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헤드와의 대화 - 철학자와 신문사 주필이 13년여 동안 나눈 세기의 대화록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루시언 프라이스 지음, 오영환 옮김 / 궁리 / 2006년 12월
절판


"한번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해서 줄곧 그곳에 눌러 있다는 것은 말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단지 죽은 재산을 쌓아두는 것이 되겠지요. 한때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고 해서 낡은 것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다음의 일, 다음의 장소, 다음의 경험으로 넘어가야 해요. 우리의 배후에는 더없이 즐거운 주거환경을 남겨놓았고, 그 하나하나는 과거의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지금의 우리에게서 떠났다고 해서 후회하지 않습니다."-12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
린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로드 / 2004년 9월
절판


이러한 혁명적 사고는 20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중국인이 쓴 역사서 가운데 9월 학살에 관한 대목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군중들은 파리에 감금된 수많은 반혁명분자들을 사형에 처했다. 이러한 자발적인 혁명수단은 반혁명의 위세를 무너뜨려 혁명의 후방을 공고히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는 이런 역사책을 읽으면서 성장했다. 이런 역사관을 주입당한 우리가 자신은 결코 한 마리 이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우리가 자신을 떳떳하게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322쪽

자코뱅파의 혁명 우두머리들이 권력이 자신의 손 안에 있다고 믿으면서 루이 16세를 위한 공정한 사법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누군가 용감하게 나서서 루이 16세를 법률적으로 변호하였다. 그러자 자코뱅파는 곧바로 그 변호인의 머리를 가볍게 베어버렸다. 그들은 이런 행위가 자신들의 머리를 벨 칼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루이 16세를 법률적으로 변호하다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말제르브 Chreten de Malesherbes였다. 그는 루이 15세 시대에 큰 명성을 쌓으며 출판 및 발행 분야의 검찰관을 지낸 바 있다. 그는 관직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요직에 있으면서도 양심에 따라 <<백과전서>>의 출판에 이에 관련된 여러 사상가와 철학가들을 보호한 공로로 유명해졌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말제르브가 없었다면 <<백과전서>>는 출판되지 못했을 것이고, <<백과전서>>와 그 사상가들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 대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혁명이 루이 16세의 죽음을 요구할 때도 다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루이 16세를 위한 법률적 변호를 요구했다. 루이 16세는 그가 자신을 변호한다는 소식을 몹시 걱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용기를 가상하지만 나를 구할 수는 없을 거요. 당신마저 내 죄목에 연루되고 말테니까." 그 역시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를리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다 해도 양심에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있는 법이다.-38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견딜 수 없는 이들로부터 위대한 창조적 업적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창조하는 인간도 언제까지고 혼자된 상태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아프다. 혼자됨이 논리적으로 곧 고독을 함축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고독, 즉 일종의 쓸쓸함, 아픔으로 변한다.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혼자됨 속에서 언제까지나 버티고 있어야 할 것인가? 인간은 고독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주체성과 창조적 업적을 위해서, 고독한 수도원, 암자, 연구실에서 나와 인간 공동체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가정, 고향, 시장으로 돌아가 대중적이 되어야 할 것인가? 공동체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인간미의 포기, 즉 고독의 감수라는 대가를 치룬 '위대함'이라는 성취가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떠들썩한 시장 속에서 고독을 전혀 모르고 지낸 인생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룩뱀Speckled Snake이라는 이름의 백 살이 넘은 크리크족 인디언은 앤드루 잭슨의 이주정책에 반발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백인 큰 아버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어 왔다. 처음에 너른 바다를 건너왔을 때 그는 작은 ...... 아주 작은 사람에 불과했다. 큰 배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 다리에 쥐가 난 그는 불을 피울 조그만 땅을 구걸했다....... 그러나 인디언이 피워 놓은 불에 몸을 녹이고 인디언이 내준 옥수수죽으로 배를 채우자 백인은 아주 거대하게 되어 버렸다. 한걸음에 산맥을 건너고, 두 발로 평야와 계곡을 뒤덮었다. 손은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를 휘어잡았고 머리는 달에 기대었다. 그러고는 우리의 큰아버지가 됐다. 큰아버지는 홍인종 자식들을 사랑했고 이렇게 말했다. "내 발에 밟히지 않도록 조금 멀리 떨어져라." 형제들이여! 나는 큰아버지로부터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어 왔다. 그러나 큰 아버지의 말은 항상 시작과 끝이 똑같다-"조금 떨어져라. 너무 가까이에 있어."

7장 풀이 자라거나 물이 흐르는 한 -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지일기

이성복


슬픔은 가슴보다 크고
흘러가는 것은
연필심보다 가는 납빛 십자가
나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고
아침부터 해가 지는 분지,
나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고
촘촘히, 촘촘히 내리는 비,
그 사이로 나타나는 한 분 어머니
어머니, 어려운 시절이 닥쳐올 거예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울고 있어요
다시 봄이 왔다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류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둥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 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
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 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 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
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며 아우성치며 울고 불고 머리칼 쥐
어뜯고 몸부림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풀잎 아래 엎드려 숨 죽이면 가슴엔 윤기나는 석회층이 깊었다
지금 경사를 타고 내려와
지금 경사를 타고 내려와 미류나무 한 이파리에
멈추는 햇빛, 짧아져 가는 햇빛
지금 내 입술에 멈추는 날카로운 속삭임
나는 괴로와했고 오랫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지금 짧아져 가는 그 햇빛을 가로지르는 것들은 아름답다
오래 나는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므로
가자, 막을 헤치고 거기 가자
부서진 구름도 따스하게 주위를 흐르는 곳
어제는 하루종일 걸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걸었다 해가 땅에 꺼지도록
아무 말도 할말이 없었다
길에서 창녀들이 가로막았다
어쩌면 일이 생각하는 만큼 잘못되지 않은 거라고
생각도 했다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가슴은 여러 개로 분가하여 떼지어 날아갔다
그것들이야 먼 데 계시는
내 어머니에게로 날아갈 테지만
젖은 불빛이 뺨에 흘렀다
날아가고 싶었다, 다만, 까닭을 알 수 없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