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1 - 조정래 대하소설, 등단 50주년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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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한국 문학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라면 꼭 한 번씩 언급하는 작품이다. 사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국내 연작 소설 완독하기였는데, 시작점으로 정한 작품이 <태백산맥>이었다. 목표는 호기롭게 잡았는데, 너무 쉽게 중도하차하면 어쩌나 싶었다. 예상과는 달리 문장은 쉽게 읽혔고, 내용이 좀 복잡하긴 해도 아예 이해를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 마디로 '거장의 걸작', 그중 1권은 전채 요리를 단 한 번 떠먹어본 정도일 것이다.


해방 이후 한민족에서 나온 좌익과 우익이라는 이념, 그리고 둘 중 그 어느 쪽도 아닌 중도라는 또 하나의 이념이 플롯의 모든 테두리를 둘러싸고 있다. 작품은 의외로 이념에 대한 갈등을 쉽게 풀어낸다. 딱히 어렵거나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독자는 이해할 수 있다. 현세대가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을 어떻게 쟁취할 수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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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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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기자를 꿈꾼 적이 있었지만, 그 꿈의 불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꺼졌다. 이유인즉슨 당시 시국 가운데 기자로서의 평판, 흔히 말해 '기레기'라는 별칭이 단순한 비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별칭에 당위성을 느끼기 시작했던 게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였던 것 같다. '내가 기자가 된다면, 기자라는 이름 뒤에 따라다니는 그 별칭을 피해갈 수 있을까?', '어쩌면 꽤 높은 확률로 '기레기'라는 말에 당위성을 더 부여하는 기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심오한 고민을 했다.


사실 그때 갖게 된 기자라는 직업, 그와 관련된 사람들-주로 언론인에게 느끼는 선입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학생 때 접한 언론인의 책이 잊히기가 무색하게 논란이 터진 걸 보면서(3대 지상파 앵커의 성추문 논란이었다) 긴 여운과 같은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다. 다행히 이번에 읽은 남현도 기자의 에세이는 검열을 강하게 거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쭉 읽어내려갔다. 내가 아는 언론인이라고 한다면 주관보다는 객관을 강조하되 그 안에서 자기 주관을 쉽사리 꺾으려 하지 않는 모습이 연상된다. 다행히, 이 사람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이 에세이는 다정하고도 문학적인 에세이다. 저자의 주관이 배제된 건 아니지만, 그가 만난 '체헐리즘 소재의 제공자'들의 견해도 포용하는 따뜻한 글이 모였다. 여성 속옷 체험기, 폐지 수집 체험기, 육아 체험기 등 한 번쯤은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볼 만한 거리가 다양하게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체험기는 '50번 이상 거절 (당)하기'였다. 몇 년 전보다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거절하기에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나로선 참신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발 벗고 나서서 이런 챌린지를 해보겠나.


책을 덮은 뒤 저자의 최근 기사도 검색해보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았다. 여전히 유익하고 신선한 소재거리를 들고 방방곡곡 다니고 계셨다. 모든 기자, 포괄적으로는 언론인이 '남기자' 같은 유형(사람에게 유형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이라면 "더 큰 대한민국"을 쉽게 꿈꿔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건 큰 욕심이라는 걸 안다. 혹자는 해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 속에서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 살 만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보자고 돌려 말하는 듯하다. 나름 괜찮은 세상을 만들어가려면 때로는 용기도 필요하고,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기에, 한국이라는 좁고도 넓은 세계는 저자와 나, 타자가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꾸려나가야 하기에, 벌써부터 지루한 선입견을 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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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초인간 :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 - KBS <북유럽> MC 김중혁 작가 장편소설 내일은 초인간 1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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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나름 빠져 지냈던 인터넷 소설들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김중혁 작가의 신간은 그 분위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저 대사를 쭉 읽고만 있자니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한편으론 그 맛에 '귀여워서 봐준다'라는 느낌도 들었다. 사실 작품 속 인물들을 '초인간'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평범하다. 그들은 구세주가 아니었고, 또 세상을 들썩거리게 할만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옛날 영웅 설화처럼 '하루아침에 개천에서 용이 나 세상을 구했다'는 식의 서사와는 비교되는, 김중혁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작품을 볼 때마다 눈여겨보는 부분 중 하나가 '작가의 말'이다. 특히나 이번 작가의 말은 재치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동시에 작가가 인격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작가의 말도 스포일러의 일부분인지 모르겠다). 말미에 드러나는 작가의 말을 통해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바람을 볼 수 있었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욱 특별한, 공상우는 공상우, 민시아는 민시아, 독자인 나는 나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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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실패 - 개정판 걷는사람 소설집 1
이경자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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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매하기 전, 이경자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어렴풋이 봤던 기억이 있다. 영상 초반부터 작가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다. "작품이 나온 이후 들었던 얘기는 재수 없다, 싸가지 없다 등의 말뿐이었다"라는 말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침이 없는 그의 행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1세대 페미니즘 작가가 만든 한국 문학의 긍정적 선례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12가지 이야기 속 여성 인물은 때로는 남성 인물만큼 직선적이거나, 혹은 세상의 어떠한 존재보다도 여리디여리다. 놀라운 점은 어떠한 유형의 여성 인물이든지 간에 전부 (특히 여성)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 '여자가 성격이 왜 이렇게 드세냐'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던 이전과는 달리 어느새 남성 인물과 대립하는 그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여전히 낮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스스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체감한다.


표제작인 <절반의 실패>를 비롯한 이경자 작가의 작품은 억눌렀던 화병 비슷한 증세를 유발했다. 시기나 지역을 불문하고 말이다. 당연히 작가가 허용한 서사에 화가 난 게 아니라,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상황들이 전혀 옛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게 화가 났다. 그리고 그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는 주인공의 50%의 실패를 통해 역으로 삶에서의 진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가능성이라 함은,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놓고 남성과 대등하게 살기 위해 '투쟁'할 것인가, 아니면 그 권위 앞에 '굴복'할 것인가라는 선택에 대한 문제다. 그렇지만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문학, 나아가 역사의 성별에 대한 진보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시점이 '알페스 논란'이 터진 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러 가지 경험으로 인해 더 이상은 어릴 적 견고한 사고방식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회가 끝도 없이 주입하는 남성 중심적 관념에 곧바로 반기를 들기까지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행히 필자 곁엔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는 중이다(심지어 현재진행형이라니). 아마 리뷰를 읽는 사람 중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더할 나위 없는 동지애를 나눌 수 있는 존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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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2
김필균 지음 / 제철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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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써있다. "나에 대해 계속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문학을 하다보면 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뜻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학을 한다'라는 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문학을 '좋아한다', 또는 그 반대가 되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그저 문학을 한다라는 말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문학을 한다는 건 어떤건지 자문한다면, 나와 당신을 끝까지 탐구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답하고 싶다. 여러 매체에서 이야기하는 문학을 알고, 하는 과정은 -모두가 이야기하는 게 다 다르지만- 결국은 자기 정체성의 완성을 향한 여정인 것 같다.


문학하는 11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많지 않은 돈에 연연했을지 몰라도, 연차가 쌓인 현재(인터뷰를 진행한 시점일 것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것에 연연해하고 있다고. 인생의 활력을 잃지 않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시인, 저연차 직장인일 때 신간 잡지를 이끌며 사투를 벌인 출판 편집자, 문학 기자로서의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기자. 그들이 현생에서 절대 문학을 놓지 않는 이유는 곧 스스로를 놓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대학생 시절 복수전공으로 국문과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문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글쎄, 그래도 무슨 수로든 '문학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문학을 하기를 꿈꾼다. 한해의 마지막에 쓰는 글에서 늘어놓기엔 너무 변명 같긴 하지만(?), 내년에는 더 많이 읽고 쓰고 말하고, 그래서 문학을 더 익숙한 존재로 삼고 싶다. 내 소박한 꿈이 꿈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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