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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높은 곳을 향하여



나는 사형수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983년 조지아 주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나는 열정은 있지만 미숙한 스물세 살의 하버드 로스쿨 학생이었고 혹시라도 내 능력에서 벗어난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그때까지 경비가 삼엄한 교도소 내부를 본 적이 없었다. 사형수 수감 건물을 방문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은 채 혼자서 사형수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벌써부터 공황 상태에 빠진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거세게 두방망이질했다. 사형 제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전무했을 뿐 아니라 여태껏 형사 소송에 관한 수업조차 들은 적이 없었다. 사형 소송을 구성하는 복잡한 상소 과정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부족했다. 나중에야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익숙해질 터였지만 어쨌거나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인턴을 신청할 때만 하더라도 실제로 사형수를 만나게 될 거라는 사실은 관심 밖의 문제였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에는 내가 진짜로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확신이 없었다.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나를 보면 사형수가 무척 실망할 거라는 확신이 점점 굳어졌다.



학부 때 나는 철학을 공부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면 철학적인 사색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졸업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때부터 <졸업 이후의 계획>에 대해 정신없이 고민했고 결국 로스쿨을 선택했다. 다른 대학원 과정에 등록하려면 전공할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만 법대에는 적어도 겉보기에 그런 것이 전혀 필요 없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하버드에서 수업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온 것 자체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입학 첫해가 마무리될 무렵 환멸감이 엄습했다. 당시의 하버드 로스쿨은 상당히 무서운 곳이었다. 특히 스물한 살의 나 같은 학생에게는 더욱 그랬다.


이미 석사나 박사처럼 고급 학위를 딴 학생도 많았고 법률 사무소에서 보조원으로 일했던 학생도 많았다. 어느 하나 내게는 없는 이력들이었다. 이런 학생들과 비교하면 나는 무척 미숙하고 경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나자 법률 회사들이 학교를 찾아와서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값비싼 정장을 차려입고 뉴욕이나 LA,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로 <직행>할 수 있는 서류에 서명했다. 나로서는 우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이렇게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완전히 수수께끼였다. 로스쿨에 다니기 전까지는 심지어 변호사를 만난 적조차 없었다.



로스쿨에서 이례적으로 인종과 빈곤 관련 소송을 다루는 한 달짜리 집중 과정을 발견했다. 담당 교수인 베치 바살러트 교수는 전미 유색 인종 지위 향상 협회, 즉 NAACP의 변호 기금 부서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여타 수업과 달리 이 수업의 수강생들은 학교를 벗어나 사회 정의와 관련된 일을 하는 단체에서 한 달 동안 일해야 했다. 나는 열의에 차서 수업을 신청했고 1983년 12월에 조지아 주 애틀랜타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의 남부 재소자 변호 위원회, 즉 SPDC에서 일하면서 몇 주를 보낼 예정이었다.


애틀랜타로 직행하는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는데 그곳에서 SPDC 책임자인 스티브 브라이트를 만났다. 휴가를 마치고 애틀랜타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30대 중반이었고 열정과 확신이 있었다.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나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보였다.



짧은 비행 여정의 어느 시점에서 그가 말했다.「브라이언, 사형이란 <돈 없는 사람들이 받는 처벌>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사형수들을 도울 수 없어요.」

내가 어떤 기여를 할 거라는 그의 즉각적인 믿음에 깜짝 놀랐다. 그는 사형 제도에 관련된 현안들을 간단하고 설득력 있게 정리해 주었고 나는 그의 헌신적인 태도와 카리스마에 완전히 매료되어 이야기를 경청했다.

「여기서 일하는 것에 어떠한 환상도 갖지 않길 바랍니다.」

「오, 아니에요.」 나는 그를 안심시키며 분명하게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글쎄요, 우리와 함께 일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기회>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우리 생활은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고 늘 시간에 쫓긴답니다.」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단조롭게 사는 것보다도 못하다고 할 수 있어요. 가난한 생활에 가깝죠. 빠듯한 생활을 하면서 역경을 감내하고, 모르는 사람들의 호의로 생활을 유지하면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갑니다. 미래도 불투명하죠.」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농담입니다. …어느 정도는요.」



인턴 기간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무척 친절했고 나는 금세 편안함을 느꼈다. SPDC 사무실은 애틀랜타 시내의 16층짜리 고딕 복고조 양식 건물인 힐리 빌딩에 자리했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그 건물은 상당히 낡았고 세입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형편이었다. 나는 책상으로 둘러싸인 비좁은 공간에서 두 명의 변호사들과 함께 일했으며 전화를 받거나 변호사 대신 법률문제를 조사하는 등 일반적인 업무를 맡았다. 일상적인 업무에 막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어느 날 스티브가 다른 사람들은 짬을 낼 수 없으니 사형수 수감 건물을 방문해서 한 사형수 남성을 만나 보라고 지시했다. 스티브의 설명에 따르면 그 사형수는 사형 선고를 받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사건을 맡아 줄 변호사를 아직까지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이 남성에게 한 가지 간단한 메시지만 전달하면 되었다. <내년까지 당신에 대한 형 집행은 없을 겁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조지아의 농지와 숲을 가로질러 운전하며 사형수를 만났을 때 할 말을 내내 되뇌었다. 내 소개말도 반복해서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브라이언이라고 합니다. 나는 학생이고….」 아니다. 「나는 로스쿨 학생이고….」 아니야. 「나는 브라이언 스티븐슨이라고 합니다. 남부 재소자 변호 위원회라는 법률 단체의 인턴이고 당분간은 당신에 대한 형 집행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전하러 왔습니다.」 「당신은 당분간 사형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동안은 사형될 위험이 없습니다.」 아니다.


나는 계속해서 인사말을 연습했고 마침내 가시철조망 울타리와 하얀색 감시탑이 위협적인 조지아 주 진단과 분류 센터, 즉 조지아 주립 교도소에 도착했다. SPDC 내에서는 <잭슨>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던 터라 표지판에서 실명을 발견하자 왠지 어색했다. 병원 같기도 하고 심지어 치료 시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주차한 다음 교도소 본관 정문 앞에 도착했고 다시 본관 내부의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복도 중간중간에는 사방의 모든 접근 경로를 쇠창살로 차단한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교도소 내부의 모습은 그곳이 정말 무서운 곳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일말의 여지도 남겨 주지 않았다.


터널처럼 생긴 복도를 따라 공식 면회 장소로 향했다.

_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출간 전 연재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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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2016-10-06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형이란 돈 없는 사람들이 받는 처형이란 말이 무척 무겁게 느껴집니다. 앞으로의 연재와 출간이 무척 기대됩니다.

papariver 2016-10-06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형수에게 사형 집행이 당분간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에는... 정말 엄청난 무게감이 담겨 있을 거 같습니다. 2회도 기대되네요.

시소 2016-10-07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무엇을 향해 가야할지도 잘 모르고..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위 친구들과 비교해볼 때 나 자신이 초라하고.. 이런 마음들이 참 공감이 가네요. 이토록 자신 없고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하던 어린 학생이 어떻게 지금의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되었는지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2회도 기다릴게요!

stillmyhero 2016-10-07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나온다면 꼭 읽고 싶네요. 2회 이야기 궁금해요. 면회 장소에서 어떤 일이 펼쳐졌을지...

비로그인 2016-10-07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버드 로스쿨! 하면 떠오르는 것에서 갑자기 정반대의 휴머니스트적인 이야기로 빠지는 시작이 많이 식상합니다. 사형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하는 저자의 생각도 많이 읽어보았던 듯한 진부함이 느껴집니다. 물론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 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읽으며 생각하는 맛이 조금씩 강해질 것 같다는 기대가 듭니다. 2화를 기다려 봅니다.

고귀한 수영이 2016-10-07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열린책들에서 나왔던 인종과 관련된 작품인 <앵무새 죽이기>, <노예12년>, <웰컴 삼바> 그리고 <세상과 나 사이>와는 언뜻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강렬한 무엇인가가 숨어있을 듯한 엄청난 작품임을 느낌 수 있는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연재 첫화네요. 진짜 벌써부터 다음 2회가 궁금해져요. 세상을 아니 이 사형수와 감옥 그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신참에게 있어서 그 현장과 사형수를 만나서 대면하였을 때 느낌 두려움과 감당하기 힘든 압박을 어떻게 견대낼지 정말 궁금해져요. 진짜 매 화요일과 목요일이 무척 기대될 연재에요~

galei 2016-10-10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진진하네요. 다큐멘터리를 읽는 것 같아서 재미있습니다!!

history86 2016-10-10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어요^^ 다음 번 연재도 기대됩니다.

water0_1 2016-10-10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노노 2016-10-1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의 애티커스 핀치라고 불리는 사람의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갑니다. 법이라는 게 엄정하게 지켜져야 하는 만큼 다루는 사람이 중요하니까요.

딸기냥 2016-10-1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도입부분이지만, 월터의 등장과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우리에게 말해주고싶은지 궁금해집니다 ^^

Chloe 2016-10-20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말일이 기다려지는 책이네요. 저윗분 말씀처럼
하퍼리의 앵무새죽이기 생각나네요. 열린책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계속 기대되고 응원하고픈...

마애미안 2017-05-1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의 어두운 곳, 들추면 눈물부터 왈칵 쏟을 것이 두려워집니다. 알면서도 애써 직면하지 않으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과 같겠다는 생각을 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