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에 은퇴하다 - 그만두기도 시작하기도 좋은 나이,
김선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롤로그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자주 반복되고 있는 표현이 남들...’이다.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남들이 정해놓은 굴레에서’,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인생에...’, ‘정해진 틀에서...’, ‘남들이 만들어놓은 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삶...’, ‘남들의 방식……

 

이렇게 저자는 지나온 자신의 삶이 대부분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고백하면서, 그 기간 동안 쌓인 피로와 기러기 아빠로서의 외로움으로부터 탈출을 선언한다. 위에 언급한 모든 남들로부터 비롯된 영역 밖으로 과감히 나온 선택은 저자 자신에게 그때까지 붙들어온 삶의 조각들이 꼭 필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없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과 그에 따른 해방감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근본, 오롯이 자기로 사는 삶을 찾는 것이었다.

 

 

1장 내려놓기 아무도 아닌 존재여도 괜찮아

 

기자로서 13년을 일한 저자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직업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 성취감에 대해 긍정적인 진술을 한다. 그러나 기러기 아빠로서 가족과의 유대감이 점점 피부로 와닿지 않게 되어가는 삶은 이내 저자의 삶을 근본적인 의문으로 빠져들게 한 것 같다. ‘그냥 네 식구가 함께 사는 행복한 그림을 그렸다이것이 저자의 진심이었다. 이 부분에서 느낀 것은 이 책이 이미 많은 경험을 쌓여 있고, 또 그것을 통해 지나온 삶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 사람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줄 수 있겠고, 따라서 이 책이 다양한 독자층을 품지는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기러기 남편/아빠로서의 삶은 분주함으로 점철되고, 미래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불분명함으로 저자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게 만들 만큼 지치게 했다. 1년에 두 달 남짓밖에 함께 할 수 없는 가족들과의 시간,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부터의 괴로움은 저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한 삶의 패턴에 파문을 일으킨다. 바로 사표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1년을 쉬고 처음 도전한 일이 농장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장에서의 일 경험은 농사일의 만만찮음과, 육체노동은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사실과, 그만두고서도 1년을 고생한 손목 통증이었다.

 

저자는 나름 좋은 복지를 제공하는 좋은 기업에서 일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저자는 그 시절을 돌아보면서 기업이 좋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실적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즉 궁극적으로는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시행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스템적으로 또한 사람, 즉 개인도 역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의 개념이 된 세상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살고 있다가 그곳에서 떠나보니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한편,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느낀다. 이 부분은 좀 공감이 안 되는데, 생각 없이 엘리트로 살아왔다니... '생각 없는 엘리트', 이 표현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아마 이렇게 인간 자체를 모순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지금 세상과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아닐까 정도로 이해했다.


사람의 공감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공감 능력을 사회와 가정에 적절히 나누어 쓸 수 없게 만드는 사회에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사회생활에서, 일터에서 이런 감정적 소모가 점점 인간을 비인간적 존재로 만들고 있음을 경험을 통해 절실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했는데 그 미래가 현실이 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개인은 세상이 움직이는 배터리 역할만 하는 것 같고, 돈과 명예 외에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 생각해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저자는 더 이상 자신을 사로잡는 인정 욕구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기로 않다. 그리고 은퇴를 고려한다.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틀, 바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성공해야 한다라는 틀에 사로잡혀 있었던 마음을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삶을 지탱하게 하는 기본인 것은 당연하지만 마찬가지로 늘 삶을 허전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려니 하고 의심하지 않았던 삶의 틀',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로 한 저자에게 어떤 삶이 기다릴까?

 

 

2장 뻥치치 않기 자신에게 솔직하자

 

주객이 전도된 삶, 본질에 집중하지 않아 긁으면 꽝만 나오는 복권과 같은 삶으로 여겨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변화를 위해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에게 솔직해질 것을, 또 행운을 불러오기 위한 3개의 키워드 -주의 집중, 끈질김, 긍정- 을 거론한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 그것을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살아왔던 삶, 자신의 그런 기질과 기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몸에 익혔왔던 습관과 삶의 패턴들은, 이제 스스로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답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은 너무 욕심이 많아서라는 결론에 이른다.

너무 많은 욕심을 내려놓고, 또 삶의 행복을 직업적인 성공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으로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고, 회사 밖은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미생의 대사에서 지옥천국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준비를 마친 저자의 모습이다.

 

아내를 잘 만났고, 아이들이 문제없이 잘 지낸 것이 저자에게는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존재,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삶의 만족과 행복을 채우는.

 

근면 성실만이 절대 선은 아니다

욕심을 줄인 상태에서, 일단 가능한 선에서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위해 일을 벌이고, 거기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우고 개선해나가는 삶을 선택한 저자는,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가족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겪게 되지만 그것조차도 소중한 행복의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일과 생활을 병행하면서, 조금 덜 먹고 덜 누리더라도 가장 소중한 가족 관계를 중심으로 진정한 삶의 행복을 엮어나가기 시작한다.


2장에서는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강요된 노동 윤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나타난다.

 

 

3장 소비 줄이기 - 자발적 빈곤 속의 풍요

 

8집안

현대인에게 필수품인 대표적인 8가지 전기 제품인 텔레비전, 스마트폰,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빨래건조기, 다리미, 토스터기, 전기밥솥을 가지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편과, 그것을 넘어서는 유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없어도 죽지 않는 것은 없어도 괜찮다. 도시에서 살면 어려운 일이지만 자발적 빈곤을 결심한 저자에게 이것은 고난을 넘어 얻는 기쁨을 갖게 했다. 이것 역시 몸을 움직이고, 건강해지고, 궁극적으로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으로 귀결된다.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없다/ 6가지 소비 원칙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 엄밀하게는 모든 하루하루가 다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건은 웬만하면 사지 않고 사더라도 중고를 산다. 남이 쓰던 것에 대한 거리낌은 말 그대로 감정의 문제이지 감각적으로 어떤 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냉장고는 반 이상 채워두지 않으며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다 먹고 나서 장을 본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요리가 나오는데, 참신하게 맛있는 요리가 나오기도 하고, 맛이 없는 조합이 무엇인지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수시로 버리면서 공간을 넓게 활용한다. 한 달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필요 없는 것이다. 그걸 끼고 살면서 공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은 미국에 살고 있는 저자 가족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미국에서 사는 자체가 여행이며, 가까운 도시에 한 번씩 나가는 것도, 일 년에 한두 번 한국에 나오는 것도 여행이 되기 때문에 그 외에는 따로 여행이라고 나서지 않으면서 소비를 줄인다. 집에 대한 퀄리티나 크기에 대한 욕심을 줄인다. 살기에 적당히 튼튼하고 위험하지 않으면 된다. 앞서 나열된 소비 원칙에 의거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일반적으로 좁다 여겨지는 집도 넓게 사용한다.


현실적인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니라 가족 행복이 중심인 기준을 통해 소비를 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행복을 구축해간다.

 

물건을 소비하는 방식

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것은 스스로 하거나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드는 방식으로 아낀다. 자발적 빈곤이기 때문에 적은 수입 내에서 철저히 재정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경우도 가장 경제적으로 오래 탈 수 있는 차종을 선택했다.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누렸던 것들 중 상당수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은 건강을 찾아가는 재미, 아빠와 남편 노릇을 하는 재미, 집안일을 직접 하는 재미를 얻는 것이다.


4장 끊기 -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도 끊었더니 죽지는 않더라

 

줄이지 못해 끊어버리다

인터넷,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 ~ 인터넷은 가장 효율성이 높은 인류의 발명품이기는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간은 가족관계나 대인관계가 소원해지고, 무의미한 정보를 검색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삶이 피폐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저자는 강력한 인터넷의 영향력에서 자력으로 벗어나기 힘든 사실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인터넷을 끊는 선택을 하고 2년이 지났다고 한다. 인터넷을 못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은 때로 비효율성이 필요한 존재임을 주장하며,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뿌듯함을 피력한다.

 

커피, 작은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 ~ 커피 역시 저자에게는 인생의 필수 같았으나, 끊고 나니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힘들었던 커피 끊기와 그 이후의 상태를 기록한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는 경제적 이득, 건강 증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인한 인생의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작지만 중대한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밖에 고기와 영양제, 설탕, 술 등 하나를 끊으니 다른 것들도 하나씩 끊어가기 시작한다. 저자는 의존하던 것들에 대한 반작용을 계속 언급한다. 가족의 행복과 건강뿐 아니라 이제는 환경에까지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선택을 고려하게 된다.

 

졸음과 스트레스 ~ 너무 많이 자면 불안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이 자연스럽게 느낀다. 하루에 6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는 한국에서의 삶에서 얻은 고정관념이다. 평소에 못 잔 잠을 주말에 몰아자거나 하는 불규칙한 잠 패턴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충분한 잠이 오히려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그제서야 부담 없이 잠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스트레스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 생활 중 아무 것도 안하는 것에 대한 어색함과 불편함이 해소되기까지는 시간이 약일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이 약간은 자리가 잡히고, 많지 않지만 글쓰는 일도 종종 하게 되면서, 한국에서의 일 패턴과는 다른 삶과 일의 패턴에 적응하게 되었다. 자신의 능력 밖, 조절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내려놓기를 실천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스트레스가 줄어들면서 건강은 더 좋아졌다.



5장 금융, 현명하게 이용하기 - 빛 권하는 사회의 이면

 

저자에게 이전까지의 좋은 삶에 대한 그림은 주로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인데, 잠깐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이 이 5장에 언급되고 있다. 수입이 없는 기간이 상당한데 어떻게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벌어놓은 것에 대해서는 제쳐두고라도.

 

서울 강북의 집을 팔아 미국 대도시에 있는 타운 하우스를 하나 사고, 거기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에 조그만 조립식 주택이 딸린 땅을 샀다. (중략) 생활비의 일부는 타운 하우스를 렌트해서 받는 돈으로 충당한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주택 시장이 거주용 또는 월세용이기 때문에 월세를 받기가 비교적 쉽다. 물론 많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시골로 이사함으로써 생활비를 월세에 맞췄다.’ (p.181~182)

 

저자는 2008년 금융 위기 시절에 펀드 투자를 하면서 큰 손해를 보는 기간도 있었지만 어쩌지도 못하고 꾹 견디고 있다가 다시 상당한 수익으로 전환되면서, 그 수익으로 빚을 갚았다고 한다. 그리고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이나 서울에서 거주하던 (조금이라도 값이 오른)아파트를 팔아 위에 인용한 것과 같은 과정으로 미국에서의 기본적인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이 가족의 기본 생활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은 부동산으로 인한 수익인 것이다. 물론 강남의 최고 부동산 부자처럼 엄청난 대출을 통해 부동산들을 왕창 사들인 다음 가격을 올리는 비상식적 경제 시스템에 일조하는 그런 성격의 부동산 수익 창출은 아니지만, 어쨌든 생활의 기반이 되어줄 도구로 부동산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빚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에는 최소한으로 발을 담그고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전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 번 빚을 지면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고, 결국 시스템에 종속되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자생활을 통해 여러 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스템에서 축적한 자본을 통해 미국 생활을 지탱하는 수익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젊은 세대에게 삶이란 것이 근본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가치가 모순되는 형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지만 월세가 나오는 부동산이 하나라도 있다는 점이 내가 매일 출근하는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되는 데 원천이 되었다’ (어쩌면 이 말이 이 책의 또 다른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5장에서는 자본주의의 핵심이 되는 은행의 기원과 지급 준비율이란 개념을 통해 사상누각의 속성이 심한 현시대의 금융 시스템을 심각하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은퇴 이후의 삶의 방식을 고민하면서 기자 생활을 그만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다가 어느 순간 삶의 의미가 무너지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고 또 길었지만, 변화된 삶의 방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극복한 케이스. 그래서 은퇴 혹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앞둔 사람들에게 인생이 경제적인 측면만 준비된다고 다가 아니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 돈이 있든 없든 그에 맞는 삶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의미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살거나, 없으면 없는 대로 삶을 비참하게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장 내버려두고 있는 그대로 즐기기 - 스스로 강해지는 법

 

내버려 두고 있는 그대로 즐기기를 말하면서 자연 농법에 대해 먼저 얘기한다. 인위적인 조치를 하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식물이 더 뿌리를 깊이 내리고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더 강해지듯이, 사람도 때론 미디어나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공백, 여백을 통해 더 깊은 열정과 인내심을 기를 수 있다는 이야기 같은데…… 저자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유발 하라리의 예가 눈길을 끈다. 일 년에 두 달 동안 외부와 단절한 채 명상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학자의 삶에서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철학이란 무엇인지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둘째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며 가족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경험을 들려준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은 있는 그대로 기다려주고 헤아려주고 안아주면서 해결되었다. 가족의 행복이라는 애초 은퇴의 목적을 다시 재확인하고 달성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원칙을 세우고 지킨다는 것이 말로는 당연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일관성이 결여된 국가의 정책이나 그런 성격의 가부장적 가정환경, 업무 외의 부분까지 감당하기를 바라는 직장, 사회 환경이 서로에게 눈치를 보게 만드는 문화인 것이다. 그런 문화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의 입장에서, 미국적 사고방식을 하는 첫째와 항상 활발한 둘째와의 관계가 시작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렇게 자기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며 좋은 아빠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적당히 눈치껏 얼버무리는 관계가 아니라 가족 간에도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가운데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아니라 현재,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즐기고 누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becoming보다 being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커리어 대신 존재와 관계에 집중한다는 것.

둘째 아이의 한국어 구사 문제로 아내와 둘째 아이가 한국에 가게 된다, 한 한기에 해당하는 기간을 첫째 딸과 단둘이 보낼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 깨닫게 된 육아의 어려움과 전업주부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저자 자신에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된 시기였음을 얘기한다.


7장 기본으로 돌아가기 - 주객이 전도된 세상

 

직접 하기 ~ 아웃소싱의 일상화가 가져온 폐해

아웃소싱, 남에게 일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가 직접 일을 해나가면서 한국에서 살 때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일들이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아웃소싱의 기본은 외부조달인데, 그 목적은 효율성과 비용 절감이다. 그런데 사회적인, 공적인 모든 부분에서 아웃소싱이 이루어지다 보니 인간관계가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뀌는, 즉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꼭 필요한 부분들마저 점점 외주화되면서, 저자는 이렇게 가다가 인간관계마저 아웃소싱하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며 우려한다. 일정 부분 그런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역할 대행 서비스 같은 것들.


직접 일을 하다 보면 설거지처럼 적응이 쉬운 일도 있지만 조금 더 노력을 요하는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색하고 시도하고 요령을 익히는 과정에서 스스로 이름 붙인 두 번째의 법칙을 발견한다. 어떤 일이든 두어 번 해보면 그럭저럭 어렵지 않게,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다 소중하며 집안일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중요한 깨달음이다.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도.

 

현재에 존재하기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 사회의 기대치가 저자의 삶을 얼마나 휘어잡았는지, 객관적으로 보기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할 만한데도, 거기에서 탈출한 것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모든 삶의 기준과 선택에 나의 결정이 관여할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것도 타의에 의해. 그런데 그것이 온전히 자기 삶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 무엇이 진정한 자신의 선택인지 항상 고민하면서 살지 않으면 정말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내 생각인 줄 착각하며 평생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각 능력으로 봤을 때, 한 번에 하나씩 하는 것이 더 효율이 높다는 것, 멀티태스킹은 오히려 인지, 판단 능력을 떨어트린다는 것, 어제와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려주는 달라이 라마의 명언 등을 통해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한 가지 일을 한 번에 정성껏 하는 비효율의 즐거움과 행복은 인공지능이 결코 알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묻기 ~ 라는 질문을 하자

인생이나 실생활에서 하는 구체적인 일 등에서 끊임없이 이유를 묻고 생각하게 되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방향을 잃고 헤맬 위험을 줄이는 유익이 있다. 또 삶에 정확한 답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작업에 대한 결과물도 나쁘지 않다. 불확실성은 삶을 어렵게 만들거나 그저 수동적인 수준에 머물게 만든다.

 

지속 가능하게 살기 ~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말자

기러기 아빠로서의 삶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만큼이나 비정상적이었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삶의 방식이었음을 고백한다. 양식 연어로 인해 자연 연어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 비교하고 있는데,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의견이 나올 수도 있겠다.


8장 샴페인 터트리기 - 즐겁게, 다르게, 충만하게

 

현재를 충실하게 즐기자

남들과 다르게, 과거와 다르게 살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 패턴에 변화를 주는 것을 새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내가 남들을 보고 따라하려는 것처럼 남들도 나를 보고 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고 격려하고 열심히 달려가면서 발전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을 때 한 번쯤은 나 자신으로 시선을 돌려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방식을 찾으려고 시도해보는 것, 성공적이었던 기존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힘, 이것에 대해 저자는, 시선을 자기에게로 돌리고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에는 뉴 스타일로 대응해야 한다!

 

책 말미에 이르러, 지루하고 심심한 삶일지라도 충만하고 의미 있는 지금의 삶을 다시 한 번 소개하고 있다. 매일 샴페인을 터트리는 충만함이. 다시 한 번 주목되는 것은 저자가 아내를 참 잘 만났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행을 선택하기 몇 년 전에 이미 기러기 남편에게 아내가 미국에서 같이 살 것을 권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작은 일을 하더라도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과 함께. 그러니까 저자는 여느 기러기 아빠들처럼 완전히 공간적·심리적 격리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읽을수록 아내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할 수 있는 자유보다는 하지 않을 자유, 흔히 자유라 하면 뭔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채우는 것만큼 비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삶의 진리를 자유에 적용하며,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의지를 행사했다고 말한다. '뭔가를 한다, 안한다'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것인가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족하는 삶일 것이다.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려면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에 반해 얻는 것은 삶의 충만함과 넉넉한 마음이라고, 저자는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수상 안전 요원이 되다

이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다. 우연한 기회에 수상 안전 요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관련 자격증 프로그램에 등록한다. 10대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훈련받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달은 삶의 진리, 처음 틀을 벗어나 느꼈던 바로 그 진리, ‘지금을, 현재를 마음껏 즐기고 살라는 메시지, 바로 ‘Carpe Diem’이다.

 

 

에필로그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서 성실한 삶을 달려오면서 사는 대로 살다 보니 자신의 존재 가치도 무의미해지고, 가족까지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위기와 피로감 - 지쳐버린 자신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던 저자에게 있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은퇴의 의미란, 대체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새로운 삶-진정한 행복을 찾아 누리는 삶의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남의 시선을 걱정하고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는 삶에서 일탈한다는 것이 인생에서 허무맹랑하기만 한 선택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 사이사이에 저자가 읽고 인용한 책 제목들이 많이 나오는데, 책 뒤편에 그 목록(책 제목과 출판사, 저자 정보 등)을 한번에 볼 수 있게 정리해두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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