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 중에서 소설만을 편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소설에 빠져 있다. 물론 한 때 그 치우침이 싫어서 일부러 소설이 아닌 책 만을 골라서 읽었던 적도 있지만 결국 그것들을 읽다가도 이내 머리를 식힌다느니(아니 뭐 대단하게 어려운 책을 읽은 것도 아니면서) 한번에 많은 지식을 섭취하면 까먹어서 안된다느니(실은 진도가 안나가서 그런 것이면서) 하면서 다시 소설책을 집어들곤 했었다.
언젠가는 거의 소설만 읽고 소설만 사서 쟁여놓는 나를 보고, 소설은 한 번 스삭 읽고 나면 그만인데 돈을 주고 사는 것은 조금 아깝지는 않으냐, 고 물어온 사람도 있는데, 단 한 번만 읽고 쳐박아 둔 소설은 거의 없고 최대 스무번도 넘게 읽은 것도 있는데 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 사람은 뚱그런 눈모양과 함께 '왜에?' 라는 영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지 말인지를 발사해서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었다.
사실 스스로에게도 내 지나친 편식이 썩 달가운 성향은 아니다. 더군다나 소설이 다분히 감정적인 글이라고 분류될 때, 내가 소설만을 편애하는 이유는 결국, 바로 내 자신이 지극히 감정적인 혹은 감상적인 인간이기 때문일거라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과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친구에게 내 어줍잖은 괴로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그 글이 신변잡기적인 것이든 그 이상의 전문적인 것이든 각각의 특성을 잘 살려서 두루두루 잘 쓰는데, 내가 글 못 쓰는 건 둘째치고 왜 도대체 내가 끄적이는 글은 무슨 주제로 써도 늘상 일기스럽기만 한 것이냐, 왜 나는 이다지도 논술을 못한단 말이냐, 진정 무식해서 그런 것이냐 아니 무식은 둘째 치고 왜 아예 논리라는 게 없는 것이냐 등등의, 친구와 하등 상관도 없고 친구가 해답을 알리도 없는 질문들을 토해내며 연신 친구를 괴롭혀 대었는데, 한참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그 아해가 휙 던진 한 마디에, 나는 간만에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넌 논리가 없는게 아니라, 객관성이 없는거야. 내가 볼 때 넌 무슨 일에서든 결코 객관적이 될 수 없는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글을 써도 주관적인 글 밖에 쓸 수가 없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거, 그게 바로 네가 말하는 일기 아니냐? 관심없는 건 보지도 듣지도 않는데 무슨 수로 네가 읽기도 싫어하는 류의 글을 쓰고 싶다는 거냐?
아, 솔직히 나는 그 친구가 그렇게 예리한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정곡을 찔린 아픔에 잠시 어리둥절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친구의 말대로라면 글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체가 구제불능이 아닌가. 무슨 일에서든 객관적이 될 수 없다니!! 정말로 강력하게 부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그토록이나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았었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커다란 덩어리로 가슴에 와 박혔고 내가 내 안에만 갇혀서 혼자 무식을 들이파고 있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제대로 실감이 났다.
내 이기심의 깊이를 파악한 그 날, 난 달라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역시나 별반 달라지지 못했다. 여전히 감정적인 글을 쓰고 소설만 읽으며 나쁜 눈으로 한 곳만 바라본다. 하지만 그 날 친구가 가한 일침 덕으로 난 내가 구제불능에서 조금은 구제가능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요즈음, 조금씩 더 노력 중인 나에게 힘차게 손을 내밀어 준 알라딘에, 고맙다는 말을 몰래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