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이야기



빨치산, 많이 들어는 봤지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태백산맥을 읽어 가는 중 몇 군데서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교사였던 안창민이 입산한 빨치산들에게 사상 교육을 시키는 장면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빨치산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빨치산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나라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러시아의 말입니다. 러시아는 지금의 쏘련으로, 바로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레닌 동지의 지도 아래 인민혁명을 성취시키게 되자 망하고 만, 왕이 다스리던 나라였습니다. 그 말을 우리말로 바꾸면 유격대가 됩니다. 여러분은 벌써 노래를 통해 '인민유격대'라는 말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이 곧 빨치산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 거기다가 한 가지를 더 보태, 인민을 상대로 한 당의 정치활동, 즉 혁명사상의 선전과 선동까지 맡는 것이 빨치산이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빨치산은 싸우면서 당의 선전과 선동까지 맡는 것이 빨치산이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빨치산은 싸우면서 당의 선전활동과 선동할까지 겸하는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치산을 당의 '정치군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 조정래 <태백산맥> 8권 100쪽


러시라어로 비정규균이란 뜻의 파르티잔으로 한국식으로 편하게 빨치산으로 바꾸어 부른다. 빨치산은 앞의 '빨'자로 인해 자연스럽게 빨간색이 연상 된다. 어원상으로 빨갱이와 아무 상관 없는 말이다. 파르티잔은 파랑스어인 파르티에서 왔고, 당원, 동지, 당파의 뜻이었다. 12세기 초기에는 그런 뜻이었지만, 17세기부터는 지역 군벌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나폴레옹이 전쟁 중 스페인 전역에서 게릴라들에게 호되게 당한 후 프랑스 군은 이들을 '군벌' 즉 '파르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파르티는 정규군대지만 정예부대나 유격대 등에 사용되기도 했다. 원래는 정규군이 아닌 게릴라와 비슷한 용어이다.


정규군은 적과 정면대치하지만 빨치산은 적의 후방에서 교란하는 일을 주로 한다. 또한 적진으로 투입되어 적의 물자와 통신, 교통수단 등을 파괴하기도 한다. 빨치산은 스스로 자생할 수 없다. 무기와 식량 등을 적지에서 수급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8권과 9권에서 종종 이야기 한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빨치산은 평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고, 그들로부터 물자를 제공 받는 일이 많았다. 이것을 알고 있는 이승만 정권은 빨치산과 내통한 사람을 '통비분자'로 분류하여 무차별 폭행과 총살을 저질렀다.


한국전쟁 전후로 반공과 멸공을 앞세운 이승만 정권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특히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같은 민족을 아무런 죄도 없이 한 마을 전체로 총살하는 잔인한 것이었다. 이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이 입산하여 빨치산이 되거나 전쟁 때 인민군으로 들어갔다. 전쟁 이후에도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경찰과 군인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그러나 휴전협정이 마무리되자 빨치산은 스스로 생존력이 현저히 떨어지 이현상을 마지막으로 와해되고 만다. 


빨치산에 관련된 책을 찾아 보았다.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은 남로당의 일원이었던 아버지의 일생을 소설화 한 것이다. 사실에 바탕은 둔 것으므로 읽으면 빨치산의 기원과 과정 등을 실감나게 읽을 수 있다. 
























정관호의 <남도빨치산> 시리즈는 호남 중심으로 이루어진 빨치산 이야기를 다루었다. 당시의 문헌과 기사들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 소설이지만 사실에 기반을 둔 서술적 기술이 적지 않다. 빨치산의 이야기를 내부의 시각으로 담았고, 빨치산의 일원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끌고 있다. 모두 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 정관호는 자신이 빨치산이라는 점이다. 그는 1925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원산교원대학 교원으로 재직하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 전남 강진에 내려 온다. 후퇴하지 못하고 빨치산 대열에 가담하게 되어 1954년 4월 전남 백운산에서 생포 되어 형을 산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으로 이 책을 읽으면 좀더 실감나지 않을까. 정관호 <전남 유격투쟁사>또 수기 형식이니 자료용으로 좋은 책이다.



이춘구의 <어머니 고향 그리고 조국 - 지리산 빨치산의 참회록>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한국전쟁기념재단이 정전 60주년을 맞아 기넘사업의 일환으로  전향 빨치산(partisan)의 문집을 발간한 것이다. 빨치산의 생활과 고백, 참회, 전쟁 기록, 포로생활과 전향과정을 담았다. 이 책을 통해 공산주의 허구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수록되어 있다. 빨치산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빨치산 출신의 글이니 사뭇 궁금해지는 책이다. 






박찬두의 <장군의 후예>자생적 빨치산이었던 황의지의 일대기를 담았다. 장군의 후예란 제목이 붙은 이유는 그의 조상들이 조선시대를 주름잡던 가문이기 때문이다. 조선 최고의 명재상인인 황희 정승, 인진왜란 당시 명장이던 황진 장군, 한말 절명시를 자결한 매천 황현의 후예이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병을 당하면서 수난이 시작된다. 일제가 전쟁에서 망하지만 소련의 포로가 되고 만다. 시베리아로 옮겨져 강추위 속에서 3년 동안의 강제 징용을 당한다. 포로송환협정으로 다시 귀국한다. 북한의 따뜻한 환대와 다르게 남한의 경찰들은 그를 간천으로 의심하며 박대한다. 그는 고향에서 친일경찰들이 다시 경찰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낀다. 결국는 그는 자생적인 빨치산이 되어 전쟁이 일어날 때부터 큰 활동을 한다. 인민군이 철수하자 지리산, 회문산, 운장산, 백운산, 장안산, 덕유산 등으로 숨어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계속 한다. 이후 토벌대에 의해 빨치산의 조직은 무너지게 되면서 결국 전향하기에 이른다. 그의 특이한 경력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유기수의 <지리산에 필 꽃은 시들지 않는다>는 6.25 당시 치열한 전투와 함께 민족의 비극이 담겨있 는 지리산 빨치산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 지식인 김태진과 좌익적 인물 옥동무, 임석 동무, 그의 딸 김지이, 우익 인물 유교장 등 다양한 인물군상들을 통해 지 리산에 얽힌 비극을 묘사했다.

유지수의 또다른 책 <빨치산>도 1-3권까지 있다. 












안재성의 <신불산>은 빨치산 구연철의 일대기를 담았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가 왜 빨치산되고 투옥과 풀려난 후의 삶을 다룬다. 



이 숙의의 <이 여자, 이숙의-빨치산 사령관의 아내, 무명옷 입은 선생님>도 참고할만 하다.





이래저래 살 책만 쌓여 간다. 오래된 주제를 다루다보니 절판된 책이 한 둘이 아니다. 헌 책방을 뒤져도 잘 보이지 않는 책들이다. 먼지가 쌓인 오래된 기억을 더듬듯 하나씩 풀어가야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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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주목신간] 돌아온 자들의 증언


아들이 쨉싸게 달려간다.

"잡았다!"

신이난 아들의 외침이 어둠을 가르고 푸르디 푸른 벼가 잠든 들녁의 밤을 깨웠다. 

"아빠, 와보세요. 암컷이에요."

"어디보자. 진짜네."

장수 풍뎅이다. 아들은 장수 풍뎅이를 잡고 즐거워 한다. 한 두 마리가 아니다. 잠시후 다시 날아 든다. 아들은 다시 잽싸게 달려가 잡는다. 빛을 좋아하는 장수 풍뎅이는 밤이 되면 시골의 가로등 불빛으로 모여 든다. 오랫동안 날 수 없는 뭉퉁한 몸매 때문에 윙하고 불 빛 주위를 돌다 바닥에 떨어진다. 아들은 가로등 아래서 날아 다니는 장수 풍뎅이는 기다리다 바닥에 떨어지면 잽싸게 달려가 잡는다. 벌써 스무 마리가 넘었다. 가져온 채집통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스티븐 F. 코언의 <돌아온 희생자들>

스티븐 F. 코언의 <돌아온 희생자들>이 글항리에서 번역 출간 되었다. 스탈린 사후, 굴라크 생존자들의 증언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굴라크(러시아어:ГУЛаг, gulag)는 소련에서 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기관이다.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국가 보안국 교정 노동 수용소의 주 관리기관'이다. 초기에는 이름처럼 교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점점 강제노동소가 되었고, 정치범을 다루는 수용소와 소련의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감옥이 되었다. 수감된자만 수백만명에 이른다. 아우슈비츠보다 더 악날하고 잔인한 곳이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1973년에 <수용소 군도>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갇힌 사람들은 범죄자들이 많았지만 양심수도 상당히 많았다. 무단 결근이나 좀도둑질, 정부에 대한 비판적 말이나 농담만을 끌려온 이들도 상당수였다. 정치범들은 재판으로 변호도 받지 못한체 끌려와 수감되었다. 수감자들은 수용소 안에서 가혹한 육체 노동을 강요 받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끊임없이 죽어 나갔다. 음식이 없어 쥐도 잡아 먹었다. 


스탈인 사후 흐루쇼프는 굴르크 죄수를 방면하고 그들에게 생존의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1964년 흐루쇼프 정권이 막을 내리자 스탈인 주의자들의 다시 득세하여 반대세력과 긴장이 고조되었다. 저자는 수감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사연을 듣고 메모한다. 소련은 그를 추방하고 입국 비자를 거부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책으로 엮었다.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몸와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황폐하다못해 생존조차 버거운 상태가 되었다. 악마적 존재였던 스탈린, 그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오히려 수많은 이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한다.




리차드 하워드의 <정말 600만이 죽었나?>


나치의 지배아래 유대인들은 60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잠깐 패배를 맛보았지만 지금은 포악한 살인자로 돌변했다. 끊임없이 가지지구를 공격하여 팔레스타인들을 몰살하려고 한다. 그 이면에 시오니즘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600백만'이라는 숫자 속에 담겨진 유대인들의 기만과 술수를 고발하고 있다. 


분명 유대인들은 피해자였다. 그러나 이제 가해자가 되어 무참하게 학살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본 모습이다. 저자는 차근차근 유대인

들의 주장에 대한 오류를 파헤친다. 




<살아남은 아이>

형제복지원, 말로만 들었지만 무슨 내용인지를 전혀 몰랐다. 이책을 보면서 형제복지원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았다. 아~~~세상에 이럴수가. 어느 신문 기사에 명료하게 정리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약 3천명을 수용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시 진구 당감동의 형제복지원에서 1975∼1987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거리에서 발견한 무연고 장애인과 고아 등을 끌고 가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한 인권유린 사건을 말한다."(SBS뉴스)

부산판 도가니였다. 증언에 따르면 간강, 살인, 암매장 등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의 행적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잊지 말자 형제복지원사건!











도널드 서순의 <사회주의 100년 1.2>

우리나라의 현대사적 불행은 해방 후 소련과 미국이 자국의 이득을 위해 한국을 둘로 갈랐다는 점이며, 그로인해 남한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공정책이 강하게 자리잡으면서 온전한 사회주의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점이다. 오로지 반공과 멸공으로만 해석되고 환원되는 이데올로기의 향연은 부패한 정치적 모략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도 지났고 여유도 생겼으니 서유럽의 사회주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널드 서순의 탁월한 저서인 사회주의 100년이 번역되어 출간 되었다. 두께와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귀한 책임에는 틀림 없다. 그들의 증언도 들어보자. 사회적 약자와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면 말이다.

















아들은 채집통이 가득찬 것을 보고 마음이 뿌듯한가보다. 아내는 아들의 채집통에 가득찬 장수 풍뎅이를 보고 말한다.

"아들아, 불쌍하지 않니? 살려 주면 안 될까?"

그렇다. 생명을 보고 아파하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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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을 읽다


이름은 들었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무슨 책을 썼는지는 금시초문이다. 그러다 태백산맥을 읽어 가면서 우연히 알게 된 인물이다. 그는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와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조선의 3대 천재였다. 앞의 두 사람이 친일에 가담을 한 반면 홍명희는 오히려 일제에 저항하고 민족주의의 정신을 계승한 작가이다. 그는 한일합방 후 자결함으로 자신을 더립하지 않으려했던 일완 홍범식의 후손이기도 하다. 그의 천재성을 널리 알려진 바지만 월북하여 남한에서는 친일한 최남선과 이광수만 빛을 발하고 그는 잊혀지고 말았다. 안타까운 인물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벽초 홍명희에 대한 서적이 적으나마 눈에 띈다. <벽초 홍명희 연구> <벽초 홍명희 평전> <우리 민족 최고의 이야기꾼 홍명희> <홍명희> 가 그것이다. 강영주의 <벽초 홍명희 연구>는 홍명희 연구의 귀중한 서적이다. 창비에서 199년에 출간된 책이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벽초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가 10년간 심혈을 기울여 안성한 것으로 잊혀지고 강제된 망각의 업악을 깨고 새롭게 조명했다.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자료에 충실하고 연구서이기 때문에 읽는 맛은 떨어지지만 홍명희에 대한 또 다른 연구와 해석을 위한 기본서적으로 삼기에 좋다. 


강영주에 의하여 한길사에서 <그들의 문학과 생애, 홍명희>를 다룬 책도 2008년에 출간 되었다. 2004년에는 역시 강영주 교수에 의해 <벽초 홍명희 평전>이 사계절에서 출간 된다. 홍명희 연구는 아직까지는 강영주가 전무후무하다. 저자파일을 살펴보니 강영주는 1952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비교문학과에서 수학했고, 현재 성명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홍명희 대표작은 <임꺽정>이다. 임꺽정은 태백산맥처럼 총 10권으로 이루어진 대하소설이다. 결코 읽어내기 쉽지 않은 분량이다. 필자도 태백산맥을 읽고 있지만 3.4권쯤 가다보면 누가 누구인지,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가물가물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임꺽정과 소설에 개략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고미숙의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임꺽정의 중요한 주제를 통찰한다. 소설 자체를 다루는 책이 아니기에 약간의 모호함이 있을 수 있지만 임꺽정의 정신을 이해하기에 좋다.





임꺽정을 진본?은 사계절에서 나온 책이 좋다. 사계절 <임꺽정>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단 역사상 최초로 북한측과 정식 계약을 맺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5일 북측의 저작권자인 홍석중 선생과 사계절 출판사가 평양에서 만나 '출판권 설정 계약'을 맺었다.(더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읽을 수 있다. )박재동의 그림과 함게 읽을 수 있어 맛이 좋아 진다.  선시대 도적이 된 임꺽정, 그는 부패한 관리를 혼내주고 백성의 입장을 고려하지만 역시 그는 도적이다. 




















































올 여름은 태백산맥을 넘어 <임꺽정>까지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런지...


더 읽고 싶은 책을 골랐다. 대표적인 한국 소설이다. 절판된 책이 꽤 된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다시 재판되면 좋을 텐데...


-한국대표 장편소설

조정래 <아리랑>

최명희 <혼불>

박경리 <토지>

황석영 <장길산>

이병주 지리산











이병주 <지리산>

박태원 <갑오농민전쟁>

홍성원 <남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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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콩 2014-08-11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명희의 임꺽정 1권을 읽기 시작했어요.
자료를 찾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페북과 저의 페이퍼에 등록해 둡니다.

고맙습니다.
 

롯데 마트에 들렀다. 마트 안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 내가 가는 곳은 언제나 동일 하다. 한 곳은 글쓰기 서적과 다른 한 곳은 역사 철학 심리학 관련 서적 코너다. 


몇 달 만에 들러보니 못보던 책이 몇 권 보인다. 사진을 찍어 두었다. 꽤 좋은 책들이다. 당분간은 책을 사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담아 둔다. 


눈에 들어온 건 <웹 소설 작가 되기> 좋은 책이다. 매우 실용적이다.

















중2 혁명도 담아 두었다. 아들이 내년이면 중2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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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까끔댁


조선시대 여자들의 이름은 없었다. 있다해도 부르지 않았다. 요즘에는 '누구 엄마'로 부르는게 보통이지만, 조선시대는 '~댁'으로 불렀다. 자신이 살았던 마을이름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부산에서 오면 '부산댁', 양산에서 오면 '양산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꼭 그렇지 많은 않은 것 같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보면 승주에서 시집온 '까끔댁' 이있다. 원래 호칭은 '승주댁'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부르지 않고 '까끔댁'이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봤다. 


까끔댁은 무심결에 그 한숨을 따라서 쉬고 있었다. 까끔댁은 산이 많은 승주에서 시집을 왔고, 산이 겹겹인 산골 마을을 '까끔실'이라고 부르기에 그녀의 택호는 자연히 까끔댁이 되었다.<태백산맥> 4권 193쪽

















여자 호칭 속에는 정체성이 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타인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의 엄마' '~댁' 등은 지역과 관계에 종속되어있는 여자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근대는 종속에서 독립으로 나아가는 중간쯤 되는 곳이다. 조선이란 봉건사회에서 대한민국이란 현대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근대화는 곧 여성의 자기이름 찾기에 맥아 닿아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시작된 주민등록증 발급은 불가피한 여성의 작명으로 이어진다. 이름이 있어야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여성은 자기의 이름을 찾았고, 역사는 새롭게 써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찾은 현대의 여성을 진정한 여성이라 말하기가 왜그리 껄끄러운지 그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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