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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강유원의 "책과 세계"를 읽고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는 문장에 홀딱 반해 "몸으로 하는 공부"까지 한달음에 읽게 되었다.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2주 전, 그러나 기대한 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우선 저자의 표현대로 '잡문인 만큼 논리적 연결고리가 없고 겨냥하는 독자가 없었으니 누구 읽으라고 쓴 글인지 알 수 없으며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잡문집이었다. 다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에 인문학적 매스를 들이대는 강유원의 '방법론적 시니컬'한 글쓰기만은 마음에 쏙 들었다는 걸 밝혀둔다.
그렇다면 '방법론적 시니컬'함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책읽기와 쓰기를 인생의 알리바이로 삼은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책은 왜 읽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반드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 이 물음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라고. 나는 철학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철학박사와 논쟁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질문에 대한 강유원 식 '방법론적 시니컬' 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아래 나오는 글은 본문 p152부터 p163 에서 그대로 옮겨왔다. (리뷰가 아니라 밑줄긋기로 옮겨야 하나..)
책에 따르면 저자는 본래 시니컬한 사람이다. 그 시니컬을 만들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인간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명료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게 의심스러우면 아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즐기면서 살아가면 좋으련만 한순간만이라도 정확한 뭔가를 가지고 싶은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으니 그 게 문제다.
그리고 영원한 것을 포기하니까 순간의 정확성에 집착하게 된단다. 마치 염세주의적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 '어차피 인생은 불행하니까 당장이라도 즐겁게 살자'는 마음-이런 것을 우리는 '낙관적 염세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으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래서 순간순간 살아가며 매사에 개념을 따진다. 바로 고민하고 의혹을 제기하며 결론에 대해 회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세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개념을 묻는 질문은 'what is it' 이 질문은 본질을 묻는 것이다. 따라서 개념=본질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둘째, 그는 위에서 '세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기보다는 대답하는 방법부터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이는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답을 제대로 해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러한 대답을 주는 학문 분과는 무엇인가? 철학? 형이상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그런데 '세상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의문에 자연과학적 방법이나 사회과학적 방법으로는 대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서 형이상학적 질문에 답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결국 이런 질문에 답을 내려면 그냥 정처 없이, 지도도 없이 각자 알아서 '세상의 본질'을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 본질에 대답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그런데 그는 '삶이 무엇인가' '세상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철학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서 찾아보려고 한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사회'에 대해서 깊이 따져 봄으로써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나,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철학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어려움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가 워낙 변화무쌍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사회에 관해서도 상대적 개념과 잠정적인 규정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고 이런 상황이 자신이 시니컬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그러나 시니컬할망정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강유원의 '시니컬'은 철저하게 본질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론적인 시니컬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위에서 옮긴 것처럼 잡문집 '몸으로 하는 공부'는 책이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무엇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개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강의평가제를 쿠폰으로 해결하자는 대답처럼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철저하게 본질을 찾아내기 위한 그만의 방법론적인 시니컬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 방법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안 들 수도 있다. 그건 각자 공부하는 방식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애초에 기대했던 대답은 얻지 못했지만 세상의 끝을 찾아나가는 길에서 얻은 '방법론적인 시니컬'이라는 무기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이제 그 무기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읽은 이의 몫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