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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타이베이 - 대만의 밀레니얼 세대가 이끄는 서점과 동아시아 출판의 미래 ㅣ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우치누마 신타로.아야메 요시노부 지음, 이현욱 옮김, 박주은 감수 / 컴인 / 2020년 5월
평점 :
이 책은 일본의 출판 관계자들이 주변 국가의 출판문화와 현황을 취재하면서 자국의 출판문화와 환경 등의 미래를 전망하고 대안을 찾아 나서는 기획물이다. 일본은 출판 대국이지만 이제 초고령화 사회를 지나 본격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자기네들보다 훨씬 규모가 적은 한국이나 대만의 출판 산업 동향을 통해 지금보다는 확실히 축소될 일본 출판 산업의 앞날을 짚어보는 데 도움을 얻고 싶은 눈치였다. 첫 주자가 우리나라 서울이었고, 이 책은 그 다음 타자인 대만의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독립출판사와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독립서점 붐이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독립서점을 열고 또 미디어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또 특정 연예인이나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이 업계에 뛰어들면서 방송에도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또 일반인들 중에도 겸업을 하거나 다니던 회사를 나와 과감하게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꾸준히 소개되었다. 대체로 현실의 제약보다 자아성취와 인생의 질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어느 정도 사회 경험이 있는 젊은 세대가 주류를 이룬다.
대만도 독립서점이나 출판을 하는 사람들의 주요 연령대가 우리와 크게 차이는 없었다. 다만 그 배경에 우리와는 다른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1987년에 계엄령이 해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계엄령의 기간이 자그마치 40년 가까운 세월이다. 1949년에 내려져 87년에 해제되었다고 하니 그 사이는 표면적으로 완전한 문화적 암흑기였을 것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적 고군분투가 없지는 않았겠으나 매우 취약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87년 계엄령이 해제되고 89년에 중요한 문화적 사건이 발생한다. 우칭유라는 주방설비회사를 경영하던 인물이 완전히 붕괴된 독서와 예술, 생활문화의 토대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마음으로 서점과 갤러리를 연 것이다. ‘청핀서점’, 이 서점을 시작으로 대만의 출판독서문화는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청핀서점의 비전은 창업 이후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바로 ‘공간’, ‘이벤트’, ‘사람’이다. 여기서 이벤트라 함은 문화 콘텐츠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책으로 한정한다. 청핀서점은 책과 사람이 만나는 편안한 공간, 지금까지 소실되어왔던 문화적 자양분을 사람들에게 다시 심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지금까지 발전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청핀서점은 책 판매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물품을 취급하면서 독자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책을 읽는 행위, 책과 함께하는 생활로 이어질 수 있는 종합적 문화산업 공간으로 발전한다. 교보문고가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건물 내에서 액세서리나 식음료, 문화사업을 병행하는 것처럼 청핀서점은 대표적인 대만의 종합문화기업이 된 것이다.
덩치가 커진 청핀서점 같은 대형서점들이 더 이상 신선한 파급력을 주는 것에 한계를 보이자 등장한 것이 다수의 독립서점과 독립출판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기존의 유통시스템과 출판경로로는 출판산업과 책 문화가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새로운 시장 질서와 문화적 혁신을 위해 전면에 나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독립서점이나 독립출판사들은 각자가 자기들만의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사업을 꾸려가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더 이상 책을 판다는 행위만으로는 서점이나 출판업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출판인, 서점인들은 책의 내용만큼이나 책 외양이 사람들의 손과 눈이 갈 수 있게끔 디자인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었으며, 결과물들은 거의 각각 하나의 예술 작품인 것처럼 퀄리티가 뛰어나다. 특히 잡지 출판물들의 디자인이 탁월해 보였다. 또 아까 청핀서점의 비전처럼, 사람들이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 즉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청핀서점의 겨우 지점에 따라 한 달에 50회 가까운 행사들을 진행한다고 하니, 상당한 시간과 돈, 인력이 들어가는 사업이 되는 것이다.
독립서점이나 출판사의 경우, 자원에 제약이 있으니까 형편에 맞게 소규모 모임 수준으로 지속적인 행사를 개최하거나 독립서점과 출판사들이 서로 협업하거나 연대하는 방식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또 대형출판사나 서점들과의 협업을 타진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레이아웃, 눈에 보이는 것, 시각적, 미학적 체험, 읽는다는 행위에서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즉 대만이나 우리나라 모두 독서 인구를 조금이라도 더 늘려가기 위한 시도들의 핵심에는 체험적인 미디어로서의 책의 변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국이나 해외의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활발한 것도 특징이다.
책에서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면 ‘꽁치’라는 독립출판사인데, 대만의 시점에서 본 일본문화라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오래도록 잡지를 만들어온 곳이다. 주제가 한정적이고 너무 익숙하고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대상이나 사건, 상황일지라도 보는 시각과 다루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풍성한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보면 잡지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 광고도 많이 들어오고 판매도 늘어 유지는 가능하지만, 이들의 편집이나 잡지 만드는 실력 때문에 의뢰가 들어오는 공공기관이나 외부 기관의 출판물 제작 일까지 소화해야 어느 정도 흑자가 나는 구조인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책을 좋아해서 책만 안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경영이나 마케팅 부분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빛나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은 2018년에 나왔고 올해 우리나라에서 한국어판이 나온 셈인데, 코로나 시대의 한가운데서 또 이 책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독립서점 같은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가치와 이상이 교류되고 공유되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비대면 사회에서의 주요 교류 수단인 온라인으로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책을 보고, 만지고, 넘기고, 책장 넘어가는 소리를 듣고, 종이 냄새를 맡는 모든 책과 관련된 감각을 다시 일깨우기 위한 것이 독립출판독서인들의 소망일 텐데, 지금 시대는 그것을 유쾌하게 권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다른 많은 분야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독립출판과 독립서점 분야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의 미래라고 하면 독립서점만 떠올렸는데, 책과 사람이 만나기 위한 다양한 루트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만큼 내 생각이 편협했다는 증거를 이 책을 통해 발견했다. 부끄러웠다.
책은 인류가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생활의 혁신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매체다. 이 책의 미래가 과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출판-서점인들의 바람대로 희망적일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특히 요즘같이 많은 것들이 달라진 시대에서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