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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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공중 곡예사
열린책들, 1995-12-15

2003년 1월 6일 씀.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인간만사 새옹지마

  폴 오스터 소설의 매력은 첫 문장부터 읽는 사람의 눈을 확 잡아끄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달의 궁전>의 첫 문장("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과 비슷하게, "내가 물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열두 살 때였다." 라는 한 문장을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이야기의 줄기를 암시하며 읽는 사람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대공황 직전에 태어나, 조금은 기묘한 능력을 익힌 소년으로 성장하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다 끝내는 평범하게 삶을 마치는 한 남자의 인생유전을 담담한 필체로 회상하듯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 월터 롤리가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 소설 형식이지만, 회상을 하는 나이 든 주인공은 작품의 처음과 끝부분에만 잠깐 등장합니다. 하지만 작품 내내 회상하는 문체('~이었던 것 같다', '~했더라면'과 같은)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케 하는 정신없고 속어가 난무하는 재즈적인(=음악적인) 문장도 매력있고, 20세기 초 미국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장치들, 즉 밀주를 파는 갱들이라던가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있던 시절의 메이저 리그 야구 등을 통해 독자들이 더욱 글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글쎄,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유년 시절 읽었던 신비한 동화 같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한 만화 같기도 합니다. 이런 형식의 상대적 가벼움을 통해 작가는 인간이 지배하지 못하는 삶의 '흐름',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명'이라 부르는 실체없는 무언가에 대한 무거운 탐구를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늘을 나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 재미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목차
1
2
3
4

▒ 책 속에서
  내가 물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열두 살 때였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내게 그러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 기술을 하룻밤 새에 배운 척하려는 건 아니다. 예후디 사부(師父)는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세인트루이스의 길거리에서 푼돈을 구걸하고 있던 고아인 나를 찾아냈고, 그 뒤로 3년 동안 꾸준히 가르친 다음에야 내가 사람들 앞에서 묘기를 보이도록 허락했다. 그것은 홈런왕 베이브 루스와 대서양을 처음 횡단 비행한 찰스 린드버그가 이름을 날렸던 1927년, 전세계에 영원한 밤이 내리기 시작한 바로 그 해였다. 나는 그 일을 10월 대공황 며칠 전까지 계속했고, 내가 한 일은 루스와 린드버그가 꿈꿀 수 있었던 어떤 일보다도 더 위대했다. 나는 그때까지 어떤 미국인도 하지 못했고 또 그 이후로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다.

원서 정보
작가 : Paul Auster
제목 : Mr. Vertigo
출판사 : Penguin Books USA
초판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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