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탕녀같은 계집에게 걸려들어 육신이고 영혼이고 다 잡아 먹혀 결국 죽는 도리밖에 없었다 한다. 친 어미는 돈을 받고 기껍게 그를 넘겨주었고 그에 그는, 아름답지만 혼령같기만 한 양어머니 아래에서, 데려오기는 했으나 끝끝내 마뜩찮아하는 할아버지의 서슬 퍼런 눈빛 아래에서 반쪽의 어설픔을 증명이라도 하듯 반명 반암의 어리버리한 삶을 이어나갔다.

서안 조씨 17대 종손 상룡은 그러한 절반의 적자였다. 쇠락한 가문을 다시 융흥시키기 위해 전 생애를 바친 할아버지가 그의 아비를 위해 손수 고른 단아한 종부가 아닌, 아비가 서울에서 만난 탕녀가 바로 그의 생모였기에, 뼛가루 한 점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속하며 뼈대있는 가문을 갈무리해온 할아버지가 보기에 그는 사실 종손이 되기에는 천부당만부당한 서자에 불과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비에게서 버림받은 부엌떼기, 뒤틀어진 발목에 쌀 한가마니의 살덩이 무게를 짊어지고 비치적거리며 걷는, 더럽고 바보같은 '정실'에게 달려든 것은. 그건 욕정이었을까. 정녕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자신과 화해하는 몸짓이었을까. 

제 친 어미에 대한 애증을 거두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죽창같은 성정아래 눌려지내며 상룡은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선산에서 나온 옛 언찰들을 하나씩 해독해간다. 그리고 하루하루 정실과의 애정의 난기류가 급한 곡선으로 춤을 추어 댈수록, 그 몇 백년 전의 옛 편지들도 하나씩 하나씩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조씨 문중의 종부였던 한 여인이 남긴 그 언찰들은 처음에는 그저 손녀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만이 고즈넉이 담겨 있는 듯 했지만 사실 그 속에는, 
종가라는 것, 그 전통이며 대를 이어나간다는 것이 가부장적 권위 속에서 결국 얼마나 큰 희생과 얼마나 많은 눈물들을 밟고 가린 끝에 세워진 사상누각인가 하는, 험한 곡절들이 여실하게 담겨있었다. 결국 '진실은 추악하다'. 그러니 마침내  할아버지가 평생에 걸쳐 받들고 세우며 다시 누대로 올곧게 이어져 나가길 원했던 것은 어쩌면 추악한 진실 다름 아닌 것이다.
상룡과 그의 아비, 현재의 '정실'과 과거의 그 여인은 닮았다. 문득 한 몸이 된다. 그리고 언찰 속의 과거는 불현듯 현실이 되어버린다.

거대한 권위 아래에서 노르께하니 말라갔을 그의 아비와
비실비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욕정인지 사랑인지 구분도 못하는 허약한 상룡은 틀 속에 갇혀 키워진 또다른 희생량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 속의 모든, 그녀들은, 거대한 허위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 바쳐진 서글픈 제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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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2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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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1 1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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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7 1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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