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식에 관한 사소한 비밀
김안나 지음 / 리즈앤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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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 시간이 조금 어긋나서 서점에서 동생을 기다리다가 선 채로 다 읽었다. 어디에 '비밀'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정말이지 '사소'하긴 하다. 신문이나 잡지 한 귀퉁이에서 심심풀이로 읽던 내용들을 이리 저기 모아 짜집기 한 것 같다. 그것도 얼기 설기, 활자도 크고 여백도 많다.

 음식에 대해 나름대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화사에 조예가 깊은 것 같지도 않다. 누구나 어떤 책이든 대단한 동기 의식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보람있을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을 잘 다져넣을 수도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독자를 유혹하는 재주를 부릴 수도 있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책의 저자가 되고 싶은 의지가 별로 없는 듯 하다.

 서점에서 만화책이나 잡지만 랩핑할 게 아니라 이 책도 랩핑해야 할 것 같다. 예쁜 표지에 끌린 파리만 너덜해지도록 들끓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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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나는 천재다! - 어느 천재의 일기 다빈치 art
살바도르 달리 지음, 최지영 옮김 / 다빈치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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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천재의 일기'라는 부제처럼 일기라는 장르에 충실한 글이다. 읽는 사람이 이해하건 말건, 동의하건 말건 상관없이 스스로 하고 싶은 말만 한다.  - 어쩌면 이해 못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진지하게 해봤다. - 괴발개발 갈겨놓은 낙서같은 문장들에 문득문득 짜증이 몰려와 읽기를 집어치우고 싶을 때도 있다. (결국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 '이해'를 포기한 데 있다.)

 예술작품을 보면서 창조에 대한 욕구를 대리만족하듯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가의 삶에 대해 대리만족한다.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리고 싶을 때 그리고, 게다가 이따위로 휘갈긴 글로 책까지 낼 수 있다! 창작의 고통, 인정받지 못하는 설움, 가난, 예술가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고뇌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적어도 이 책에서 달리는 그저 즐거운 예술가일 뿐이다. 

 달리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지금도 잘 모른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몇살에 어떤 작품을 그렸고 그런 건 멋진 그림을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저 그림은 무슨 의미인지, 그 때 시대 상황은 어떻고 작가는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밥벌어먹고 살 거 아닌 바에야 머리 아프게 따질 필요있나, 내 눈에 멋지면 엽서나 한장 사서 벽에 붙여 놓으면 그걸로 좋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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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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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의 글은 항상 물 흐르듯 매끄럽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글을 써본 사람은 - 정확히 표현하자면 글을 잘 쓰려고 애써본 사람은 - 그 진부한 칭찬에 목말라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왜 내가 쓰는 문장은 항상 '어딘가' 어색한지, 왜 고치면 고칠수록 더 어색해지는지, 왜 결국은 맨 처음 썼던 문장으로 돌아오는지. 이런 고민 사이를 몇 번 오가다 '역시 천부적 재능'의 문제로 결론내리고 어설픈 살리에르 흉내를 낼 때 상대로 고르는 사람 중에 하나가 박완서다.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박완서 책 중에서 가장 '덜 매끄럽다'. 속셈이 너무 빤히 보이는 장치나, 실제로는 아무도 소리내 말할 것 같지 않은 대화체. 이야기하고 싶은 의욕 가득한 설익은 네가 - 나보다 너인 경우 훨씬 크게 잘 보인다 - 항상 하는 낯익은 실수들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반가우냐고? 천만의 말씀. 결국 '역시 천부적 재능' 타령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일 뿐이라는 진부한 진리를 다시 한번 쓰게 삼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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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산처럼 - 이오덕의 자연과 사람 이야기 나무처럼 산처럼 1
이오덕 지음 / 산처럼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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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기 싫은 질문이 몇가지 있다. 그 중에서 으뜸은 '이거 알아?'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 주제에 대한 나의 지식이나 관심도를 가늠(대부분은 단정)하고자 하는 질문. 이 할아버지께서도 같은 질문을 하신다. "~새 울음 소리가 어떤지 알아요?" 책장을 덮은지 얼마나 됐다고 그 새 무슨 새였는지도 기억 못하니 난 빼도박도 못하는 면박감이다. 그래도 밉지않은 영감님이다.

 나무 하나 풀 한포기 함부로 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끼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소중함을 느끼고 함께 아끼게 된다. 앞으로 계속 써먹기 위해서 지금 아껴야한다는 소위 이성적인 환경보호론보다 잘설명할 수는 없어도 마음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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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영옥 옮김 / 범우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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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우연히 베른하르트의 책을 접하고 번역되는 족족 사들이고 두번 읽지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름 중에 하나지만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느낌표에서 마이크를 들이대며 그 책은 어땠어요?하고 묻는다면 나는 당장 얼어붙을테다. 그것이 나의 문학적 소양 부족 탓인지 베른하르트라는 작가가 원체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항상 사춘기 - 이 단어가 가진 뜻 중 설익음과 미숙함을 완전히 도려낸 - 같은 작가의 사춘기 시절 얘기다. 예민하고 항상 혼자다. 내가 직간접으로 만난 사람 중 가장 자아가 강해서 이상하게도 가끔 위안이 된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책을 읽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지런히 감상을 정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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