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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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영화를 통해 이미 유명세를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접한다고 해도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표지는 충분히 흥미를 돋울 수 있습니다. 표지만으로도 분명 어둡고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무겁거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딘가 사람을 끄는 무엇인가를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스티븐 킹이라는 인물의 명성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직접 판단을 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폴이라는 인물은 갑작스럽게 펼쳐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어딘지 혼란스러워했으며, 그런 그의 상태와 심경을 고스란히 문체에 묻혀냈습니다. 그는 한 가지 생각을 지속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끼워 넣으며 끊기는 일 없이 다른 말을 꺼내고, 다른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혼란스럽기에 이것저것 내뱉지만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특정한 공간에 갇혀, 고문당하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등 어렵사리 삶을 유지하고 있는듯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정신이 없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살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신작은 다분히 애니라는 인물 때문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표현처럼 옳지 못했고, 또다시 살기 위해 옳은 길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잘못 선택한 옳지 못한 길은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충고 및 조언을 따르게 됐고, 최악의 관계에서 최고의 관계가 되고 있었습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말도 안 되는 집착과 행동으로 이끌어낸 이야기이며, 결코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였음에도 그들은 어딘가 닮아있었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관계가 끝까지 유지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도서를 읽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으며, 그것이 끝날 때를 기다리는 길고 흥미로운 과정이 해당 도서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관계가 끝을 내기까지의 힘겨운 여정은 그가 집필했던 새로운 소설을 마무리함으로써 함께 종료됐습니다. 그는 다분히 전략적으로 그것을 이용했고, 살아남았으며,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런 영광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당했다는 것과 그것을 만들어준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소 특이한 결론입니다.

단순하게 권선징악이라고 칭하기엔, 그녀를 괴물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 동안 그는 그녀처럼 어떤 괴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의 인간성을 포기하면서 만들어진 그 괴물이 있었기에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사소한 계기가 그를 또다시 글 쓰게 만들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누군가가 탄생할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그가 겪었던 끔찍한 일의 재연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신작의 이야기는 또 다른 미저리가 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또다시 피해를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에도 그는 글쓰기를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고, 그런 괴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괴물이라기보다는 그런 행위에 중독된, 노브릴을 찾지만 더는 필요 없을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독이 된 것은 그만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나도, 우리도 이미 그가 새로 쓴 스컹크로 시작된 이야기를 궁금해한다면,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잔혹하건, 또 다른 끔찍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기다리는 모습으로 중독된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 고통도, 감정의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처럼 그 자체를 즐기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점

  • 다소 잔인한 상황이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해당 도서의 장르적 특성일 수 있으며, 서사를 만들어 내기 위한 단순한 장치일 수 있지만, 쉼 없이 그 잔혹성이 펼쳐져서 독서에 거부감이 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펼쳐진 것이 아니라 모두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 갑작스러운 전개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시작부터 아무런 정보 없이 갑작스럽게 펼쳐진 이야기는 서사가 뒷받침되지 않은, 자극적인 사건을 연출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전개되면서 차분하게 서사를 충실히 채우며, 그의 과거를, 이전의 모습을 자세하게 담지 않음에도 자세하게 만들어 냅니다.


총 평

이야기를 엮어내는, 뿌려진 이야기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이 몹시 흥미롭습니다. 작은 승리와 실패가 연달아 이어지면서 양 극단에 있는 듯한 감정을 순차적으로 끌어냅니다. 다소 잔인한 상황과 표현들이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단순하게 소설의 소재로 소모된다기보다는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서사들이 충실하게 담기지 않고, 어딘지 부족한 그들의 과거를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채워진듯하며, 그런 빈 공간들이 이유 있게 비어있는, 비어있지만 분명히 채워져 있는 듯한 모습을 담아냅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8 구성 8 재미 8 재독성 9 표현력 8 가독성 8 평균 8.16)

어딘지 비어있는 모습까지도 의도한 것 같은, 잔혹하지만 잔혹하지 않은 집필 과정.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80040253


감상자(鑑賞者)



고통은 단지 오고 가는 것처럼 보일 뿐, 말뚝과 같았다. 때로는 덮여 있었고 때로는 모습을 드러냈지만 항상 제자리에 박혀 있었다. - P19

애니의 얼굴이 이상야릇하리만치 무표정한 모습으로 변했다. 폴은 이런 식의 고집스러운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다. 거의 냉혹함을 과시하는 수준이었다. 보기만 해도 불안해졌다. - P139

폴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죄책감 대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 괴물 같은 여자는 폴에게 저지른 갖은 학대에 덧붙여 그가 죄책감마저 느끼도록 했던 것이다. - P177

시작부터 이야기 구성이 역동적이었고, 등장인물들이 생생하게 움직였다. - P279

갑자기 너무나 무서워졌다. - P279

‘만약 우리가 1969년 3월 당시의 간호사 명부를 들춰 본다면, 윌크스라는 이름이 튀어나오겠죠? 여러분, 어쩌면 곰 한 마리가 숲 속에서 미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걸까요?‘ - P320

짧은. 오랜. 오랜. 짧은. 오랜. 오랜. 짧은. - P329

폴은 비명을 지르며 불에 타고 피로 물든 침대 속에서 몸부림쳤다.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하얗게 질렸다.

"이제 너는 절름발이가 됐어. 나를 욕하지 마. 네가 저지른 잘못 때문이니까." - P382

그런 짓을 한 건 내가 소설 줄거리를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또 애니가 그런 나를 무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했기 때문이야. 애니의 행동은 분노의 표시였어. 분노는 깨달음이 낳은 결과였고, 무엇을 깨달았는데? - P417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진실은 단순했다. 그는 애니를 ‘직접‘ 처리하고 싶었다. - P491

잠시 동안 성냥불이 맥없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소름 끼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곧이어 ‘후룩!‘ 소리와 함께 표제 쪽 위로 연한 푸른 불꽃이 퍼져 나갔다. 불꽃은 종이 더미 바깥쪽 가장자리를 따라 흥건히 고인 찐득거리는 기름을 먹어치우고 옆면을 훑으며 순식간에 달려 내려왔고, 강렬한 노란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 P525

애니 때문에 망설인 게 아니었다. 원고 때문이었다. 진짜 원고. 폴이 불태웠던 원고는 맨 위에 표제 쪽만 올려놓은 가짜였다. 쓰다가 망친 원고와 써 놓고 보니 맘에 안 들어 버리려던 원고들 사이사이에 빈 종이들을 끼워 넣은 가짜 원고일 뿐이었다. -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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