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화 산책 - 디오뉘소스의 열정에서 사포의 사랑까지
정혜신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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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를 훑어보면 모두 학교 수업 시간에 한번쯤 들어본 주제들로 내용도 이미 알고 있던 지식들을 크게 배반하지 않는다. 책을 읽기 전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들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느낌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무리한 해석을 하지 않으며 과도한 비유도 없다. 착실한 모범생처럼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꼼꼼하게 잘 정돈해 두었다.(소피스트나  에피쿠로스, 사포의 원문이 나름대로 비중있게 실려 있다) 어조는 담담하고 읽는 이에게 어떤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담백하다. 그만큼 지루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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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을 연주하는 여자 - 첼리스트 도완녀의 행복한 가족, 풍요로운 밥상 이야기
도완녀 지음 / 해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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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온돌방에 방석을 깔고 마주 보고 앉았다. 맞은 편의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부조리에 목청을 높이는 것도 아니고 정말 좋은 이야기들만 들려 주신다. 그런데 무릎 꿇고 앉은 발가락은 참을 수 없이 꼼지락거린다. 이 책을 읽는 심정이 꼭 그렇다. 나쁜 책은 아니지만 매력 있는 책은 아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하는 일은 힘들지만 너무나 보람있다. 글쓴이는 이런 도덕 교과서 같은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제목을 보면 음식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냥 사는 이야기다. 그냥 사는 이야기가 근 삼백 페이지다. 그 것도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된장 담그면서 사는 이야기. 중소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아유 그렇게 사시다니 참 좋으시겠어요, 부럽네요'하는 맞장구 말고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을 만큼 접점이 없다.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지 모르겠다. 이렇게 살아가라는 삶의 이상향을 제시하기 위해? 글쓴이의 생활방식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다고 글쓴이가 특별히 새로운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된장이 몸에 좋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아, 된장이 좋은 거구나'하고 깨닫는 사람 거의 없다. 된장이나 콩이 몸에 좋은 이유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을 중간 중간 삽입하긴 했지만 신문의 건강상식 코너에서 보는 것 이상은 아니다. 다른 꼭지들과 전혀 연관관계 없이 그저 날 것 그대로 뚝 떼어놓은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고 된장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독특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끝까지 읽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메주와 첼리스트에서 된장을 사먹어봐야겠군' 말고는 딱히 남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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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미인이 된다
이주영 지음 / 문예당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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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철학이 있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가끔 그런 자신감과 자기 철학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충돌하거나 어긋나기도 한다. 그런 차이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수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아무래도 후자에 속할 듯하다.

 레이저 치료를 하는 피부과 의사들을 모두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의사들로 매도하는가 하면 시중에 유통되는 화장품은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주장이나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 오히려 피부에 좋지 못하다는 주장처럼 상식과는 조금 거리가 먼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런 주장을 독자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풀어쓴 것도 아니고 '화장품 원료는 결국 비슷비슷한 성분을 수입해서 쓰기 때문에 국산이건 외제건 차이가 없다'거나 '선크림을 바르면 기름에 익힌 것과 같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저자의 교육관이나 인생관도 그렇다. 요즘의 교육은 1,2등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경쟁심이 생기지 않아서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는다거나, 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한국으로 유학을 간 아들들에게 '엄마는 빨갱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라고 했다는 대목을 읽으면 - 아마 서승 서준식 형제가 저자가 말한 빨갱이일 테다 - 어지러울 지경이다. (물론 자식이 고생하기를 바라는 부모님 없고 그 시대 상황이 어려웠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다만, 세월이 지나 자신이 한 말의 의미에 대해 조금의 반성이나 되새김 없이 옮겨 놓은 그 무감각에 놀랄 뿐이다.)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인생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오고 있는 분이다. 교사에서 화장품 외판원, 그리고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기까지는 분명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여유가 없다. 내 일, 내 가족, 내 생각 외에는 아무 것도 들어설 틈이 없다. 성공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모습의 책을 쓰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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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원한다면, 조금 더 포기하고 조금 더 의무를 수행해 봐. 이 세상의 훌륭하고 자유로운 열정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진귀한 감정을 맛보게 될 거야. 하지만 책 속의 삶에는 커다란 고요와 평온이 담겨 있지. 뭔가 좀더 지난 것에 대한 갈증이 밀려올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은 자책과 공포와 고통과 해로운 후회에서 벗어나 살 수 있어. 내 경우엔 내면의 영혼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정신적 수도원을 짓고 있는 한편, 외면의 그림자는 세상과 만나기 위해 나가지. 나는 이 마음 속 성전에 앉아 영혼의 생각들에 잠기지. 어제 테라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옛날에 본 유령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더니 엄숙하게 열을 지어 내 앞으로 걸어왔어. 모두 죽은 것들이지. 희망과 두려움, 기쁨과 슬픔, 야망과 황금 같은 청춘을 품고 사라진,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저 거대한 망각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지. 그때 나는 말을 하면서도 마치 나 자신과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과거' 속으로 이미 사라진 듯, 모두가-다툼, 고통, 모든 것이 아주 작게, 아무 의미도 없는 어리석음, 소음, 분노쯤으로 느껴졌어. 그렇게 해서 평온이 얻어지면 '운명'의 천둥소리는 아이들을 겁주려는 보모의 이야기에 불과해지지.


 그래, 인생의 논리는 놀라운 것이야. 그래서 때로는 '사탄의 영광'이란 제목으로 금언집을 하나 만들어볼까 생각하곤 해. 거기에 담길 내용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겠지. "애정의 원인을 제공하고 권태의 원인을 받는다, 봉사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상받는다, (다음 내용은 정숙한 모든 어머니들과 아내들의 일대기야.) 열정은 탐닉에 의해 더럽혀지고 구속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어느 쪽 경우든 상실은 불가피하다, 기타 등등." 그러나 이 씁쓸한 진실은 깊이 생각하기엔 적합하지 않아. 물론 그 것들이 진실이라면 인정받을 자격은 있겠지만 말이야. 어디서든 비통한 기분으로 빠져든다는 것은 감정에 고장이났다는 신호야. 이럴 대 마음을 크게 가지고 자제력을 발휘하면 본능적인 아픔의 절규가 들어설 자리에 고요한 가을날의 비애가 자리잡곤 하지. 문학이 큰 위안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비극들이 모두 과거 속의 것이어서 우리의 노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완결과 정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야. 슬픔이 점점 격해질 때 그것을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인 양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상상 속에서, 지금도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인 양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상상 속에서,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는 저 거대한 기계에 목숨을 잃은 칙칙한 영혼들의 애도 행렬에 동참해 보는 것이 가장 건강한 방법이야. 나는 과거를 화창한 풍경 보듯 바라보지. 그 곳ㅇ서는 세상 조객들이 모두 애도를 멈추었어. '시간'의 강 강둑 위로 갖가지 세대 인간들의 슬픈 행렬이 무덤을 향해 서서히 행진하고 있어. 그러나 과거라는 고즈넉한 전원에서는 지친 방랑자들이 모든 흐느낌을 멈추고 휴식하고 있지.


 그래,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를, 행복을 파괴하기 쉬운 기회로 생각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결혼 생활을 하면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두고 씨름하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치지. 그러다 몇 년이 지나면 대개는 문제가 정리되기 마련이고 정리가 되고 나면 한 사람은 행복해져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덕을 쌓고 있지. 가해자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결혼 생활을 축복이라 말하고 희생자는 상황이 더 악화될까 두려워 미소를 띠며 마지못해 동의하지. 결혼처럼 깊은 관계 속에는 고통이 가능성이 정말 무한히 담겨 있어. 그러에도 나는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고 믿어.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알아두면 좋을 많은 것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되거든. 세상에 고통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 그 것이 인간의 동료 의식을 키워 결국 남들이 다 겪는 고통으로 몰고 간다는 이유만으로 모른 척 살 수는 없는 거야. 그러나 이따금 약해지는 순간에는 단순한 생활에 대한 동경을 뿌리치기 힘들지. 인간의 슬픔에서 멀리 떨어진 채 책만 읽는 생활 말이야. 견디기 힘들 만큼 비참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놀라운 일이지. '참으로, 인간은 고통을 먹고 사나니.' 나 자신을 위해서나 남들을 위해서나 행복을 너무 중시하지 않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 그렇게 말하는 나도 이 얘기를 전적으로, 직관적으로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정당화시키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작업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자애의 마지막 피난처임이 분명해. 그러한 감정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이상이 너무 높은 데도 일부 우너인이 있으니 결국 자만의 일종이지. 자기 개인의 고통에 반항한다는 것도 또 하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어. 자신의 고통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거창한 공익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러나 이 참호 구축 작업에서 자애를 몰아내기란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아직 성공해 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야.


 내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보다 먼저 찾아오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에 내 외로움의 종착지가 될 한 귀퉁이마저 조재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무거운 짐이지. 그것을 달리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당신의 문제는 이 것을 용기 있게 직면하면서도 당신한테 중요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보유하는 것이야. 모든 것을 단호하게 끊고 자기 자신의 애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죽여버리는 것이 좀 더 손쉽겠지.ㄱ러나 이 경우, 사람이 무정해지고 장기적으로는 무자비해질 수도 있는데, 말하자면 금욕주의자들의 무자비함 같은 거지. 반대의 방법을 취하더라도 단점은 있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갈되고, 마음의 평온이 파괴되고, 다른 사람들의 영역을 부당하게 잠식하지 않고 건져올릴 수 있는 가치가 과연 얼마나 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야. 차라리 현실의 삶을 통째로 기억이나 상상 속의 삶으로 만들어버렸으면 하는 유혹도 들기 마련이지. 그 곳에서는 의무나 사실들이 나를 구속하지 못하니 현재 내가 맺고 있는 것들이 그림자나 비실재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 이 경우, 과거가 손상되지 않고 유지된다는  이점이 있긴 하지.
 그러나 이제 좀더 현실적인 부분으로 돌아와야 해. 내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 제1순위가 아닐 경우,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전적으로 수용적이고 수동적인 감동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믿어. 다시 말해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특별히 부탁해 오지 않는 한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야. 사람들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본인 스스로는 메아리가 되어 주어지는 정도만큼 애정을 가지고 반응하되 감정과 애정이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을 자제하고, 내게는 권리가 없으니 받은 것만 해도 과분하다고 생각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해. 예를 들면 결혼한 아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보여주는 태도 같은 것이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애정 생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정신적 죽음을 겪지 않으면서 이행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의무라고 할 수 있어.


 + 역시 러셀 자서전 중에서.


 이 편지들을 자서전에 싣기 위해서는 루시의 동의가 필요했을까? 만일 러셀이 루시에게 이 편지들을 싣도록 허락해주겠어, 하고 물었다면 루시는 소중한 선물을 빼앗기는 기분이었을까 아니면 멋진 보석을 자랑할 기회를 얻는 것 같았을까. 내가 이런 편지들을 받았다면 손에 쥐고 내놓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글쎄 나이를 오십 정도 먹으면 젊은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만큼 너그러워질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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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버티


 자네는 훌륭한 군자가 될 것 같네. 충분히 그렇게 볼 만한 경과를 보이고 있어. 그러나 자네가 지팡이를 사는 데 12파운드 6실링을 썼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 받았네. 그 정도 액수면 죄악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 내가 볼 땐 2파운드 6실링으로 한계를 그었어야 마땅하네. 그리고 케임브리지의 도덕성이 옥스퍼드를 크게 능가하지 않는 한 자네가 12파운드 6실링을 주고 산 지팡이도 아마 오래 가지 못할 걸세.


p. 153 <로건 피어솔 스미스의 편지>


+ 음 이 부분만 떼놓고 나니 그다지 안웃긴 거 같지만 정말 웃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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