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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2008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총 8편의 단편과 대상작가의 다른 작품 1편, 심사평, 대상 작가 작품 평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심사평과 대상 작가 작품 평론은 제외하고 8편의 단편 중 감상이 남은 작품과 대상 작가의 다른 작품 1편을 이 서평의 대상으로 한다. 한 가지 언급하고 서평의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작품을 자신의 시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앞, 뒤표지와 책날개, 서문, 수상작 선정 이유서는 절대 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보려면 작품을 다 읽고 봐도 된다. 여타 매체의 언급도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작품에만 집중해서 보는 것이 좋다.
<사랑을 믿다> 권여선
여자 작가가 남자의 시선으로 썼다. 너무나 일상적인, 일상적이길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일상이 된 상황을 소재로 하고 잘 정돈된 낱말과 문장을 조합해냈다는 느낌이다. 묘사도 간단명료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숨은 긴장과 재미, 충분한 감정의 농도가 좋다. 여자인 작가가 남자의 시선으로 썼지만 결국 여자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건, 사랑과 실연처럼 여자에 심리에 대한 남자들의 충고가 부질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모는 같은 성을 가진 인간의 판단과 묘사를 믿는 것이 그나마 정확하지만 심리는 다르다. 여자의 심리는 여자가 정확히 알고 남자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믿다’란 단편의 제목은 누벨바그의 노래 <This is not a love song>
처럼 간절하고 반어적이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라는 것도 너무 북받치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 말이다. 적절히 조절하고 배분해서 어딘지는 모르지만 왼쪽 가슴과 명치 사이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하나씩 입으로, 몸으로 꺼내야지 항상, 한 번에, 일상적으로 꺼내놓으면 닳고 닳아 그것의 북받치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이해와 공감을 구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권여선의 감정 조절은 영화 <싸움>과 확연히 대비된다. <싸움>에서 김태희와 설경구는 거침없이 전투적인 모습으로 마음껏 감정을 표출하지만 <사랑을 믿다>와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두 작품에서 권여선은 감정을 적절히 감추고 남은 감정은 독자의 하여금 채울 수 있게 하는 여유를 남겨 둔다.
<그 여름의 수사> 하성란
열자 이내는 기본요금으로 전보를 보낼 수 있는 시절에 아이는 어머니의 긴 말을 톡톡 잘라 10자로 줄여 타지에 사는 아버지에게 보낸다. 질퍽하고 명랑하다.
<서열정하기 국민투표율려, 낙서공화국1> 김종광
한국 문학계의 서열에 대해, 문학계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인위적으로 가상의 나라를 만들고 타인의 시선으로 한국 문학계의 폐단을 비판하고 있다. 거슬렸던 것은 우리나라라는 사회적 성찰 없는 낱말의 사용이었다. 한국 문학계의 폐단을 비판할 마음이 있었다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우리나라가 아니라 한국이라고 했어야 옳다.
작품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연예계의 늘씬한 미녀와 유명한 스포츠 스타의 책은 작품 속 여타 문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존재한다. 그리고 한 사회의 총체적 뭉뚱그림에 대해 알고 싶으면 택시를 타고 현실을 알고 싶어도 택시를 타면 된다는 간단한 방법에 대해서도 소설 첫 머리에 알려주고 있다. 택시기사들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얕고 넓게 알고 있으며 정치인들이 주로 언급하는 서민의 대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실 사회에 대해서도 빠삭하기 때문이다. 재미있긴 하지만 어딘가 어설픈 작품이다.
<내가 데려다줄게> 천운영
사내가 자살하게 되는 과정도 점쟁이 할머니 집에 대한 생각도 진실이더라도 터무니없는 몇 마디 풍문에 의해, ‘그 집서 살던 남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잖아’같은 말에 의해 모든 상황과 심리가 역전됐다. 이 작품의 핵심은 풍문과 심리다.
<정류장> 박형서
고즈넉한 시골 산 깊은 곳의 절간에서 움직임 없이 인내하는 돌을 바라보며 과거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는 기분이다.
<낮잠> 박민규
“축복받은 날씨다. 저 볕 속에서,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박민규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작품은 들어오던 그의 유쾌함과는 거리가 있다. 이를테면 유쾌함보다는 한 노인의 감상과 삶의 팍팍함과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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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책을 말하다에서 김갑수와 홍윤기의 토론을 듣고 보며 뭐 저리 어지럽게 박완서와 이청준에게 찬사를 보내나 싶었다. 읽고 재미있으며 느낌이 오롯하게 남으면 그게 소설이 되는 거 아닌가. 소설이 항상 쉽게 읽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김갑수의 의도는 이해하겠으나 김갑수는 책 읽기가 업인 자신의 인생에 벽돌을 나르고 국밥 끓이느라 책 들춰볼 시간이 없는 다른 인생을 끼워 맞추고 재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생의 깊이는 저마다 다르다.
박완서나 이청준이 김갑수 홍윤기에게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같이한 작가였다면 나 같은 문외한도 권여선, 박민규, 천운영, 박형서가 인생의 얼마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