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 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전라도로 달려갔다.
초등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이후로 가깝다고 할 만한 사람의 죽음은 단 한 번도
보지도 겪지도 못한 내게, 단 이주간에 걸쳐 연달아 내 주위 두 사람이 저 세상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낯설고도 아득한 충격이 되어 다가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바로 이런 과정들이
포함되어 있으려니 하고 담담하게 생각하고 싶지만, 죽음이라는 건, 언제나 감상적인
뭉텅이들을 한없이 부려놓을 수 밖에 없는 거라고 애써 자위하며
안그래도 유치한 내 마음이 자꾸만 어려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잔잔하게 깔린 서해 바다를 보았다. 마침 구색이라도 맞춰주듯 비까지 서벅서벅 내렸다.
푸르딩딩한 회색을 띤 바다와 무겁고 낮게 내려앉은 하늘은 마치 원래부터 한 덩어리였다는 듯
함께 뭉뚱그려져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 사이를 가르는 가느다란 빗줄기들은,
내리는 것인지 솟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조용히 흩날려대었다.

감상을 경계하는 감상적인 마음이야말로 오히려 더한 감상이다.
가야 할 사람이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것은 당연하고 누구도 그 고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 죽음이란 단어가 자아내는 슬픔은 살아남은 자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 마냥 준비되어왔던 그 것은 그저 하나의 절차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벌써 모든 것을 다 잊었다.
한정없는 슬픔 따위, 이제 더이상 내 곁에 붙어있을 수 없어 영원히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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