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브라운 신부는 영원히 서로의 뒤를 쫓으며 세상을 도는 것이다. 첫번째 인물은 정의를 저버린, 부끄러움을 모르는 범죄자요, 두번째 인물은 명예회복의 후광을 쓴, 비방과 중상에 상처입은 순교자다. 하지만 그 중 어느 쪽도 진짜 브라운 신부와는 거리가 멀다. 조금도 상처입지 않고, 튼튼한 우산을 들고서 터벅터벅 인생을 걸으며, 그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을 좋아하는, 세상을 동료로 받아들이지만 결코 재판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진짜 브라운 신부 말이다.-#쪽
파리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나는 마흔세 살이었지만 청년처럼 기운이 넘쳤다. 그러나 파리를 떠날 때에는 어느덧 백발로 변하고 아래턱이 축 처진 환갑의 나이였다. 처음에 나는 오스테를리츠 역 근처의 센 강변을 따라, 외팔보를 강변까지 쭉 내민 건물 아래를 거닐었다. 때로는 내가 살던 생루이 섬 끝자락에 있는 아담한 공원의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 수풀을 헤치며 걷거나, 침목하는 선박의 하갑판처럼 섬의 끝자락을 둘러싸고 있는 둑까지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하얀 담을 타고 치렁치렁 휘늘어진 담쟁이 덩굴을 볼 때 마다, 나는 에즈라 파운드Pound의 두 번째 <<칸토스>>에 실린 구절을 떠올렸다. 그리스 선박이 바다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붙들려 산으로 변해간다는 시구였다.뱃전이 있던 곳을 이제 포도나무 줄기가 덮었구나,밧줄은 덩굴손으로 변했고노걸이는 포도나무 잎새가노의 손잡이는 굵은 포도나무가 되었구나,어디에서도 숨결은 느껴지지 않는구나, 내 발목에,내뱉는 뜨거운 숨결이.유리에 갇힌 그림자 같은 야수들, 무의미한 것을 향해털투성이 꼬리를 들썩이는 야수들.나는 커다란 녹슨 고리들을 타고 부두까지 올라갔다. 그곳에 배가 정박된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배들을 묶어두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무대의 조명만큼이나 밝은 아크등을 번쩍이며 유람선 무슈 호가 다가오면, 어둑한 부두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던 우리는 포옹을 풀고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러나 나는 열정적인 근육질의 청년에게 다시 한 번 달려들고픈 욕망을 쉽게 지워낼 수 없었다. 그는 나를 몇 번이나 그의 집에 데려갔지만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고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내게 알려준 것은 마레 지구의 한 저택에서 독일인 사업가의 애인 노릇을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를 무척이나 닮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럼 나는 그의 불장난거리였던 것일까?-190-192쪽
인생을 마라톤이라 생각한다면 두 분은 반환점을 넘어 한참을 달렸다. 여러 가지 고비도, 숨이 턱에 차오를 때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쓰러지면 다른 한쪽이 부축해 달리기도 했을 것이고 자식들 건사하느라 스스로를 챙길 여유도 없었을지 모른다. 지난 3개월의 여행은 두 분에게 호사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 장남의 역할, 며느리의 역할 등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피료했던 것은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주머니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수간을 남편이 하나하나 신경 써줄 때라고 했다. 거리를 걷다보면 젊은 연인이 좋은 카메라를 메고 지나간다. 그 멋진 카메라로 길거리에서, 예쁜 카페에서,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도 여자친구를 찍느라 정신 없다. 내가 두 분과 얘기를 나누면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아저씨가 작은 카메라로 배 위의 아주머니를 열심히 찍던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만으로도 따뜻함이 전해왔다. 사랑하는 이의 사진을 찍는 풍경이란 젊은 연인과 별 다를 게 없었다. 가슴이 찡해왔다. 아저씨는 곱게 웃고 있는 아주머니를 찍고도 뒤에 배경이 잘 나와야 한다면 한 장을 더 찍는다. 따사로운 햇볕에 엷은 얼음장이 스르륵 깨지는 것 같은 떨림이 전해온다. 사진을 찍고 나서는 아주머니 옆에 가만히 서 계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우리가 사는 데 저만하면 충분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189쪽
한달에 한권씩 책이 나와준다면 책 값이 국민연금만큼 들더라도 행복할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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