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삶을 느리게 진행시킨다.
한 걸음 앞으로 디뎌 나가야 할 순간에 어느 쪽 발을 먼저 옮길지 따위를 고민한다거나, 마구 기뻐야 할 순간에도 몇 퍼센트나 기뻐해야 적당할 것인지 같은 것이나 따지고 앉았다면, 정녕코 피곤한 삶이 아닌가.
은희경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스스로를 ‘바라보는 나’ 와 ‘보여지는 나’ 로 분리하려고 애쓴 적도 없건만 나는 항상 나를 바라보는 스스로의 집요한 시선을 느끼고 있다. 완벽하게 분리되어 고통 같은 것도 남 일 보듯 둔탁한 느낌으로 넘길 수 있다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나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내가 먼저 경험하고 조금 그럴 듯한 모습만을 투과시켜 세상에 내보내려는 나의 허영일 것이다.
헤드뱅잉을 하고 싶다. 그저 박자를 맞춰 머리를 흔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머리통만 달려있다면 쉬운 일이다. 하지만 헤드뱅잉은 몰입이라는 단어의 동어반복이다. 음악에 머리를, 마음 전체를 내맡기고 빠져드는 무아지경이다.
머리를 연신 휘저어대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좌우로 흔들까 아님 오른쪽으로 돌려볼까,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가네, 좀 어지럽지 않나, 따위의 생각만 주구장창 해댄다면 그건 그저 머리 아니 목 운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의식과잉의 시발점이 아닐까. 그리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결국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주고 사랑받고 싶다는, 애정결핍의 발로가 아닐까.
버리고 싶다.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고 싶다. 머리 속의 생각을 숨 들이키듯 멈추고 그저 삶을 빠르게 가로지르고 싶다.
많은 생각을 거듭하며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은,
감정이 불같이 일어나 입에서 욕지거리가 발사될 것 같은 위험한 순간에만
유효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