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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평점 :
[웃프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단어는 요즘 표현인 ‘웃프다’이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상태를 표현한 이 말이 이 소설을 말해주는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잔인하고 비열한 등장인물들을 반어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아이를 괴롭히고 착취하는 장면에서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시켜줬다든지, 인품이 너무 훌륭해서 교육을 위해 사정없이 굶기고 매를 들었다는 식의 묘사 말이다. 또 작가가 반감을 가지는 것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철학, 도덕, 종교, 가치관 등이 인간의 본성 앞에 얼마나 무용하고 허구적이며, 무의미함을 드러내는지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홀로 외롭게 이 세상에 내버려진 한 소년이 당대의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그에게 주어진 시련과 고통의 운명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주인공 소년인 올리버 트위스트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 배경들이 만들어내는 ‘시대상’ 혹은 ‘시대의 분위기’ 자체가 주는 울림이 대단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분량으로는 약 600여 페이지 정도 되는데, 올리버 트위스트의 안타깝고 비참한 고난과 시련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는 그중 1부에 해당하는 250여페이지 가량 내에서 주로 다뤄지고 있고 이후 대략 410페이지까지 이어지는 2부에서는 주인공 소년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통해 당시 영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있다. 3부에서는 주인공인 올리버 트위스트에 대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면서 꼬여 있던 문제가 해결되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주인공이 해피 엔딩을 맞는 과정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되찾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복권 당첨 같은 느낌이라 딱히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희망 고문]
대변혁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산업혁명 시대가 모두에게 장밎빛으로 물든 시절은 아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시스템이 겉으로는 이상을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합법을 가장한 힘의 논리로 소수의 가진 자와 다수의 가난한 자를 나누었듯이, 이 작품에서도 주요 등장인물들은 사회의 어두운 면에서 기생하듯 살아가는 하층민들 위주로 강렬하게 그려진다. 중하층을 구성하는 사람들 간에도 타인보다 더 누리고 빼앗기 위해 다투고 속이고 서로 이용하며 계층을 형성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말하자면 하향식 프랙탈 구조를 볼 수 있다.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 본성에 대한 답답함과 비애감을 벗어나기 힘들다. 희망적인 요소는 오히려 희망 고문에 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인상적인 배경 묘사]
나는 특별히 작품 속 배경에 대한 서술이 인상적이었는데,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방이나 건물 등 내부 공간은 항상 습하고 춥고 지저분하게 때가 낀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나마 난방이 나오는 장면에서조차 난방장치 주변을 제외한 공간은 침울함으로 가득하여 희망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게 묘사하고 있다. 외부라고 다를 건 없다. 비 내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짙은 구름 사이로 나오는 한 줄기 햇빛마저 암울함을 극대화시키는 장치처럼 묘사되고 있다. 땅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항상 오물로 가득한 진흙투성이 등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산업혁명으로 시대가 바뀌려는 시점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 자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주간 연속극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품 자체가 연재물이었던 점도 있고, 총 3부 51장의 플롯 구성은 긴 이야기를 적절한 호흡으로 끊어가면서 지루하지 않게 계속 읽을 수 있도록 조절해주는 특징이 있다. 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 혹은 드라마 작가처럼 어떤 식으로든 아주 인기 있는 스토리텔러로서 유명세를 떨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