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창세기의 우주를 만나다 - 물리학자의 눈으로 탐구하는 천지창조의 비밀
제원호 지음 / 패스오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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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천사

 

장르에 따라 경우가 다르겠지만, 기독교 관련 책에는 추천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책 앞쪽에 여러 사람들의 추천과 감상, 찬사가 쏟아진다. 기독교 관련 책을 만드시는 분들이 추천사 부분을 기획할 때, 기고 의뢰를 할 사람을 한두 사람 정도로 줄이고 불필요한 수식문은 빼고 핵심적인 내용을 짚어주는 내용으로 편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일단 말들이 너무 기시다.

이 책도 여덟 분이나 추천사를 쓰셨다. 다행히 내용과 길이가 적당한 편이라 덜 피곤했다.

 

프로로그

 

과학과 신앙, 물질세계와 비물질세계(영적세계)의 통합적 이해를 지향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과학과 신앙,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두 영역이 모순처럼 보이는 것은 각 영역에 대한, 또 각 영역 간의 관련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이다.

 

 

1부 시간의 창조

- 시간으로 시작된 우주 만물과 시간 안으로 찾아온 창조주

 

먼저 시간을 다룬다. 성경 창세기의 처음 내용은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언급한다. 이때 구약성경 원어인 히브리어로 보면 태초에’, 즉 시간 개념과 함께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은 사건이나 현상이 변화하는 상태를 기술하는 데 사용하는 물리량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본다. 즉 시간은 변화를 전제로 한 개념이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시고 그 안에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인간이 변화할 가능성, 즉 성장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음을 엿볼 수 있다. 변화, 가능성, 성장 - 시간 창조의 의미를 이렇게 풀고 있다.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그 변화

고정적이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뉴턴과 아인슈타인에 의해 차례차례 깨졌다. 시간과 공간 모두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이로 인해 새로운 인식의 패러다임이 일어났다.


창세기의 을 의미하는 시간 개념의 용어를 시간의 상대성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두 관찰자의 상황과 위치에 따라 두 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른 것이다. 이를 지구의 나이라는 수많은 연구와 논란을 일으킨 주제에 대입한다. 초기의 우주와 오늘의 우주라는 대상으로 말이다. 초기 우주는 빠른 기차와 같고 오늘의 우주는 거의 제자리에 있는 집과 같다. 이 두 지점에 있는 관찰자에게 시간은 다르게 느껴지고 시계도 다르게 흐른다. 초기 우주의 시계가 더 느리게 흘러간다.

 

초기 온도, 우주배경복사로 밝혀내다.

빅뱅 이후 물질이 발생했고 이때 초기 우주의 온도는 현재 우주보다 3조배 정도 높다고 한다.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초기 우주의 1초는 현재 우주의 3조 초, 9만 년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 계산을 바탕으로 초기 우주의 1일부터 6일째까지가 현재 우주의 대략 140억년 전후에서 6,000년 전까지가 된다고 한다. 지구 나이가 6,000살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성경에서 최초 인간이 6일째에 창조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를 성경에서 나온 연대순으로 계산하면 6,000년이 된다고 해서, 지구 나이 6,000년 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천지창조 6일을 과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니 과학이 주장하는 지구의 나이 140억 년과 성경대로 계산한 지구의 나이 6,000년의 시간이 모순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크로노스는 기계적으로 측정되는 시간의 양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사람의 시간이다. 이런 양의 관점과 달리 카이로스는 질적인 차원, 즉 정성적이면서 관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시간이다.

하나님은(시간도 그가 만드셨기 때문에) 영원한 현재에 존재하는 분이므로, 우리의 지금 이 순간, 오늘, 현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늘의 중요성을 명심하자.

 

 

2부 하늘과 땅의 창조

-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나타난 창조주의 발자취

 

성경에 나오는 하늘의 개념은 히브리인들의 이해와 세계관에 따르면, 보이는 물질세계와 보이지 않는 비물질세계, 즉 영적세계로서의 하늘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땅은 창세기 12절에 의하면 혼돈과 공허, 흑암, 깊음의 상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보이는 것(, 물질세계)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삶(땅만 보는 삶)의 헛됨으로 풀어내고 있다. 인생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것(영적세계,비물질적세계)들이 있고,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인생은 반쪽만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안드로포스(anthropos)’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하늘, 곧 위를 바라보는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의미를 알려주면서 저자는 인간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하늘을 보며, 하늘의 것을 받아야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존재, 하늘이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고 설명한다.

 

과학과 신앙을 이분법적 사고로 바라보는 것이 문제다. 과학은 보이는 현상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진리나 법칙, 즉 궁극적인 실체를 찾아가는 것이다. 반면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보이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둘은 출발점과 접근법이 다를 수 있지만 다루는 대상에 있어서는 무관하지 않고 연결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의 것이 서로 조화될 수 있을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빛과 어둠, 과거와 미래, 물질과 반물질, 원자를 이루는 핵과 전자들, 그리고 나와 너, 삶과 죽음, 서로 다른 의견들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것들의 조화로 세상이 이루어진 것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설명하고 있다. 반대되는 것이 대립과 갈등이 아닌 조화로 견고한 구조를 가지는 것, 이것을 저자는 신앙적 의미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보통 아래와 같은 패턴으로 이야기를 반복해나가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성질의 입자들이 모여 원자라는 전혀 새롭고 안정된 개체를 창조해내듯이, 서로 원수 같은 '나' '너'가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력으로 당겨질 때 전혀 새로운 차원인 '우리'가 생겨나는 것이 창조주의 섭리일 것이다. 상반되는 나와 너는 '우리'라는 새로운 소속감의 구조 속에서 안정되고 조화로운 균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과 땅을 이루는 창조의 법칙은 무엇일까?

물질에서 에너지를 제거하면 그 형체는 무너지게 된다. 모든 물질과 그 물질을 지탱하는 에너지(아인슈타인의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원리’)의 뒤에는 지적설계라고 할 만한 고도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과학자들은 정보라고 부르고 성경은 창조주의 지혜또는 말씀이라고 부른다. 보이는 세계의 자연법칙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의 법칙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저자는 성경구절과 그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음의 공식으로 정리한다.

 

창조주() 말씀(지혜,정보) 운동력(에너지) 형체(만물)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어떤 법칙일까?

땅에 씨앗을 뿌려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처럼, 영적 세계에서의 씨앗(말씀)도 그 법칙에 따라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이렇듯 자연법칙과 영적 세계의 법칙은 닮아 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심고 거두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자 영적 법칙이다. 싹이 나고 뿌리가 내리고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저자는 처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 기도를 하게 만들고, 세상 염려와 근심을 이겨 내는 성숙한 믿음(말씀에 의지하는 참된 기도를 통해 계속해서 영적 자양분을 공급받는)으로 인내할 때, 하나님께서 뜻하신 계획이 내 삶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자연법칙은 그 자체로 신일까? 아니면 인격적인 부분일까?

이 파트에서는 스티븐 호킹 박사와 레너드 믈로디노프 박사의 공저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우주 만물의 창조 주체에 대해 사람들이, 특히 과학자들이 가지는 입장이 두 가지로 나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나님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인격적인 신이고 다른 하나는 인격성이 배제된 자연법칙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말년에 인격성이 배재된 자연법칙이 곧 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이신론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 입장에 대해 창조주에 대한 지적인 부분에만 의미를 두어 발생한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세상이 보이는 것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듯,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게 되는 길에도 세상 만물을 통해 볼 수 있는 지적인 면과 더불어, 영적 관점이라 할 수 있는 감성과 의지적인 측면도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이신론적 관점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새롭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3부 공간의 창조

- 우주 안에 담긴 만물과 인간 안에 거하는 창조주의 영

 

. 보이는 물질적 공간, 우주

 

공간은 무엇일까?

시간의 개념을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으로 나눌 수 있듯이, 공간도 물질적인 영역과 비물질적인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이는 1부에서 다뤘던 하늘과 땅의 대비되는 개념들과도 연결된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전 역사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아인슈타인 이후로 시공간의 개념이 생겨났고 오늘날 일반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공간은 어떤 특성을 가질까?

뉴턴의 운동법칙에 의해 상대적인 공간의 개념이 등장하였고,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해 상대적인 시간 개념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 시간과 공간은 하나로 얽혀진 시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시공간은 물질의 운동을 결정하며 물질 역시 시공간을 휘게 함으로써 서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관점과 마찬가지로 성경적 관점에서도 땅은 빈 공간으로서의 땅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다. 성경 창세기의 히브리 원어로 태초의 땅을 설명하는 표현들도 혼돈’, ‘공허’, ‘흑암’, ‘깊음등 비어 있는 상태를 묘사한다. 그리고 시간을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여 표현할 수 있듯이 공간도 비물질적인 특징을 가진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물질의 본질은 무엇일까?

저자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의 내용을 소개한다. 이 책의 주된 내용 및 결론은 보이는 물질세계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 원리의 법칙의 따르면 이 또한 모든 물질은 물질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미 성경의 내용으로도 쓰인 것이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3).

 

원자의 내부 구조를 보면 또 앞의 내용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핵과 전자들로 구성된 부분 외의 원자 내의 99.99% 이상 비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런 빈 공간으로 가득한 원자의 형태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 전자기적 인력에 의한 에너지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보이는 물질 뒤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가 물질세계에 대해 우리가 답습해온 유물론적 고정관념이 수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물질 및 그 물질의 질량과 에너지(, )의 관계(물질이 에너지의 조합이라는 것)가 비교적 쉽게 설명되어 있어 좋았던 부분이다.

 

이 다음은 이 에너지의 조합이 가능하게 하는 고도의 지적 설계가 존재함을 언급한다. 물질 뒤에 에너지가 존재하고 에너지 뒤에 또 무언가가 존재함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이것을 정보라고 부르고 성경은 창조주의 지혜라고 말한다. 다시 한 번 물질의 본질은 빗물질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은 성경의 영적 원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우주 만물은 창조주의 성품을 담아내고 있는 공간이자 그릇이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하나님의 영적인 법칙자연의 법칙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현대의 건강 문제에 있어서도 영적 원리는 중요하다. 최근 의학계는 건강에 보이지 않는 인체의 에너지가 중요한 요인임을 밝혀내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의 불균형이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인데, 이 에너지는 곧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다. 앞서 물질의 기본인 원자 구조를 통해서 배웠듯이, 물질인 인간의 몸도 비물질적인 근본을 취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성경이 이야기하는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온다는 것’, ‘그 마음과 영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내용이다. 시간과 공간이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이 밝혀진 것처럼, 영혼과 육체도 마찬가지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반드시 함께 연결 지어 생각해야 될 대상임을 알려준다.

 

저자는 제31파트에서 공간에 대한 과학적 원리와 영적 원리를 고찰한 후, 이를 성경 에베소서 318~19절과 연결하여 하나님의 다차원적이고 위대하신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충만함을 받아 그분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 보이지 않는 영적 공간, 소우주 인간

 

인간은 소우주, 혹은 소우주적 존재라는 표현이 있는데, 저자는 이 말의 근거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교차점에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만드신 이유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길 원하셨기 때문이며, 이 계획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세계(과학적으로 이해되는)와 보이지 않는 세계(영적인 관점 혹은 믿음으로 이해되는) 모두가 하나의 목적성을 가지고 창조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것은 창조주인 신의 자충족적인 계획의 성취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어떤 주체가 현재 상태에 대한 모든 정보 및 상황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미래에 대한 확실한 예측도 어렵다고 한다. 인간의 삶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저자는 인간이 자기 선택을 통해 자기 발전을 이루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기는 하지만, 나 혼자의 선택만 내 인생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생각과 감정이나 선택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삶을 지향한다는 것은 결코 현명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객체지향적 삶이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이 세상과,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가장 성경적이고 지혜로운 방식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안의 세계

공간의 비물질적인 측면을 논하면서, 사람의 내면에도 이와 같이 물질적 육체 안에 신의 사랑과 영이 거할 영적인 그릇과 같은 공간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땅의 측면만 보게 된 것은 창조 이후 벌어진 타락 사건 때문이고 이는 곧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다시 우리가 이 땅 위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혼란과 정답 없음의 삶의 원인으로 설명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바로 이러한 영적 그릇으로서의 인간 안에 새 마음과 새 영을 창조하셔서 그 자리에 다시 신의 사랑과 영이 충만해짐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늘나라의 임재를 완성해가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공간의 과학적, 철학적, 신앙적 의미를 통해 완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의 내부 상태처럼, 인간도 겉사람인 육체와 속사람인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의 내부가 전자기력으로 그 형태가 무너지지 않듯이, 인간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영이 충만한 상태여야 인간이 본래 지어진 그 목적과 상태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불신, 미움, 게으름, 불의가 바로 이런 영적인 에너지의 상실, 혹은 불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이를 죄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깨진 그릇은 그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야 회복될 수 있는데, 아담이 버린 그 말씀을 다시 온전히 다 받으시고 성취하신 것이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의 공로다.

 

저자는 공간의 과학적 의미를 밝히고 이를 다시 성경의 인간론으로 풀어내어, 하나님의 궁극적 계획 혹은 인간이 창조된 목적은 구원받은 인간들이 나 중심(자의식)에 너 중심(타인,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 자아를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변환시켜 진정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그로 인해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있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인간을 그릇에 비유하여, 그릇이 그 안에 채워져 있는 것에 따라 가치와 의미가 정해지듯, 인간도 자기 안에 자신의 생각이 가득 차 있는가 아니면 성령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가에 따라 그 가치와 의미, 즉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으로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따라서 죽음 이후는 아무것도 없는 무라고 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말처럼, 죽고 나면 뇌의 작동은 멈추고 인식작용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간 안에서 작동되는 컴퓨터나 작용하는 뇌처럼 우주의 시작 이전에 대해 인간이 알 수 없듯이, 인간의 인식과 지각 능력은 인간이 죽고 난 이후의 세계에 대해 미치지 못한다. 모두 시공간을 벗어난 세계, 순수한 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도 인간의 몸이나 의식으로 직접 경험할 수 없는 4차원의 시공간 세계를 넘어서는 고차원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4부 빛의 창조

- 물질성과 비물질성을 공유한 빛, 절대자의 또 다른 표현

 

빛 역시 물질적 특성과 비물질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자연현상 및 우리의 일상과 산업, 문화와 예술 전반에 걸쳐 빛의 과학적 특성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이와 함께 신앙적 의미도 생각해봐야 하는데, 빛의 비물질적 특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빛은 상대적인 비교가 없는 유일한 속도를 가지며 이로 인해 절대성과 유일성을 띠고 있다. 또 상대성이 적용되지 않기에 영원성 또한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빛 안에서는 시간이 정지된다. 즉 시간의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 따라서 빛 안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분리가 없어지고 오직 절대적인 한 점(순간)으로 모이게 된다. 즉 영원한 현재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빛과 시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둘 사이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빛 안에서의 시간 개념을 생각하면 쉽게 해결된다고 한다. 빛 밖에서는 현재의 선택과 미래의 결과가 서로 다른 시간에 발생하지만, 빛 안에서는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합쳐진 순간만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빛이 가진 이중적인 특성, 즉 물질성과 비물질성, 유한성과 무한성 등을 성육신 하신 하나님인 예수님의 특성과 비교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빛을 받아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반사체와 같은 역할을 회복하기를, 그 모범을 보이신 생명되신 예수님처럼, 세상에 생명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당부하고 있다.

 

에필로그

 

에필로그에서는 기도를 통해 저자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고 하나님 앞에 점점 낮아지게 되었는지를 고백하고 있다. 구원과 성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라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통해 기독교의 온전한 의미와 가치를 더 넓고 깊게 알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에 관한 부분보다 과학적 발견과 이론을 통해 기독교의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내용이 부실한 것은 아니다. 쉽게 잘 설명해주고 있어 과학과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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