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계속 치솟고 결국 나는 흐물흐물해졌다. 매년 여름마다 온 몸이 물걸레처럼 변하는 것은 뭐 연중행사이니 그렇다 치지만 안그래도 뇌가 녹는 것 같아 죽겠는 심사에 뜬금없이 편두통 녀석까지 가세를 했다. 머리 속이 출렁이지 않도록 끈으로 둘둘 머리통을 잡아매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주에는 서재질을 한 번 열심히 해서 서재지수를 많이 올려보리라 나는 처음으로! 다짐을 했더랬었다. 왜 갑자기 네가 그런 안 어울리는 부지런한 다짐을 하게 되었느냐고 누가 혹시라도 물으신다면 내 대답은 좀 창피하다. 나는 누구나(?) 노력만 하면 단 기간에 5000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지난 주말에서야 처음으로! 알았던 것이다;

주간 서재 지수 30위까지 적립금을 준다는 건 사실 참 매력적인 조건이다. 한 달내내 5000원씩 차곡차곡 받는다면 사고 싶어도 비싸서 미루어야 했던 몇 만원짜리 책도 캬하 웃으며 대범한 척 확 질러버릴 수 있고, 아니면 한 두 권씩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 선물을 할 수도 있고, 뭐 어디 쓸데가 한 두 군데랴. 하지만 난 알라딘 서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그 후보가 될 수 있는 건지는 꿈에도 몰랐다. 멍청하게도 난, 누/적/지/수로 30등까지에게만 매번 그 행운이 돌아가는 걸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여기저기서 30위 29위 하며 열혈히 서재를 채우고 가꾸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들은 삼십 몇위 정도 되는걸까, 아니면 누적지수가 30위 밖으로 밀려나는 걸 걱정하는 건가 하면서, 나는 언제 서재덩어리가 커져서 그 근처에라도 가보는 걸까 하고 혼자서 많이 모자란 티를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_-

주간 적립금의 실체를 (이제서야) 파악하고는 나는 나도 한번! 이라는 깃발을 내다 걸고 마구 휘날려대면서 수첩을  착 꺼내 무슨 글로 페이퍼를 쓸지 어떤 책 리뷰를 써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임을 금새 깨달았다. 최소한 글 세 네 편씩을 매일 써야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글만 많다고 되는 게 아니라 추천 혹은 코멘트도 서재지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걸 나는 정녕 몰랐던 거였다. 나는 추천은 물론이거니와 코멘트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물론 그건 내가 아직도 완전하게 서재에 발붙이지 못하고 유령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다소 이기적인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내가 그 사실을 겨우 지난 주에 알았건 아니면 아주 예전에 이미 알고 있었건, 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서글픈 결론- 멀어지는 5000원-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수첩은 휙 던져버렸다. 아직은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
뭐든 규정짓기 좋아하는 인간이라 처음 서재를 갖게 되었을 때도 혼자서 갈팡질팡 웃긴 짓을 일삼았지만, 점차점차 내 자신이 서재 안으로 스윽 스며들기를 바라던 마음처럼,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어두고 마음쓰지 말자 되뇌었던 다짐처럼 나는 그냥 이대로 조금씩 변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살아간다고 해서 결코 죽은 것은 아니니, 밟으면 꿈틀이처럼 꿈틀거리고 누가 물을 주면 시원하게 샤워를 하면 되는 것이다. 단지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하면서 혼자 자괴감에 빠지는 바보같은 짓만은 제발 그만 하자고, 다시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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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sta 2004-08-05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아앗 이거 혹시 내가 쓴 글 아닌가 싶어질 만큼 공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