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 클래식 클라우드 18
남정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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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작가의 작품들의 특징이 예술과 과학, 인문을 넘나드는 내실의 풍성함에 있다고 할 때, 책 말미에 이르러 그를 ‘20세기의 다빈치로 부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매우 적당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예술을 보는 눈이 깊지 않은 나로서는, 비디오아트나 위성아트, 레이저아트처럼 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쌍방향 소통을 추구하는 예술 활동의 가치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지지만, 소위 전위 예술이라고 하는 파괴적이고 충격적인 작업들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 천재의 예술 세계를 충분히 음미하기에는 역부족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때려부수고, 멀쩡하게 메고 있는 넥타이를 예고도 없이 가위로 싹둑 자르는 행위에 어떤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것인지? 그리고 동의도 없이 관람하는 사람의 머리에 샴푸를 뿌리고 머리를 벅벅 감아주는 행위는? 외적으로 보이는 그의 예술 행위는 틀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일방향적인 성격과 쌍방향 소통적인 것의 간격만큼이나 다채로워서, 제대로 그의 세계를 탐미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쉬운 여행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알려진 것들만이라도 대중을 통해 널리 향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삶과 예술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현실에 붙잡혀 있지 않는 초연한 자유로움이다. 전통과 고정관념, 장르의 벽을 허무는,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는 그의 예술은 부유했던 어린 시절의 집안 배경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어려웠던 시절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고 원하는 것을 대체로 온전히 누릴 수 있었던 그의 어린 시절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겪고, 느낄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주었고, 나아가 세상과 사물을 색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데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다. 그의 성향을 생각해 볼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거나 무언가를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만큼 대단한 업적을 이루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는 운이 좋았다. 그의 천부적인 예술혼이 꽃피울 수 있는 데 필요한 지적, 문화적 자양분을 쌓을 수 있었던 좋은 집안 배경도 있었고, 경제적 문제에서 자유로웠던 그런 성장 과정에서 확립된 물질에 대한 관점이나 성향은, 성인이 되어서 다소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처해도 근본적으로 여유로운 태도를 지닐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즉 본가의 형편이 기울어 실질적으로 돈이 궁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때도,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초연함까지 장착되었다고 할까.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의 경계를 넘나드는 놀라운 예술 활동을 가능하게 한 저변에 그의 풍성한 독서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책 곳곳에서 그가 문자 중독증이라 할 만큼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 신문, 잡지 등등 언제나 읽을거리, 공부거리를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이미 학창시절에도 뛰어난 성적을 거둘 만큼 머리가 좋았지만, 새로운 예술 작업에 필요한 해당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기 위해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즉 그의 작품은 직관과 감각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기초지식과 논리, 인문학적, 과학적 원리를 숙지한 상태에서 치열한 고민과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들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물들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와 미래, 전통과 혁신, 지구와 우주를 관통하거나 넘나들거나 깨부순다. 아마 서두에 내가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그의 퍼포먼스들도 그만한 열정을 따를만한 엄두가 나지 않아 지레 겁먹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백희나 작가가 얼마 전에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반응이 크지 않아 아쉬웠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문화적 성과에 대한 우리나라의 평가나 대우가 너무 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남준 작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혹은 우리가 그렇게 밀어줘야 될 업적이 있는 작가가 있는데도 문화적 자산으로 내세우고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문화강국, K-컬쳐 따위를 떠들어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번에 막연히 알고 있던 백남준 작가에 대해 그의 생애와 예술 활동을 거슬러 살펴본 이 책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어서 좋았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한 한국 작가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알아보고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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