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플레이어 원 - 2045년 가상현실 오아시스 게임에 숨겨진 세 가지 열쇠를 찾아서 AcornLoft
어니스트 클라인 지음, 전정순 옮김 / 에이콘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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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사실 영화를 먼저 접했기 때문에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났고, 만족스러운 전개, 매력적인 배우들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영상에는 다 담아내지 못한 무엇인가가, 더 깊은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지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변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표지는 영화의 후광을 직접적으로 이용하려는 노골적인 의도가 느껴졌습니다. 띠지로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 같았으며, 기존 표지에 대한 궁금증만 커져갔습니다.

이는 소설 내용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식었거나, 불확실성에서 나온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간혹 원작이 영화나 다른 2차 작품들이 훨씬 좋았던 경우들이 있어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이어지는 종교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흥미를 유도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반 신앙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종교적 이야기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엿보였습니다. 물론 주인공의 환경이 누가 봐도 불우해 보였고, 착취까지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비슷한 상황, 혹은 같은 환경에 있는 이웃은 신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대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종교적 입장의 반대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보여주었을 뿐이며, 그것은 나름의 존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저 그의 이웃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우리들 중 누군가로 표방되는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평범한 존재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듯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그곳에서 딱히 필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도 아닌, 그만의 판단으로 내린 선택 같았습니다.

이는 종교적인 논쟁거리를 만들기보다는 각자의 상황을 수려하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분명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끼겠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것도, 긍정하는 것도 개인의 영역이며,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임을 말하는 듯했고, 저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포함되는 듯했습니다.

초반의 이러한 흐름은 한순간에 책에 빠져드는 요소가 되기도 했으며, 이후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저자가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책과 영화들을 보고 자신이 선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온 힘을 다해 표현하고 녹여내려는 것 같았습니다.

단순하게 지식을 펼쳐놓는 것이 아닌, 그것을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온전하게 습득한 뒤 여러 표현들을 통해 뿜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스타트렉의 "페이저 조준 완료"를 이야기할 때는 소름까지 돋았습니다. 단 몇 마디일 뿐이었지만 이 시리즈를 봤던 기억을 한순간에 떠오르게 했고, 긴 시간 함께한 감흥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대략적으로 알고만 있었다면 절대 그런 감정을 일으킬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 정확히 인지한 상태로 담아냈으며, 이는 추억을 통해 웃음 지을 수 있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영화도 그랬지만 해당 도서 역시 이런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와 전체적인 흐름과 인물만 같을 뿐 전개되는 방식과 등장하는 게임 캐릭터, 게임, 영화 및 각종 작품들은 대부분 달랐습니다. 그저 일부 겹칠 뿐이었습니다. 멜로적 측면이 더 강조되지 않았고, 인물들 간의 우정 역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훨씬 완벽하고 직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더 세심한 묘사들이 흘러넘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로 넘어가면서 영상화할 때, 각종 라이선스 협의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 금액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녹여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각색이 필수였을 테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은 놀라웠습니다.

물론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만큼은 분명하게 같은 선상에 있는듯했지만, 전혀 다른 작품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같은 제목을 갖고 있을 뿐인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오히려 훨씬 많은 요소들을 충분히 집어넣은 도서의 힘이 더 강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삶에 대한 것이며, 그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말하고자 하는 듯했습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과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고 맞서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낍니다. 오히려 눈을 돌리려는 경향이 강하며, 사실 자체를 외면하고자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다가온 파도를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모두 받아내야 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파도를 넘을 수도, 그것에 올라탈 수도, 그저 휩쓸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무엇인가 해야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것이며, 차분히 또 다른 곳으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와 도서의 결정적인 차이는 주인공의 모든 선택과 행동들이 영화보다 도서가 훨씬 더 풍성하게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인용하는 작품들이 더 많다 보니 그것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해당 도서를 다시 볼 때는, 도서 내에 등장하는 각종 산물들인 게임, 음악, 영화 등을 더 경험해 보고 시도해 본 뒤에 새로운 느낌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면 훨씬 풍부한 묘사와 감동이 찾아올 것이 분명하며, 이전보다 더 즐거운 소설 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이며, 이해할 수 없는, 즐기지 못할 콘텐츠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추억이며, 그 추억을 자극받은 이들에게만 좋은 느낌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순간도 기억이 되고, 추억으로만 남을 것입니다. 분명 언젠가는 같은, 혹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이라는 이 순간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점

  • 인용되는 캐릭터, 영화, 게임 등의 요소들이 너무나 방대해서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방대한 분량과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으며, 자칫 피로도를 느낄 수 있지만, 일부만 그것들을 알아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은 요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추억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영화와는 전혀 다른 내용 전개와 이야기 때문에 당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설을 먼저 보거나, 소설만 접했다면 해당되지 않을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도서이기 때문에 영화보다 먼저 접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 때문에 먼저 출판이 되었음에도 외면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소설과는 인물과 일부 등장 작품이 겹칠 뿐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즐겁게 볼 수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측이 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접하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 전반적으로 80년대를 추억하지 않는다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방대하게 인용된 작품들은 대부분 과거의 것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대중적이어도 시대적 특성을 탈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이해도가 떨어진다면, 도서에 대한 흥미 자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먼저 독서를 한 뒤, 도서에서 만나는 작품들을 추후에 일부라도 다시 보거나 경험한 뒤 추가적인 독서를 한다면, 훨씬 더 흥미롭고 풍성한 느낌이 될 것 같습니다.


총 평

극한의 상상력을 활용한 새로운 이야기인지에 대한 것은 의문으로 남지만, 80년대를 겪었거나, 당시 작품들을 어느 정도 알고, 좋아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는 내용들이 흘러넘칩니다. 단순하게 이것들 중 하나는 걸리겠지의 의도보다는 저자 본인이 경험했거나 접했던 것들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충분히 공부한 뒤 온전하게 녹여낸 것 같습니다. 또한 삶에 대한 지극히 단순하지만 진리에 가까운, 철학적인 이야기를 흥미롭게 섞음으로써 우리 자신, 삶에 대한 방향과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수 있는 조금은 심도 있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도서인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8 구성 8 재미 9 재독성 9 표현력 8 가독성 8 평균 8.33)

SF 소설에서 접하게 된 삶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

이런 아이템들은 오아시스 서버에 저장된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 P89

바로 그때였다. 하늘에서 쇳덩이가 떨어져 두개골에 내리꽂힌 느낌이었다. 나는 같은 반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많은 것을 배워야‘하는 집단은 대체 누구인가?
학생들이었다. 고등학생들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바로 그 행성에 있었다. - P103

어스름이 질 무렵 나는 승합차 밖으로 나와 차문을 잠근 다음 열쇠를 폐차 더미 어딘가로 휙 던져버렸다. 그러고 나서 책가방을 들쳐 메고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빈민촌을 벗어났다. 나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P237

그녀의 답장은 점점 길어졌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였다. 얼마 후부터는 점점 내용도 길어지고 더 속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은 주고받기 시작했다. - P253

이 장치는 내 감각을 속여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세상에 살도록 만드는 정교한 기계 덩어리에 불과했다. 장치의 부품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감옥의 빗장이었다. - P287

몸에 덜컥 이상이 왔다. 숨쉬기가 곤란했다. 일종의 공황 발작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장이 덜덜 떨렸다. 정신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나는 머리가 약간 돌아버렸다. - P341

오히려 사진 속의 얼굴은 그녀의 아바타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생명이 깃든 진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 P419

바로 그 순간 키가 크고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아바타가 우리 뒤에 나타났다. 그레이트 앤 파워풀 오그, 바로 오그던 모로의 아바타였다. - P448

나를 둘러싼 막강한 두 군단이 지상과 공중에서 격돌하는 장면에 나는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찌나 격렬하고 압도적인 광경인지 꿀벌집과 말벌집 여러 개가 서로 부딪쳐 박살이 난 다음 거대한 개미집에 떨어진 듯했다. - P482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몰랐지 나는 평생토록 두려워만 했었다. 끝이 가까웠음을 알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단다. 현실은 두렵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알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지. 현실은 실제 삶이니까. - P527

그때, 나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생애 처음으로, 오아시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 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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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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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영화를 통해 이미 유명세를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접한다고 해도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표지는 충분히 흥미를 돋울 수 있습니다. 표지만으로도 분명 어둡고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무겁거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딘가 사람을 끄는 무엇인가를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스티븐 킹이라는 인물의 명성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직접 판단을 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폴이라는 인물은 갑작스럽게 펼쳐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어딘지 혼란스러워했으며, 그런 그의 상태와 심경을 고스란히 문체에 묻혀냈습니다. 그는 한 가지 생각을 지속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끼워 넣으며 끊기는 일 없이 다른 말을 꺼내고, 다른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혼란스럽기에 이것저것 내뱉지만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특정한 공간에 갇혀, 고문당하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등 어렵사리 삶을 유지하고 있는듯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정신이 없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살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신작은 다분히 애니라는 인물 때문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표현처럼 옳지 못했고, 또다시 살기 위해 옳은 길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잘못 선택한 옳지 못한 길은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충고 및 조언을 따르게 됐고, 최악의 관계에서 최고의 관계가 되고 있었습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말도 안 되는 집착과 행동으로 이끌어낸 이야기이며, 결코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였음에도 그들은 어딘가 닮아있었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관계가 끝까지 유지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도서를 읽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으며, 그것이 끝날 때를 기다리는 길고 흥미로운 과정이 해당 도서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관계가 끝을 내기까지의 힘겨운 여정은 그가 집필했던 새로운 소설을 마무리함으로써 함께 종료됐습니다. 그는 다분히 전략적으로 그것을 이용했고, 살아남았으며,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런 영광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당했다는 것과 그것을 만들어준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소 특이한 결론입니다.

단순하게 권선징악이라고 칭하기엔, 그녀를 괴물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 동안 그는 그녀처럼 어떤 괴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의 인간성을 포기하면서 만들어진 그 괴물이 있었기에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사소한 계기가 그를 또다시 글 쓰게 만들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누군가가 탄생할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그가 겪었던 끔찍한 일의 재연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신작의 이야기는 또 다른 미저리가 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또다시 피해를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에도 그는 글쓰기를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고, 그런 괴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괴물이라기보다는 그런 행위에 중독된, 노브릴을 찾지만 더는 필요 없을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독이 된 것은 그만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나도, 우리도 이미 그가 새로 쓴 스컹크로 시작된 이야기를 궁금해한다면,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잔혹하건, 또 다른 끔찍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기다리는 모습으로 중독된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 고통도, 감정의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처럼 그 자체를 즐기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점

  • 다소 잔인한 상황이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해당 도서의 장르적 특성일 수 있으며, 서사를 만들어 내기 위한 단순한 장치일 수 있지만, 쉼 없이 그 잔혹성이 펼쳐져서 독서에 거부감이 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펼쳐진 것이 아니라 모두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 갑작스러운 전개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시작부터 아무런 정보 없이 갑작스럽게 펼쳐진 이야기는 서사가 뒷받침되지 않은, 자극적인 사건을 연출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전개되면서 차분하게 서사를 충실히 채우며, 그의 과거를, 이전의 모습을 자세하게 담지 않음에도 자세하게 만들어 냅니다.


총 평

이야기를 엮어내는, 뿌려진 이야기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이 몹시 흥미롭습니다. 작은 승리와 실패가 연달아 이어지면서 양 극단에 있는 듯한 감정을 순차적으로 끌어냅니다. 다소 잔인한 상황과 표현들이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단순하게 소설의 소재로 소모된다기보다는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서사들이 충실하게 담기지 않고, 어딘지 부족한 그들의 과거를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채워진듯하며, 그런 빈 공간들이 이유 있게 비어있는, 비어있지만 분명히 채워져 있는 듯한 모습을 담아냅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8 구성 8 재미 8 재독성 9 표현력 8 가독성 8 평균 8.16)

어딘지 비어있는 모습까지도 의도한 것 같은, 잔혹하지만 잔혹하지 않은 집필 과정.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80040253


감상자(鑑賞者)



고통은 단지 오고 가는 것처럼 보일 뿐, 말뚝과 같았다. 때로는 덮여 있었고 때로는 모습을 드러냈지만 항상 제자리에 박혀 있었다. - P19

애니의 얼굴이 이상야릇하리만치 무표정한 모습으로 변했다. 폴은 이런 식의 고집스러운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다. 거의 냉혹함을 과시하는 수준이었다. 보기만 해도 불안해졌다. - P139

폴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죄책감 대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 괴물 같은 여자는 폴에게 저지른 갖은 학대에 덧붙여 그가 죄책감마저 느끼도록 했던 것이다. - P177

시작부터 이야기 구성이 역동적이었고, 등장인물들이 생생하게 움직였다. - P279

갑자기 너무나 무서워졌다. - P279

‘만약 우리가 1969년 3월 당시의 간호사 명부를 들춰 본다면, 윌크스라는 이름이 튀어나오겠죠? 여러분, 어쩌면 곰 한 마리가 숲 속에서 미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걸까요?‘ - P320

짧은. 오랜. 오랜. 짧은. 오랜. 오랜. 짧은. - P329

폴은 비명을 지르며 불에 타고 피로 물든 침대 속에서 몸부림쳤다.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하얗게 질렸다.

"이제 너는 절름발이가 됐어. 나를 욕하지 마. 네가 저지른 잘못 때문이니까." - P382

그런 짓을 한 건 내가 소설 줄거리를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또 애니가 그런 나를 무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했기 때문이야. 애니의 행동은 분노의 표시였어. 분노는 깨달음이 낳은 결과였고, 무엇을 깨달았는데? - P417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진실은 단순했다. 그는 애니를 ‘직접‘ 처리하고 싶었다. - P491

잠시 동안 성냥불이 맥없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소름 끼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곧이어 ‘후룩!‘ 소리와 함께 표제 쪽 위로 연한 푸른 불꽃이 퍼져 나갔다. 불꽃은 종이 더미 바깥쪽 가장자리를 따라 흥건히 고인 찐득거리는 기름을 먹어치우고 옆면을 훑으며 순식간에 달려 내려왔고, 강렬한 노란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 P525

애니 때문에 망설인 게 아니었다. 원고 때문이었다. 진짜 원고. 폴이 불태웠던 원고는 맨 위에 표제 쪽만 올려놓은 가짜였다. 쓰다가 망친 원고와 써 놓고 보니 맘에 안 들어 버리려던 원고들 사이사이에 빈 종이들을 끼워 넣은 가짜 원고일 뿐이었다. -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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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모양 상자 모중석 스릴러 클럽 10
조 힐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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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상

무엇인가 마법진 같은 느낌이 나는 표지가 독특함을 약간 주기는 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유치한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내용이 더 중요하겠지만, 미스터리함을 강조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또한 책의 두께가 상당하여 자칫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어려운 독서로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이런 우려를 가진 채 도서는 어딘지 난잡한듯한 이야기가 시작되며, 인물을 대략적으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집중이 잘되지 않았고, 계속된 서술이 아무런 정돈도 되지 못한 채 나열되고 있는 단어들의 조합 같았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저자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는 해당 도서의 전체적인 분위기이자, 주인공의 모습 그 자체인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산 물건이 어떤 의도로 구매한 것인지조차 모를 만큼 정신없는 모습이 표현됐고, 문체와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도서는 처음부터 죽음과 너무나도 밀접했고, 그만큼 어두우면서 음침했습니다. 또한 차가운 기운까지 풍기는 듯했습니다. 다만,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고, 이 때문에 독특한 분위기와 특징들을 온전하게 느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초반부였고 이후에 순식간에 그런 느낌 지웠지만,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초반의 흥미진진함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확실히 그런 지루함은 갑자기 등장하는 소름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 때다 싶을 만큼 생동감을 갖추면서 힘 있는 묘사가 이어졌습니다. 매우 시큰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지만, 무엇인가를 계기로 생기를 되찾는듯한 그의 모습과 무척 흡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주인공의 태도와 호흡을 같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이후에도 몇 차례 소름 돋는 구간들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꿈인 듯 아닌듯한, 현실인 듯 과거인 듯 알기 어려운듯한 몽환적 상태에서 과거와 현재의 그녀가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구간들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질문을 받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끝없는 질문이 답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되는 질문 속에서 정신을 붙잡고, 자신을 잃지 않는 과정이 길 그 자체를 보여주며 답으로 이끄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표현들과 매력적인 모습을 갖추다가 갑작스레 위자보드가 등장했습니다. 이것은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대한 괴리감으로 이어지는 한편, 무엇인가 맥을 단번에 끊어내는 듯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 도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전혀 생동감 있거나, 현실적인 느낌을 주지는 못했고, 지루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활기를 잃지 않고 있던 것은 그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난잡하고 외설적이며 지저분했지만 유쾌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 같지만 덤덤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듯 보였습니다. 오히려 이전의 무기력한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점차 의욕을 불태우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에게 검은색의 하트 모양 상자는 공포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을 원동력 삼아 엑소시즘을 행하는 듯한 그들의 이야기는 무척 판타지스럽게 묘사됐습니다. 퇴마하고 악령과 싸웠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빛과 환상을 통한 묘사였지만 무척 세세하게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결국 현실과의 괴리는 좁히지 못해 큰 의미를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중반 이후에는 더 이상 소름과 즐거움이 없이 역겨움만 남았습니다. 왜 그런 내용을 담아내야 했는지, 그것이 이야기의 구성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는지 의문만 맴돌았습니다. 충분히 다른 범죄로 설명이 가능했을 것이며, 그 범죄들을 그토록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고도 내용을 이어갈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물론 다른 범죄나 질 나쁜 행위들이 이보다 낫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굳이 성적 범죄로 접근하며, 구체적인 표현을 담아낸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지독하게 물들어버린 기성세대의 잘못된 습성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여성을 함부로 소모시켜도 된다는, 그들을 재산으로만 취급하던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불쾌함만이 느껴지는 도서는 어렵사리 마칠 수 있었고, 악령을 이겼다는 카타르시스보다 책이 끝났다는 것이 더 큰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이 도서는 많은 글자를 활용하고 온갖 화려한 표현들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만 결국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지 못해 큰 의미를 담아내지 못한 위자보드를 활용한 해결책 찾기와 마찬가지로, 놀랍도록 장황하고 방대한 분량을 펼치지만 결국 어떠한 특별함이나 감흥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쉬운 점

  • 도서에 흥미를 붙이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인물을 소개하고 상황들을 인지시키기까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듯 어느 하나 정돈된 느낌을 주지 못해 난잡하게 느껴지기만 했습니다. 물론 순식간에 그런 지루함을 날려버리게 되지만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기 때문에 독서에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 성적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활용하며 불쾌한 감정이 들게 합니다.

그들의 문화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시대적 배경을 몰라서인지 알 수 없지만, 굳이 그런 범죄를 이용해 이야기를 풀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그러한 행위를 담아내고 놀랍도록 장황하고 세세하게 그것을 묘사했습니다. 충분히 다른 것으로 대체가 가능했을 것 같은데도 굳이 그렇게까지 담아낼 필요가 있었는지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으며, 결국 불쾌함만 남았습니다.

  • 방대한 분량과 이따금 보이는 문학적 표현이 있지만, 결국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도서를 읽는 이들마다 개별적인 차이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방대한 분량을 통해 많은 내용들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표현은 전반적으로 정돈되지 않으며, 이따금 괜찮은 표현들이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또한 그와 그녀의 특색을 보여준다는 명목하에 굳이 묘사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억지로 분량을 늘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됐습니다. 결국 부피만 커진, 빈 공간만 가득한 과대포장된 선물상자 같았습니다.


총 평

초반의 난잡함과 지루함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완급조절은 중반 이후로 더 이상의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지 못한 채 불쾌한 감정들만 느끼는 묘사들이 펼쳐집니다. 굳이 묘사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내용들이 연달아 나타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쓸데없이 장황하게 다루지만, 큰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굳이 성적 범죄를 활용하고, 그것을 세세하게 표현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도 되는 '소재'인 것처럼 함부로 다루는 태도가 심하게 느껴졌고, 결국 방대하게 분량만 늘어갔을 뿐 어떠한 감흥도 남기지 못한 채, 문제 해결의 카타르시스보다 독서가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됐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4 구성 6 재미 5 재독성 4 표현력 5 가독성 5 평균 4.83)

무엇인가 대단한 게 들어있을 것 같은 상자가 알고 보니 과대포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77949331


감상자(鑑賞者)

그의 오른손에서 금색 체인이 내려왔다. 체인 끝에 매달린 칼날이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색의 칼날, 밤을 가르는 한 줄기 광채, 그 섬광과 번쩍임이 주드를 매혹시켰다. 그는 자신의 시선이 그곳에 고정되는 것을, 자신에게서 생각이 모두 빨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 P143

그들은 낮은 언덕으로 이어진 길을 올라갔다. 오후 햇살은 어둑어둑하고 이상한, 독기 어린 붉은색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황혼의 색깔, 주드가 눈을 감을 대 나타나는 두통의 색깔과 똑같았다. 아직 황혼이 되려면 멀었는데도 벌써 황혼녘 같았다. 서쪽으로 향하는 구름의 밑바닥은 검고 위협적이었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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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씽
니콜라 윤 지음, 노지양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감상

모든 것에 영향을 받을 위기에 놓인 소녀는 모든 것이 부정적인 요소로 여겨지는 환경을 피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곳을 벗어나는 것은 커다란 위험이고, 그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주변의 사람들은 그만큼 엄격했습니다. 그로 인해 제한적이고, 세상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통제받는 만큼 순수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새하얀 도화지 같았습니다.

하지만 티 없이 맑고 깨끗할 것 같았던 그녀가 보여주는 어딘지 정신없는 삽화와 메모들은 깨끗함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음을 말하는 것 같아 역설적이게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분명 아직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열여덟이 되었어도 아직까지 세상의 전부가 엄마인 어린아이처럼 순수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표현되는 그 역설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또 다른 매력은 소제목으로 구분된 단락들입니다. 이 구분을 통해 매우 짧은 호흡으로 내용이 전개됐고, 갑자기 시작된 메신저의 채팅이 그것을 더욱 가속화시켰습니다. 이런 과정은 어떠한 예고도 없이 불쑥 끼어들었고, 그만큼 산만하기도 했지만 경쾌했고, 읽기가 수월했습니다.

어쩌면 메신저로 내용을 전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메신저가 갖고 있는 실시간의 장점이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어느 정도 즉흥적이게 보였고,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들은 흔히 말하는 요즘의 사람들을 그려낸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는 조금은 유치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귀엽고 발칙했으며, 사소했지만 풋풋했습니다. 설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그들의 첫 만남은 달콤하다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전부 그녀의 시점에서 내용이 펼쳐졌고, 그녀의 이야기만 존재했을 뿐이지만 그녀와 그의 감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됐습니다.

모두 그녀의 시선으로 전개함으로써 온전히 그녀에게 몰입할 수 있었으며, 그녀가 그를 궁금해하듯 도서를 읽는 동안에 독자들도 그를 궁금해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단편적인 모습들만 보이듯 깊이감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집 밖의 공간은 그녀에게 우주와 다를 바 없습니다. 공기를 마시면 폐가 얼어버리듯 죽음에 한발 더 다가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주복만 입고 산다면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이며, 그저 생존해있기만 할 것이기에 진정으로 가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그러나 편파적 시선은 우주의 존재 여부에조차 의구심이 들게 했습니다. 정말로 우주복을 입어야 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우주복을 입은 사람 그 자체인 그녀에 대해 더 내용을 나아가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건축 선생님이 말한 헬멧을 쓰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이라는 말 자체가 와닿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건 뒤 결과적으로 도서는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반쪽의 마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세상에 나아갔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고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시간은 조금씩 어머니에게 회복이라는 치유를 줄 테지만 당장은 너무나도 아플 것이며 눈물 흘리고, 불행이라는 감정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과보호와 망상을 변호할 순 없지만 그것들이 온전히 그녀 혼자 만들어낸 것도 아니며, 그녀가 온전하게 책임져야 할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상황이, 현실도피가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뒤로 한 채 '용서'라는 챕터를 보여준 것은 다소 오만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그녀는 노력만 할 뿐 결국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더 이상 어떤 과보호도 필요치 않은 그녀였지만 온전히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녀보다 어머니에게 더 많은 공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녀의 상황도 안타깝긴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의 선택을 한 적도 없었으며, 진정 원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삶을 살았지만, 모두 자신의 입장일 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으로 살게 됐지만 자신이 전부였던 어머니를 떼어 놓을 수 없음에도 애써 외면하는 듯 보였고, 그녀의 입장을 단 하나도 보여주지 않았기에, 한쪽으로만 치우친 듯한 이러한 모습들은 한없이 이기적으로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용서라는 챕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가족의 이야기가 그대로 끝이 나버렸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곧 그러한 상황과 그녀의 어머니가 처한 상황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록 저자가 쓰려 했던 해피 엔딩은 아니었을지라도 더욱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쉬운 점

  •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한 명의 시선을 기준으로만 내용이 전개됩니다.

각자가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고, 차이점을 보이지만 그녀의 시선으로만 전개됐기 때문에 그녀 외의 인물들에 온전히 몰입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그녀에게는 몰입됐지만, 너무나 1차원적이고 편파적인 전개를 해 나갔고, 결국에는 그녀의 모습 또한 이해할 수 없게 됐습니다.

  • 다소 잔인하고 무책임한 설정들이 과도하게 전개된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장치일 수 있지만, 서사들을 급격하게 마무리하면서 깊이 있게 감정들을 다루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이 처한 상황은 잔혹했고, 그것들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상태로 순전히 단 한 명만이 행복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상황이 몹시 불편합니다.

  •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깊이감에 대한 고려가 무척 얕아 보입니다.

힘든 상황들을 각자 갖고 있고, 그들의 고민을, 위기 상황을 나열하지만 특별한 고민이나 인물에 대한 연구가 없이 그저 그 상황들을 전개함으로써 위기감을 고조시키려는 도구적 형태로만 소모한 것 같습니다. 결국 그들이 처한 모든 상황들은 그녀의 행복한 결말을 위해 이용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그 마무리가 완전하다고 느끼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총 평

짧은 호흡과 어딘지 산만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메신저의 특색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또한 도서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낙서와 그림들은 그녀의 순수함과 귀여움을 모두 보여주었고, 그만큼 도서를 읽기 수월했습니다. 하지만 과도하게 한 명의 시선만을 통해 내용을 전개함으로써 그녀에게는 몰입됐지만, 그 외의 인물들에게 전혀 몰입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그녀에 대한 몰입까지 깨져버리고, 그저 이기적인 선택을 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든 설정들이 과하게 느껴졌고, 성의 없이 도구적인 형태로만 소모한 것 같았습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나 그들이 겪었을 아픔에 대해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오로지 그녀의 '행복'에만 집중한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5 구성 6 재미 6 재독성 5 표현력 6 가독성 7 평균 5.83)

나의 상처만 신경 써서 나로 인해 상처받는 이들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이기심이 느껴지는.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73613648


감상자(鑑賞者)

내 눈은 벽이나 문 앞에서 멈추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시간의 시작과 끝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영원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내가 가진 것 이상을 원했다. - P103

내가 확실히 아는 게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건 한 번 원하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더 많은 걸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욕망에 끝이란 없다. - P106

"용감해야 해. 기억해, 인생은 선물이란 걸." - P178

하지만 그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 진실을 알기 원하는 마음보다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다. - P219

나는 내 눈에 내 모든 영혼과 진심을 담아서 말없이 빌었다. 칼라 제발 부탁이에요. 이해해주세요. 제발 폭로하지 말아주세요. 인생은 선물이라고 하셨잖아요. - P231

항상 실패하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와서 사력을 다해 해안의 모래를 밀고 또 밀어냈다. 마치 지난번은 기억 안 난다는 듯이, 다음번은 없다는 듯이, 이번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단 한 번이라는 듯이 - P295

이 말이 엄마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었음을 알았다. 엄마의 손 안에 든 선물이 흔들렸다. 이 대화를 얼른 끝내버리고 싶었기 대문에 선물을 잡아채버렸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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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일기 브리짓 존스 시리즈
헬렌 필딩 지음, 임지현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감상

명절이나, TV 영화 채널을 통해서 익숙함을 안겨주던 해당 도서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꽤나 흥미가 있는 시리즈였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매력적인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습니다. 물론 그 실행은 차일피일 미뤄졌으며, 결국 원작 소설을 먼저 접하는 것이 더 먼저가 되었습니다.

도서는 영화까지 제작되었기에 특별함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혀 어떠한 특징적인 부분을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너무 평이하고 밋밋하게 다가와 지루함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두서없이 전개되는 듯한 그녀의 이야기는 공감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감정 자체가 제대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성별 때문인지, 문화적으로 접점이 없는 타국이어서인지, 그녀만큼 깊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인지, 그녀와 내가 어딘지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결국 몰입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기에 번역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원작의 느낌인지 2000년대 인터넷 소설같이 느껴지는 듯한 문체까지 독서를 방해하는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착실하게 일기를 써 내려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부지런했으며, 자유롭고, 주관적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고, 주변에 늘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분명 30대라는 비슷한 나이대를 갖고 있음에도 나보다 훨씬 더 괜찮은 방향으로 살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남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묘한 쾌감이 느껴졌고, 타인의 비밀을 숨죽이며 훔쳐보는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며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다음에 쓰일 일기를 기다리게 됐습니다.

그 일기 속 그녀의 상황들은 언제나 유쾌했습니다. 우울하고 어두워야 하는 상황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쳐났으며, 한편의 시트콤 같은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이어졌습니다. 어쩌면 태생이 밝고 긍정적이었을지도 모를 그녀는 때론 너무나 하찮은 행동을 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다른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려는 듯 보였고, 스스로 자립심을 전혀 갖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만 이어졌습니다. 어떤 힘겨운 상황이나 괴로운 상황에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만 느껴졌습니다.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리는 듯했지만, 결국 타인에게 원인을 돌리는듯했습니다.

누군가는 그녀의 이런 태도가 현대 여성들이 마주하는 남성적 가치관과 사회적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은 환경 때문에 발생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주변에서 아무리 그런 강압적인 시선을 보내고 강요하더라도 온전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변화와 자신의 태도에 대한 선택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을 것이며, 긍정적인 면을 치우고 어두운 부분을 통해 살아가는 삶의 선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이미 완벽하고 더 이상 변화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어떤 행운이나 계기로 변했다고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해피 엔딩이 마냥 반갑지 않았습니다.

분명 그녀는 그런 행복을 맛볼 자격이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도서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시선들이 그녀가 그런 행운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 의구심을 갖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느 순간 쉽게 읽히고 유쾌한 상황이 이어지며, 몰입도도 생기게 했던, 우리의 어떤 모습들과는 닮아 있던 그녀였지만, 과한 설정과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좋지 못한 선택을 하거나, 안 좋은 상황에 놓이거나, 무엇인가 불편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남성 중심 세계에서 억눌려 발생한 것이라는 편향적인 시선을 노골적으로 내비쳤으며, 그저 기득권층과 남성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감만을 갖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유발하는 상황들이 그저 도구적으로 소모되는 느낌을 받게 됐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약했고, 분명 상향되고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내용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저 그런 시선이 옳다는 강압적인 태도를 강요한다면, 이전에 엉망이 되어버린, 이제는 썩어서 냄새만 나는 오물이 되어버린 파이를 그저 최고급 포장지와 리본 등으로 포장해서 선물하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브리짓 존스라는 최고급 포장지와 리본이,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최고급 편지지와 만년필로 쓰인 편지인 해피엔딩이 몹시도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봤자 오물이 되어버린 내용물에서 나는 악취는 절대로 감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점

  • 몰입이 온전하게 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너무나 평이하고 특별하지 않은 듯해서,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자유분방한 문체가 어딘지 유치하고 촌스럽던 2000년대의 인터넷 소설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이야기에 웃음 지으며, 몰입하게 될 것입니다.

  • 과도하게 노골적인 편파적인 시선이 몹시 불편합니다.

어떤 좋지 못한 상황이나 선택, 불편한 모습들이 보일 때 남성 중심 세계에서 억눌려 발생했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저 기득권층과 남성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감만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유쾌하고 매력적인 모습들을 그저 도구로 소모하게 만들었습니다.


총 평

초반의 산만함과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 때문에 집중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유쾌함과 어딘지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과도하게 편파적이고 맹목적인 듯한 혐오감을 계속해서 풍김으로써 그녀의 모든 매력을 그저 도구로써 소모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충분히 주도적이고 매력적인 그녀의 모든 선택을 마치 어쩔 수 없이 강요 당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그녀의 가치를 깎아내려버린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5 구성 6 재미 7 재독성 4 표현력 6 가독성 6 평균 5.67)

매력적인 요소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려버리는 맹목적이고 편파적인 혐오감.


상세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65722830


감상자(鑑賞者)

일어나서 집을 나설 때까지 2시간하고도 35분이나 걸리는 건 너무 심하다. 다음에는 눈을 뜨자마자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고, 세탁 방식도 완전히 뜯어고치기로 했다. - P119

그러면서 나는 계집애들이 분명히 한번 해보고 싶어 할 나의 완벽한 새 남자친구에 대한 당혹스러울 정도로 복잡한 자부심과 우쭐함을 느끼는 동시에, 신물 나게 완벽한 남자인 척하는 성차별주의자 주정뱅이가 우리 여권주의자들의 규탄대회를 망친 데 대한 격분을 느끼고 있었다. - P162

마크 다시는 매우 감동할 것이고, 곧 깨닫게 될 거다. 내가 결코 평범하거나 무능력하지 않다는걸. - P318

8.35 p.m. 맙소사! 닭고기를 꺼내려고 냄비 뚜껑을 열었더니 수프가 밝은 파랑이다. - P336

죄책감이 느껴졌다. 왜냐하면 끔찍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편으로는 매일매일의 똑같은 일상이 중단되었다는 묘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 P342

아, 선물 같은 거 없이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면······ - P364

믿을 수 없게도, 엄마는 마크 다시가 엄마를 위해 한 그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전혀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그는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사건, 즉 줄리오의 임대 아파트 사기 사건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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