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들의 434일 - 끝나지 않은 뉴코아 노동자의 투쟁
권미정 지음 / 메이데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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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1살의 그녀는 뉴코아에 계산직으로 입사했다. 알고 지내던 정규직이 추천해서 들어왔고 계약서를 쓰긴 했으나 계약기간이나 시급, 근로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회사에서는 계속 채용이 어려운데 다른 사람 명의로 계약하자고 했다. 아는 이의 주민등록증 번호와 주소를 다시 계약서에 쓰고 임금을 받는 통장도 본인의 것이 아니라 이름을 빌린 사람의 것으로 만들었다. 근로계약서에 그녀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사진뿐이었다. 그렇게 쓴 계약서에도 계약기간이 정해져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2007년 6월 초순 회사로부터 내일 계산원들을 용역전환하니 용역전환을 선택하거나 말일까지 청소나 박스정리를 하다가 퇴사하라고 전달받았다. -69쪽

2005년에 계산원으로 뉴코아에 들어온 그녀는 2007년 5월 말까지 5차례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사실 마지막 계약서에서는 계약종료일이 언제인지 적혀있지 않았고 회사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5월 말쯤 회사측은 정규직 인원이 남아서 비정규직을 자를 수 밖에 없다며 그만두라고 했다. 그리곤 한 달짜리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그녀는 거부했고 회사는 뉴코아가 아닌 다른 업체를 제안했지만 그녀는 그것도 거부했다. 그리고 그녀가 몰랐던 계약만료일 5월 31일이 지나 그녀는 6월에도 출근했다. 회사는 하루짜리 계약서를 들고왔다.-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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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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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에 따르면 바리케이드의 위력은 과거에도 물질보다는 정신 쪽에 있었다. 혁명가들이 바리케이드를 쌓고 조금만 버텨내면 군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적이 아닌 시민을 진압해야 하는 병사들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바리케이드의 정신적 마력도 사라지고 있다. 병사들이 바리케이드 너머의 사람들을 바라볼 때 더 이상 동료 '시민들'을 보는 게 아니다. 그들은 단지 "반란자, 민심교란자, 약탈자, 분열자, 사회의 폐물들", 한마디로 '적'을 볼 뿐이다. 무엇보다도 언론이 심리전을 수행해준 덕분이다. 언론은 진압 군대보다도 먼저 바리케이드 너머의 사람들을 공격한다. 언론은 공수부대처럼 바리케이드 후방에 침투하여 저항자들을 괴물들로 분칠해놓는다. 바리케이드는 이에 대해 속수무책이다.-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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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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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삶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흘렸던 눈물은 불안의 눈물이었을 뿐 절망의 눈물은 아니었다. 내가 거짓을 말하지 않고 도덕과 인내의 시험에서 항상 승리했다면, 그것은 내가 도덕적이거나 인내심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운좋게도 거짓말을 말하기 전, 도덕과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기 전, 구원받고 또 구원받는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세상에서 태어나 그런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것뿐이었다.-5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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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영감 한길 헤르메스 7
장 그르니에 지음, 함유선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구판절판


자신의 목적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튀니스에 도착한 한 예술가가 있다. 그는 진정한 동양과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의 생각에 늘 낯설게 남아 있기를 바랐던 마술과도 같은 색깔이 자신의 기분을 망치지 않았다고 매우 기뻐했다. 나는 그 어떤 것도 무디게 하지 못하는 지성의 이런 날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나는 아무리 해도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들은 사람들이 지니는 배경이 사람에게는, 이른바 자신의 영혼만큼이나 본질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의 확실한 여정은 그들을 그 어떤 곳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한 곳에 이르게 할 뿐이다. 마치 수량에는 전혀 변화를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영으로 만들지도 않으면서 약분시켜나가는 수학적인 계산처럼.
-51쪽

지성의 시가 가고 있는, 무를 향해 가는 걸음걸이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이것은 우주를 향해 던진 광대한 그물이다. 하지만 배 안으로 끌어올렸을 때, 우리의 발 아래 흥건한 물만 남겨줄 분인 그런 그물이다.
영예를 추구하지 않는 신비주의자들은 약속보다는 행복으로 가득 찬 풍경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그들은 때때로 머리를 조금 돌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이 놀라서 뒷걸음질치듯 그 정도 거리만으로 충분하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아니면 우리가 지치지도 않고 그토록 많은 실망을 하면서도 찾고 있는 무언가의 '옆에서' 일생을 지낼 수도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나칠 수도 있을 것이다.-52쪽

'밤'은 우리로 하여금 '단일성'을 깨닫게 한다. 밤은 낮이 뚜렷하게 선을 긋고 갈라놓은 존재를 모으고 섞어놓는다. 빛은 시샘하듯이 사물들 사이를 가로질러 슬그머니 끼여들고, 우리에게 그것들이 서로서로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 하지만 밤이 되었을 때, 그 사물들은 다만 하나일 뿐이다. 마치 침몰해가는 조각배 위에 있는 길손들처럼. 그리고 밤은 그토록 오랫동안 감추어졌고, 우리가 죽을 힘을 다해 찾고 있던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 메디나의 골목길을 방황하면서 우리가 인간보다 위대한 무언가에 가까이 다가갔음을 상상하는 것은 바로 이 밤을 통해서이다.-55쪽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하나의 직업으로 삼게 되는 것을, 자신의 흥미를 끌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을, 떠날 수 없는 한 장소에 꼼짝없이 박히게 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무익하고,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 그런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을 탓한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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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10세기 말 지중해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후 14~15세기에 이르면 해상무역공화국으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쌓인 부는 15세기 중반 이래미술과 장식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후원으로 이어져 오늘날 베네치아파로 불리는 회화 유파를 탄생시켰다. 베네치아파는 지중해의 화사한 자연 풍광과 오리엔트 지방과의 교류, 물질적 풍요에 따른 현세적이고 향략적인 분위기로 인해 빛과 색채를 중시하는 회화 스타일을 낳았다. 원근법과 해부학 등을 발달시킨 피렌체파의 과학적이고 조형적인 접근과는 또 다른 미술을 발달시키게 된 것이다. 형태는 미켈란젤로에게서, 색채는 티치아노에게서"라는 유럽 미술 아카데미의 오래된 금언은 피렌체파의 거두인 미켈란젤로와 베네치아파의 거두인 티치아노를 통해 두 미술의 차이를 명료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이처럼 베네치아파는 빛과 색채로 명성을 얻은 화파이며, 그 빛과 색채는 서양 미술사를 통해 루벤스와 와토, 르누아르, 보나르, 마티스에게 이어지면서 오늘날 유럽 문명이 자랑하는 다채롭고 감각적인 색의 전통을 이룩했다. 베네치아파가 이런 빛과 색의 전통 외에 서양 미술사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게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돛의 재료인 캔버스 천을 유화의 화포로 사용해 유화 미술의 진로를 크게 바꿔놓은 것이다. 이전까지 유화는 나무판에 그렸다. 베네치아는 해상무역공화국으로서 16~18세기 유럽 최고의 조선 기술을 자랑했는데, 그러다보니 튼튼하고 질긴 캔버스 천이 다량으로 생산되었다. 베네치아 화가들이 캔버스 천을 화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유화는 이제 나무판의 제한된 크기와 무게, 떨어지는 탄력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운 표현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베네치아파를 대표하는 화가는 15세기의 벨리니를 필두로 16세기의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제, 17~18세기의 티에폴로, 카날레토, 구아르디 등이다. - 현대미술의 심장 뉴욕 미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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