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라, 아티스트처럼 (특별판) - 죽어 있던 생각을 아이디어로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10가지 방법
오스틴 클레온 지음, 노진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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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창조의 갈증을 해소해주거나, 붙잡지 못하고 지나쳐버릴지도 모를 우리 안의 창조의 조각들을 모아서 일을 저지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픈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새롭다는 의미부터 재정의해야 한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구약성경 전도서의 교훈처럼, 모든 창조의 힘은 모방에 있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도 말하길, “쓰여져야 할 모든 이야기들은 이미 다 쓰여졌다. 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은 다시 쓰여져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새롭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개념이나 실제 사물처럼 이미 있는 것들을 재조합하거나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때다. 그래서 독창성이란 들키지 않은 표절이라 말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가능했던 건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던 것도 크지만, 먼저 많은 사람들이 부적절하다고 느꼈던 여러 가지 디지털 기기들의 기능들을 하나의 기기 안에 담겠다는 생각의 실천에 있다. 사실 이미 있는 기술들을 한데 모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세상을 바꿔놓은 것이다.

 

결국 예술가라면, 또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앞선 선배들의 업적이나 아무도 주목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의 성과물들을 참조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모방을 위한 모방은 무의미하다.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존경하는 인물들의 업적을 모으고 베끼고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결을 달리하는 그 순간, 자기만의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예전에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출간되었던 베끼고, 훔치고, 창조하라는 제목의 책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 베끼고, 훔치고, 창조하는 행위는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도구들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앞에 언급한 책이 나올 때에는 인터넷이 지금보다는 영향력이 덜할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요즘처럼 혼자 골몰하며 공부하기 좋은 때가 없다. 당장 몰입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자기가 관심 있었던 책이나 음반이나, 여러 가지 자료들로 가득 채워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감각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이에 대해 남의 것들을 그냥 버려두느니 주워 와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고 했다.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저것 따지면서 시작의 타이밍을 잡으려 한다면 계속 고민한 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에서 자기 존재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경험담을 내놓는다. 시작의 한 예로 카피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여기서 카피란 표절이 아닌 실습의 의미로서다. 뭔가를 배우기 위해 카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작업물을 흉내내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표현해보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것은 기계의 작동원리를 알고 싶어서 분해하고 재조립해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요지 야마모토는 이에 대해 수많은 카피들의 끝에 자기 자신을 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피의 대상이 한 사람뿐이라면 제2의 누군가가 되겠지만, 수천명을 베낀다면 오리지널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들의 정신, 관점을 배우는 것이다. 껍데기만 흉내내는 것은 단순한 도둑질과 다름 없다. 그러라고 작가가 훔치라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니다.

 

좋은 도둑질과 나쁜 도둑질을 분별할 수 있다면 이제는 실전이다. 글쓰기를 예로 들어보자. 보통 잘 아는 걸 쓰라고 배우지만 오히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쓸 것을 주장한다. 기존의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 있다면 그 뒤의 이야기를 자기가 속편을 쓴다고 생각하고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들어졌으면 하는 작품을 써보는 것이다. 이어서 작가는 예술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두 손을 쓰라고 한다. 우리는 주로 컴퓨터를 통해 많은 작업들을 하지만, 창작의 영역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오히려 나와 내 작업물 사이를 가로막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출력되기 전까지는 만져볼 수 없는 디지털 작업의 감각은 반쪽짜리 의미만 지니게 된다. 시간을 들여 리얼한 세계에서 뭔가를 해보는 감각, 결국 자신의 작업물이 대중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들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수작업의 감각은 사람을 흥분시키며 열정에 빠지게 한다. 아날로그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컴퓨터, 인터넷은 이 작업물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유용하게 쓰인다. 그런 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한때 아주 좋아했던 이외수 작가는 스스로를 글감옥에 가두어 집필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감옥문을 구해서 설치한 뒤에 부인에게 문 아래쪽의 투입구를 통해 죄수처럼 음식을 전달받아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윤종신 씨도 아내에게 양해를 구해 자기만의 작업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예능에서 느껴지던 것과는 다른 결의 서정적인 음악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가 감금 상태를 즐겨라라는 챕터에서, 이외수 씨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제안한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환경과 거리를 두거나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더 창조적인 작업물이 나올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세돌이 전성기 시절에 안티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았을 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신경 못 쓰는데,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신경 끈다.‘고 한 적이 있다. 자신의 활동과 결과물에 대해 당연히 비판을 들을 수 있지만, 무조건적인 적대감과 비난은 피해야 한다. 사람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큼의 수준만큼 훌륭해질 수 있다는 원리에 따라, 최고의 사람들을 주변에 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분노에 대한 해법,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 상태에 대한 해법이 인상적이었다. 그 분노 에너지를 불평불만이나 언쟁에 낭비하거나 삭여버리는 대신 글쓰기나 그리기 작업에 쏟아부으라는 조언이다. 분노를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인상적인 말을 앙드레 토레즈가 남겼다. “다른 소프트웨어에 대한 불만 제기는 새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걸로 하는 것이다.” 멋지다. 화는 이렇게 내야 하는 거라는 걸 배웠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주눅들 때,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칭찬 파일을 만들어서 힘을 회복할 도구로 활용하는 팁도 알려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인물들의 특징은 상당히 개방적이거나 퇴폐적 느낌을 가지는 반면에 생활에 있어서는 매우 정돈된 생활 습관을 지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마라톤 완주를 몇 번이나 했을 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하다. 이 책의 작가 역시 비슷한 내용을 말한다. 그러면서 귀스타프 플로베르의 말을 인용한다. “규칙적이고 정돈된 삶을 살 것, 그래야만 당신의 작품이 강렬함과 독창성을 갖게 된다.” 이런 자기 관리에는 올바른 경제 관념을 가지고 빚지지 않는 것과 경제적으로 자유롭기 전까지는 출퇴근이 가능한 규칙적인 일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기록을 꾸준히 남기는 것의 유익도 언급한다. 그것은 스스로 어디까지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크리에이티브는 빼기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앞서 창작을 위한 감금 상태나 고독의 필요성을 얘기하던 부분과 연결되는데, 적절한 제한이 탁월한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영화 같은 창작물이 나오는 과정에서 편집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해 말하기도 하는데,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표현하고 싶은 걸 다 담아낸다고 해서 명작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덜어내고 건너뛰는 것으로 메시지가 더 선명해지는 것이다.

 

책의 사이즈나 분량이 길지 않아 읽기 좋았다. 그렇지만 내용은 묵직하다. 아주 잘 요약되고 압축된, 명쾌한 예술창작 수업을 들은 기분이다. 가끔씩 정신을 환기시키고 싶을 때 찾게 될 것 같다. 번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각의 변비 상태를 해소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지닌 의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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