중에 하나를 딱 고를 수 있는 상황은 없다. 비율의 차이다. 당장의 실익은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명분을 선택하는 것이 더 이득일 경우가 있고, 당장의 실익을 취하지 않으면 재기 불능의 상태가 될 경우에는 당연히 실리 위주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실리를 취하는 유연한 선택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대체로 명분을 중시하는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 명분이지 진정한 명분이나 대의를 두고 다투는 경우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 정치권이 항상 우물 안 개구리들처럼 정쟁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를 보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우리나라가 바로 세워야 할 시급한 과제로 ‘국가이성’을 주장한다. 시대를 아우르는 올바른 가치관과 원리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당대의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유연함, 인문학과 자연과학 교육을 따로 생각하지 말고 융합하여 총제적이고 종합적인 배움과 이성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국가이성을 갖추는 조건임을 피력한다. 저자는 먼저 철학과 수학으로 대표되는 이성의 역사를 서구지성사를 중심으로 돌아보고 무엇이 그들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 혁신, 의식의 전환의 방향을 논의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과의 비교가 많이 나오는데, 서구 문명을 일찍 받아들여 실리적 측면에서 앞서 나갔던 일본의 선택을 가능하게 한 문화적, 사회적 배경과 원형을 무시만 해서는 안된다는 충고가 담겨 있다.
교육 정책의 경우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권의 방향을 틀어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몇 년마다 정책의 실험쥐 신세를 면치 못하는데, 이 역시 국가이성의 부재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관성이 없다는 얘기다.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나라를 운영하니 장기적 비전이 암울하다. 그런데 이것이 꼭 지도자들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를 장식하는 가치관, 제도, 문화는 바로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에 부합하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혁명이 어려우면 아래에서라도 변혁의 소망이 꿈틀거려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90년대 후반 이후로 완전히 물질만능주의에 매몰되어, 배만 부르면 더 이상 사회의 발전을 원하지 않는 세태가 되었다. 부조리와 비리가 만연해도 그것이 당장 우리 삶에 큰 영향이 없다고 하면 침묵을 지키다가 피부로 다가오면 다함께 들고 일어서서 마치 무슨 진정한 혁명을 이룬 마냥 가슴 벅차하는 이상한 민족이다. 냄비 근성이라고, 촛불 혁명이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성취인 것처럼 들더 있더니, 지금 사회는 또 천민 근성을 버리지 못한다.
이 부분에서는 요즘 독일의 68혁명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가 어째서 불완전한 형태의 민주주의와 사회구조를 가지게 되었는지 잘 설명하고 있는 김누리 교수의 강연이 떠올랐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스위스처럼 영세중립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에 둘러싸여 있는 한, 실리적 외교를 외면할 수 없다. 국방력은 둘째치고, 국민의 단합이나 정치지도자의 일관성 있는 신념, 국가이성이라 할 만한 능력도 안되면서 자주국방을 논하고, 반일 반미를 외치고, 통일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바로 강동6주를 취한 서희의 외교, 백성을 고난과 죽음으로 내몰지 않은 경순왕의 판단 같은 것이다.
그런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현실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국가가 되기 위해서 저자가 계속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 그리스 문화,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사례다. 인간 이성의 힘을 믿고 갈고 닦아 이상적인 세계로의 추구를 위해 교육과 정치가 바뀌어야 함을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인간 이성의 찬양, 과학 만능의 시대의 끝에 무엇이 있었는가?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다. 인간 이성의 영광을 자랑했던 나라들, 영국은 극심한 환경오염과 빈부격차를 낳았고, 프랑스는 혁명으로 뒤집어 졌고, 일본은 군국주의에 빠져들었다. 참고 사례가 다 이상적일 수만은 없지만 저자의 논지는 실제 사례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고 있는 것 같아 독자의 입장에서는 단점이나 부정적인 측면을 항상 생각하면서 읽어봐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의 ‘무지는 용서해도, 무사유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말도 떠오른다. 백년을 내다보는 일관성 있는 비전 없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고민없이, 눈앞의 이익만 쫓는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으로는 더이상 우리나라에 미래가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알려준다.
아무튼 이 책은 수학, 철학, 언어학, 인류학, 사회학, 물리학 등 대부분의 학문 세계를 망라하면서 지식의 백화점에 들어온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읽을수록 흥미롭고 뭔가를 배워간다는 느낌, 지식이 쌓인다는 느낌이 많이 들 것이다.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해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총제적, 종합적 지식을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현명한 선택과 실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