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마늄의 밤
하나무라 만게츠 지음, 양억관 옮김 / 씨엔씨미디어 / 1999년 4월
절판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는 뇌수의 한구석에서, 기도란 반복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이 번갯불처럼 번득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성교와 마찬가지로 반복이 기도의 쾌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시고,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이건 나무관세음보살이건 상관없다. 모든 쾌감의 본질은 반복이다. 기도와 성행위가 바로 그런 점에서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종교의 진정한 쾌락을 이해해가고 있었다. 자아 없는 반복. 그것이 최고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을 혐오하고 기피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불에 데인 것 같은 짜릿한 쾌락으로 사람을 매혹시키며, 기도보다 더 알기 쉽게 자아 없는 반복의 경지로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라는 인내를 요하는 자발적 행위의 결과로 달성되는 자아 없는 반복보다도, 본능에 따를 뿐인 성적 반복의 결과로 달성되는 자아 상실 쪽이 더 알기 쉽고, 실천하기 쉽고, 생과 사의 단순 모델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41쪽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도 그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면 당신의 아버지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건 인간이 하는 방식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당연한 일이야. 신이 인간을 창조하신 진정한 의미는 인간이 신을 만들게 한 데 있는 게야. 창조주이신 신이 인간을 만들었으므로, 인간은 인간에 지나지 않아. 신을 알 수가 없지.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신은 인간의 척도에 맞게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 것. 신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언어일 뿐이지. 알겠느냐, 로오. 일본어로 번역된 소설은 당연히 일본어 소설이라는 사실을."
  "선생님답지 않은 말장난이군요."
-77쪽

  부패한 살덩이의 냄새를 기피하는 것은 아마도 동물인 인간의 본능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죽음에서 피어날 냄새와 상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주간지의 사체 사진을 감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긴 하나 그건 정말 평화로운 풍경이다. 인쇄 잉크에서 풍겨나는 석유 냄새를 맡는 게 고작이니까. 썩어 뭉그러진 살코기가 형체를 잃으면서 뿜어내는 냄새. 식물이 썩어가는 향기에서 멋과 미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감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동족이 썩어가는 냄새이기 때문에 구역질을 하는 것이다. 세포가 거부하기 때문이다.
-107쪽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한다. 발로 차면서 주먹을 끌어당겨 다음 동작을 준비한다. 그 팔의 움직임은 성교 행위와 같지 않은가. 나의 폭력은 성교의 보상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프로이트식의 이런 해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보상 행위. 신이라는 개념에 필적하는 편리한 말이다. 이 말만 있으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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