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이 영화를 봤다. 그리고 그 날, 이 영화에 대해 그리고 내가 한 때 믿었던 기독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아니 나도 모르게 머리가 지혼자 생각을 해대느라 내내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 그건 정말 감동적이라서 가슴이 저린 기분이나 진정 동감해서 박수치는 기분이거나 아니면 너무 재밌어서 좋아라 하는 기분도 아닌, 정말 알 수 없는 명치 끝의 동요,였다고 느끼고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 때문에 몇 번 방문 한 것을 제외하고 진정 자발적으로 교회에 간 것은 초등학교때가 전부인 내가, 한 때 나름대로 진정한 마음으로 매일밤 자기 전 침대맡에서 기도를 했던 중학교 시절을 이미 까맣게 잊어먹은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새삼스런, 기독교에 대한 나의 무지막지한 불신과 편견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 것은 생각컨대 진정 역사 속에 존재하는 예수라는 한 인간의 힘이었다. 그는 신의 아들이기 전에 인간의 아들이었고 그 자체로 악마의 유혹을 받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갈등이 나오는 영화의 처음 장면에서 나는 이미 이 영화를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장면이야말로 이후의 잔인 혹은 진실, 참혹 혹은 사실적인 내용들보다 가장 잘 이 영화의 내면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집에 와서 집구석을 샅샅이 뒤져서 먼지가 한 10센티는 내려앉은 작은 성경책을 찾아내서 영화에서 나온 장면들을 뒤져 볼 만큼, 이 영화가 내게 준 인상은 상당히 강렬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으 좌석이었다. 작아터진 극장에서 맨 앞줄, 맨 오른쪽. 으으으흑. 좌석이 그것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을 때 좀 더 심각하게 갈등하고 고려를 했어야 했는데, 갈등 때리는 것도 귀찮고 나중에 극장 다시 오려면 열배로 더 귀찮고 해서 그냥 본 것이 그렇게 큰 고통을 내게 선사할 줄은 정말 몰랐다.

중반,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는 피와 살점의 향연으로 치달아가고 감동의 곡선은 그에 발맞춰 가파르게 상승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데, 난 내 바로 앞에 육박해있는 커다란 자막을 읽어대느라 눈이 금새 뻑뻑해졌고 붉은 피, 튀는 살점들은 뻣뻣한 내 머리어깨목허리와 함께 어우러져 지독한 현기증을 유발했다. 

장담컨대, 편안한 좌석과 적당한 거리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난 집에 와서 성경을 찾아내서 한 번 스윽 펼쳐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독파를 감행해내었을지도 모른다. 신의 존재는 부정하지 않지만(하느님이든 누구든) 예수의 존재 자체에 대해 무지로 인한 불신만을 내세웠던 내게 이 영화는 종교라는 것에 대해 한 번 날잡아서 심사숙고를 해봐야겠다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무교에다가 기독교에 대한 맥락없는 등돌림만을 고수해온 내가 이 정도로 반응을 보인다는 건,  기독교인들이 보기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은 아닌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난 어린 양이 아니라 늑대 한 마리니까;;;)  

덧붙여,  다시는 극장 맨 앞 좌석에는 앉지 않겠다는 시퍼런 결의가 가슴에 자리잡은 의미있는 경험이었다고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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