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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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기자를 꿈꾼 적이 있었지만, 그 꿈의 불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꺼졌다. 이유인즉슨 당시 시국 가운데 기자로서의 평판, 흔히 말해 '기레기'라는 별칭이 단순한 비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별칭에 당위성을 느끼기 시작했던 게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였던 것 같다. '내가 기자가 된다면, 기자라는 이름 뒤에 따라다니는 그 별칭을 피해갈 수 있을까?', '어쩌면 꽤 높은 확률로 '기레기'라는 말에 당위성을 더 부여하는 기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심오한 고민을 했다.


사실 그때 갖게 된 기자라는 직업, 그와 관련된 사람들-주로 언론인에게 느끼는 선입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학생 때 접한 언론인의 책이 잊히기가 무색하게 논란이 터진 걸 보면서(3대 지상파 앵커의 성추문 논란이었다) 긴 여운과 같은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다. 다행히 이번에 읽은 남현도 기자의 에세이는 검열을 강하게 거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쭉 읽어내려갔다. 내가 아는 언론인이라고 한다면 주관보다는 객관을 강조하되 그 안에서 자기 주관을 쉽사리 꺾으려 하지 않는 모습이 연상된다. 다행히, 이 사람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이 에세이는 다정하고도 문학적인 에세이다. 저자의 주관이 배제된 건 아니지만, 그가 만난 '체헐리즘 소재의 제공자'들의 견해도 포용하는 따뜻한 글이 모였다. 여성 속옷 체험기, 폐지 수집 체험기, 육아 체험기 등 한 번쯤은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볼 만한 거리가 다양하게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체험기는 '50번 이상 거절 (당)하기'였다. 몇 년 전보다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거절하기에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나로선 참신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발 벗고 나서서 이런 챌린지를 해보겠나.


책을 덮은 뒤 저자의 최근 기사도 검색해보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았다. 여전히 유익하고 신선한 소재거리를 들고 방방곡곡 다니고 계셨다. 모든 기자, 포괄적으로는 언론인이 '남기자' 같은 유형(사람에게 유형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이라면 "더 큰 대한민국"을 쉽게 꿈꿔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건 큰 욕심이라는 걸 안다. 혹자는 해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 속에서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 살 만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보자고 돌려 말하는 듯하다. 나름 괜찮은 세상을 만들어가려면 때로는 용기도 필요하고,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기에, 한국이라는 좁고도 넓은 세계는 저자와 나, 타자가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꾸려나가야 하기에, 벌써부터 지루한 선입견을 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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