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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삶과 죽음을 넘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설영환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5월
평점 :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시기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다. 제국주의, 전체주의, 식민지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힌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추축국과 이를 막아내려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의 연합군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이 책에서 다룬 생텍쥐페리의 글들은 바로 이 시기에 쓰인(1939~1944) 것들이다. 사진으로 본 생텍쥐페리는 그렇게 젊은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그의 생몰연도를 보니 아주 젊은 나이에 실종 혹은 사망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어린 왕자, 야간 비행 등으로 주로 알려진 그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흔적들, 사상과 행적의 기록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조국 프랑스가 독일 나치 히틀러에 의해 고통받고 있던 시기였던 만큼, 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혼란한 시기를 돌파하기 위한 그만의 해법을 읽을 수 있는데, 주목할 것은 그가 당대의 참혹한 현실이라는 영역에서 제한되어 고뇌했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로 시야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은 산업 혁명 이후로 눈부신 기술의 진보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 찬란한 열매를 눈으로 목격하고 직접 누리던 때였다. 지금 봐도 미래적인 감각이 엿보이는 시설이나 장비들을 통해 인류의 기술이 얼마나 진보했는지, 그리고 그런 진보에 대한 자부심으로 얼마나 들떠 있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학 만능의 열광은 인간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가장 아름답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비웃듯, 가장 비참하고 참혹한 인간의 가축화 혹은 부품화와 전쟁이라는 형태로 이어져버렸다.
독일은 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독재자를 내세웠고,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키며, 동조 세력을 모아 세상을 혼돈에 빠트렸다. 그때 인근 피해국들 중 하나가 프랑스였다. 나치의 공세에 함락당한 프랑스의 현실 가운데 생텍쥐페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나치 비판은 더 큰 차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진단한다. 바로 인간성의 상실이다. 돈도 기술도 인간을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멈추게 했고, 깊은 차원의 영성을 도외시하게 하면서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켰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 본능적인 욕구에만 치중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의 현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있다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참전한 미국 등의 상황을 보면서, 전쟁 이후에 오히려 인류가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큰 산임을 직감하고 있었다.('전쟁보다 저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내일의 세계입니다. 파괴된 마음과 흩어진 가족입니다‘ p.71) 겉으로 드러나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확신할 수 있는 본질적인 것들, 바로 ‘어린 왕자’에서 작은 여우가 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키워드, 혹은 주요 개념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인 것, 정신적인 것의 가치가 상실되면서 비인간적인 참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음을 간파한 생텍쥐페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인류의 비극을 해결할 제안을 하였고, 세상은 이것을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답답한 현실에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그의 마지막 비행에서의 실종은 자유를 찾아 나선 해방된 영혼과, 결국 본인에게 주어진 사명 혹은 역할을 완수해내지 못했다는 슬픈 영혼의 절망과 비애가 뒤섞인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는 인류가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었으며, 어느 때보다도 번성했지만,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것이며, 인간만의 신비로운 특권을 잃어버린 것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전쟁보다 미래에 야기될 영적공동체로서의 인류의 붕괴를 걱정하고 있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이것은 ‘연대’의 상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생텍쥐페리가 내다본 인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얼마나 선지자적 예견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정신과 물질의 조건은 인간이 모두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할 삶의 조건들이다. 어느 하나 모자라면 인간성은 무너진다. 불균형에서 오는 갈등은 곳곳에서 국지적인 분열을 초래하며, 결국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도모하듯, 자기의 이익을 위해 특정 그룹들을 전략적으로 서로 대적하게 만드는 재앙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는 당시의 세상을 이상한 혹성으로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이상한 혹성, 이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엄청난 짜증과 피로에 고통스러워했다. 지성만으로 구원될 수 없음을 감지하지 못하는 인간들 때문에 힘들어했다. 너무나 빠르게 변해버린 세대의 끝자락에서 범해진 인류의 중대한 어리석음은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는 스스로를 실수가 많은 나무라 여기기도 했다. 나무는 풍성한 잎과 열매, 깊은 뿌리로 든든한 느낌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속박된 본체를 가진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마 그의 답답한 심정이 가장 잘 나타난 표현인 것 같다.
그는 인간성의 회복만이 유일한 길임을 믿었으며, 그러기 위해서 인간과 인간이 서로 존중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함을 주장했다. 인간적인 존중의 가치의 소중함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인간이 자유롭기 위해서 그들은 우선 인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문제의 기본은 인간의 문제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p.111) 그는 시대의 발전이 선사한 자유를 끔찍한 자유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자유가 인간성을 말살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성숙과 완성을 향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됨과 헌신이 존중받는 사회, 그리고 각 사람의 삶이 바쳐져 이루어진 사회의 풍요로움이 다시 그 구성원들의 본질을 풍부하게 하는 사회 혹은 세상. 의미 있는 ‘부분’으로서 제 몫을 해내고 싶었던 생텍쥐페리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간절한 진심들을 아름다운 작품들 속에 담아 남겨두고서, 그가 더 사랑했던 지구라는 행성에서 벗어나 태어난 별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 이 책의 아쉬운 점 - 단어의 표기와 띄어쓰기에서 오류가 너무 많이 눈에 띈다.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고 책을 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책을 추가로 인쇄하게 된다면 꼭 고쳐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