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

- 누구나 읽어야 할 면역에 대한 모든 것


#5 자연은 선하다는 통념


대체 의학의 매력 중 하나는 그것이 대안 철학이나 대안 치료법뿐 아니라 대안 언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오염되었다고 느끼면, 대체 의학은 <정화>를 제공한다. 우리가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면, 대체 의학은 <보충제>를 제공한다. 우리가 독소를 두려워하면, 대체 의학은 <해독(디톡스)>을 제공한다. 우리가 나이 들어 몸이 녹슬고 산화하고 있다고 걱정하면, 대체 의학은 <항산화제>로 안심시킨다. 이런 은유들은 우리의 근본적인 불안을 달랜다. 그리고 대체 의학의 언어가 잘 이해하듯이, 우리는 기분이 나쁠 때 뭔가 절대적으로 좋은 걸 바라기 마련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의약품들은 대개 나쁜 점이 최소한 좋은 점만큼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의학에서 완벽한 치료법은 극히 드물지>라고 말한다. 그야 사실이겠지만, 우리 의학이 우리 자신만큼 흠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게 위안일 때, 대체 의학이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강장제는 천연natural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인간의 한계에 좌우되지 않는 의학, 전적으로 자연이나 신이나 그도 아니면 지적 설계에 의해 마련된 의학을 암시한다. 자연이라는 단어는 의학의 맥락에서 순수함, 안전함, 무해함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을 좋음의 동의어로 쓰는 태도는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심하게 괴리된 결과인 게 거의 분명하다.



자연주의자 웬델 베리는 <인간의 환경이 인공적인 것이 되어갈수록 《자연》이 점점 더 가치 있는 용어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주장했다. <만일 우리가 인간 경제와 자연 경제를 반드시 서로 반대되거나 적대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양쪽 모두를 파괴할 위험이 있는 그 대립 자체를 지지하는 셈이다. 오늘날 야생적인 것과 길들여진 것은 서로 별개의 것으로, 서로 유리된 가치로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들은 선과 악처럼 배타적인 극단들이 아니다. 둘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해야만 한다.>


요즘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백신 없이 <자연적으로> 감염성 질병에 대한 면역을 발달시키도록 만든다는 발상에 매력을 느낀다. 그 매력은 백신이 본질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믿음에 의지한 바가 크다. 그러나 백신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중간적 장소에 속하는 물질이다. 웬델 베리라면 그것을 숲으로 둘러싸인 잘 깎은 잔디밭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백신은 우리가 바이러스에게 마구를 씌워 말처럼 길들이는 능력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야생의 가축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백신의 활동은 한때 야생의 것이었던 물질에 대한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에 의존한다.



감염성 질병은 자연 면역의 주된 메커니즘 중 하나다. 우리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질병은 늘 우리 몸을 통과하고 있다. 한 생물학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아마도 늘 질병에 걸려 있겠지만 아픈 경우는 거의 없다>. 질병이 질환으로 드러날 때야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다>는 의미에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본다.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로 아이의 손가락이 까매졌을 때, 파상풍으로 아이가 입을 벌리지 못하고 몸이 경직될 때, 백일해로 아기가 숨 가빠할 때, 소아마비로 아이의 다리가 뒤틀리고 쪼그라들 때, 그제서야 질병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_ 『면역에 관하여』 출간 전 연재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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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수영이 2016-11-19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적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죠. 우리가 무슨 캡슐이나 차단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항상 노출되어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아주 극해한것도 있으나 그것을 극복하고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것이니... 아주 당연한 것 같아요.

ICE-9 2016-11-20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생적인 것과 길들여진 것 사이에 연속성이 있고 그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되네요. 자연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확신은 인공적인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만큼 위험한 것이겠지요.
정말 위험한 것은 질병이 질환이 되어 구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났을 경우인데, 우리는 잠재적인 상태에 머무른 것 마저도 섣부르고 근거없는 예측으로 지레 겁먹고 위생 강박증에 빠지는 게 아닌가 여겨지네요. 자연스러운 것에 대해 좀 더 신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샛별투 2016-11-2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tural하다는 말을 저렇게 풀 수도 있군요. 자연이라는 것도 과거의 어떤 순간에 멈춰진 걸로 봐야겠지요? 대체의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박했을지도 궁금하군요.

stillmyhero 2016-11-2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부분도 책 내용을 더 자세하게 읽고 싶게 만드는 파트네요.

Chloe 2016-11-24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참 흥미롭고 재미있네요. 면역에 관해 참 쉽게 잘 나왔어요. 요즘 더 면역에 대해 궁금한것도 질문하고자하는거가 많은데 이 책한권이면 만족할거같아요. 열심히 연재 읽는 재미도 참 쏠쏠해요. 역시 열린책들♥

하루한쪽 2016-11-2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 경제와 자연 경제를 나누어 극단에 세우지 않고 그 둘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신선하네요. 과거에는 자연을 지배하려는 사고였다면 지금은 자연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당연히 인간이 이뤄낸 것들에 대한 회의와 부정적인 사고가 따라오고요. 처음에 책 제목을 봤을 때는 후자의 사고를 담고 있는 책인 줄 알았는데, 균형을 잡고 있는 책이군요 :)


https://www.facebook.com/hanabi.tschoe/posts/1869542649999099

carpe diem 2016-11-2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상들이 살았던 과거가 더 깨끗하다고 하지만 현재 사람들보다 일찍 죽었다면, 단순히 먹거리 문제뿐만 아니라 백신, 약과 같은 의학의 도움도 크다고 생각해요. 어떤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없고, 우리는 지금껏 조상과 의술 모두의 도움으로 잘 살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