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존중 -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론
폴 W. 테일러 지음, 김영 옮김, 박종무 감수 / 리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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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꽤 애를 먹었다. 잘 이해되지 않는 윤리학 강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면서 듣기 위해 악전고투한 느낌이다. 그래도 해제까지 끝까지 읽어냈고, 이제 부족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말해보려 한다.

 

먼저 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에 관한 것이다. 자연을 존중한다는 것의 개념을 막연한 느낌이나 직관의 수준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학문적으로 논리정연하게, 세련되게 다듬은 것이다. 자연환경과 야생 생명체를 대하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인간의 가치실현이나 이상을 평가절하하는 환경 중심적인 윤리로 치우치는 것이 아닌, 이 둘을 통합하는 생명 중심의 보다 포괄적인 환경 윤리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인간 중심의 윤리 체계를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동물, 식물 등 야생 생명체와 생태계)를 윤리적 관점에서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작업을 선행한다. 그리고 도덕적 권리, 도덕 행위자, 도덕 주체 등의 개념을 활용하여 인간 이외의 존재들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음을 논증한다. 예를 들어 식물의 경우 도덕 행위자는 될 수 없지만 도덕 주체로서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보호받고 증진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이때 권리의 개념이 혼동과 오해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가 공통적으로 고유의 선을 추구한다는 보편적 가치체계를 설정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인간과 자연이 공동체라는 인식과 실질적 조치를 통해 조화와 균형의 생존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책은 쉽게 말해 인간이 역사상 지금까지 해온 대로 자연 환경을 파괴하면서 무한정 이득만 취할 수 없고 나아가 생존에도 위협이 될 수 있기에, 판단이나 행위의 근거가 되는 가치관이나 기준의 관점을 인간 중심에서 더 큰 범위와 더 넓은 조건의 생명 중심 관점으로 바꿔 자연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태도를 가지고서 생존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자연을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 또 그 환경들의 총합인 지구까지 동등한 의미로, 즉 우열이 없는 동등한 본래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정하고 상호 의존적인 시스템의 협력적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제한된 경험과 지식 내에서 인간은 지금까지 우열의 관점으로 같은 인간이나 동물과 식물, 산과 바다 등 자연 환경을 오로지 이익과 욕망의 충족 수단으로 삼아 파괴하고 착취해왔는데, 아마 이런 방식으로 인해 자원이 고갈되고 생존 기반 자체가 흔들릴 거라는 징조를 못 보았다면 계속 지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변치 않는 진리라고 믿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학문과 기술의 발전은 무한한 탐욕을 허락하지 않았다. 환경 파괴와 오염으로 인한 기상 이변 등으로 인간의 삶이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눈 앞에서 하나하나 끔찍할 정도로 죽어 나자빠지지 않으니까 인간들은 계속 야구에서 투수가 심판과 스트라이크존을 두고 투구 과정에서 밀당을 하는 것처럼 야금야금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고 있다.

 

이번에 터진 코로나 사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계속 넘나들다가 일어난 일에 불과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속적 생존을 위해 모든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잠시 멈출 수도 있다는 걸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인간 중심에서 생명 중심으로의 자연 환경 윤리관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몇 번 더 당해봐야 가능할 것 같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점은,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졌고, 인터넷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문가 등의 특정 계층뿐만 아니라, 보통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환경 문제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접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전지구적인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진 것이다. 이는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의 중요성을 다룬 저자의 책이 나온 1980년대 당시보다 환경 오염 문제와 생태적 조건이 더 나빠졌지만 동시에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이상 기후로 인해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일들이 2000년대 들어 더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들이 더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한편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들은 결국 자본주의의 속도 조절이나 대안, 혹은 인간 욕망의 절제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조화와 균형, 공유, 순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결국 필요 이상의 생산과 소비가 현재의 환경 문제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속도가 붙은 체제의 돌진을, 당위성이나 뛰어난 논증과 설득으로 돌이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아까 더 당해봐야 가능할 것 같다고 한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멸망해가는 우주의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인류의 절반을 사라지게 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하는 그 사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캐릭터가 상당한 공감을 일으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환경 문제(이 생존의 문제가 우주 영역으로까지 확장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에 대한 보다 실질적이고 타당한 대안은 이 책에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윤리학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 구체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신학이라는 학문이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 혹은 생태학적 관점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이해하기 위해 고민한 것이 대단히 자랑스럽다. 물론 지적 능력의 한계로 이 책의 내용과 가치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앞으로 더 나아갈 디딤돌이 되어주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생명의 보존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인간의 가치 구현과 인간 이외의 존재의 선의 실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탁월한 발상, 이를 설득하는 아름다운 논증의 과정에 진지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리하여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다방면의 수많은 생존을 위한 노력들이 죽음의 경쟁과 투쟁이 아닌, ‘살아가고 살리는협력과 상호공존의 관계로 바뀔 수 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참고로 최근 EBS에서 방영한 녹색동물이라는 다큐를 추천하고 싶다. 식물들의 놀라운 생존 전략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식물이라는 존재의 선의 실현 의지 혹은 성향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 또 자연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생명체들간의 상호 의존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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