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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빛의 제국>을 보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도 신간 <퀴즈쇼>를 사 읽게 된 데에는 네 가지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유가 있다. 첫 째, 20대를 다룬 소설이라는 것 둘 째,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와 더불어 20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셋 째, 우석훈과 김영하의 독특한 관계 넷 째, 김영하의 비교적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가 좋아서. 세 번째 이유인 우석훈과 김영하의 독특한 관계는 건너 들은 것인데 김영하 본인이 말하길 우석훈과 김영하는 친분이 있어(기억에 동기라고 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음) 자주 대화하곤 했는데 생각은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주제로(장르는 다르지만) 책을 출간했으니 독특한 관계고 두 책 모두 궁금할 수밖에.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소설의 내용을 주된 것만 간단히 요악하면 이렇다. 이민수라는 사생아가 있다. 27살 이민수는 대학원까지 졸업했지만 직장도 없고 별다른 꿈도 없다. 이민수를 키워준 큰 이모(최여사)가 죽는다. 큰 이모의 많은 빚이 있었다. 빚을 이민수가 갚지 못하고 집을 내준다. 큰 이모의 남자친구(곰보빵 아저씨)가 집을 받고 대신 빚을 갚는다. 이민수는 고시원에 살며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 몇 번 돈의 유혹을 받고 자신이 사회에서 대단히 무른 존재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그런 와중에 취미가 같고 대화가 통하지만 계급이 다른 여자를 채팅을 통해 만난다. 고시원에서 쫓겨난 이민수는 여자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여자로부터, 자신이 처한 현실로부터 도망친다. 퀴즈 인재를 키우는 회사에서 훈련 받으며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한다. 다시 낯선 사회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 사회에서도 도망친다. 이민수는 결국 누구도 믿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며 자신의 비관적인 삶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확고하게 못 박고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며 살아간다.
요약을 통해서 이 소설의 제목 ‘퀴즈쇼’는 20대 청년 이민수의 삶을 표현하는 데 아주 적절한 단어임을 알 수 있다. 문제와 의심, 대답과 냉정한 처벌, 재도전과 무기력함. 인생 자체가 퀴즈쇼다. “퀴즈는 본질적으로 결투의 형식입니다.…누군가가 문제를 내면 그 문제를 맞춰야 합니다. 못 맞히는 순간, 그는 죽는 겁니다. 정신적으로 무기력해져서 승자의 처분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내려가라면 내려가고 꺼지라면 꺼져야 합니다. 이민수씨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이춘성이 말한다. 세상은 거대한 퀴즈쇼의 일환이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가 원하는 답을 제시하지 못한 젊은이는 영원히 무기력하게 도태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세상이 그런 젊은이를 좋아하니까. 세상은 질문하는 젊은이를 좋아하지 않아. 자기 대답을 갖고 있는 젊은이를 원하지.”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니?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 말 같은 말을 하고, 집 같은 집에서 잠들고, 밥 같은 밥을 먹으며 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
이민수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의식주 중 ‘식’과 ‘주’다. 당장 먹을 것과 잠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국가에 소속된 국민으로서 20대는 ‘먹을 권리’와 안전하게 ‘잠을 잘 권리’가 있다. 그런 기본 권리에 대한 책임은 국가라는 상위 집단에서 사회를 거쳐 가정이라는 하위 집단에까지 있는 것이다. 기본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국가라는 집단은 존재의 의무를 잊고 있는 것이다. 이민수의 방황은 그 자신의 “뼈 속 깊은 게으름”의 탓과 더불어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지휘하는 국가의 탓이다. 경제학의 역사를 보더라도 기본적으로 국가의 역할은 법의 제정으로 무한 경쟁의 고래 싸움에서 새우를 보호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국가가 한 번이라도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민수 같은 20대가 이 나라 한국에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 그 실증적 진단의 예가 되겠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는 국민의 기본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세금은 힘 좀 쓰는 나라의 협박에 못 이겨 한물간 무기를 비싸게 구입하거나 불편도 못 느끼는 보도블럭을 다시 까는 데 쓰라고 내는 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식’과 ‘주’의 기본 권리를 보장하는 데 쓰라고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20대의 기본 권리를 가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누가 기본 권리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안이 분명히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한 대안적 대답은 <88만원 세대>를 완독한 후 실증적 진단까지의 과정을 거쳐 논해보아야 할 것이다.
<퀴즈쇼>에 대한 단평
1.
감상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문장이 없어서 좋고, 감상이 필요할 땐 푹 젖어 맺고 푸는 게 비교적 확실한 문체가 깔끔하다.
2.
예상 가능한 이야기 흐름이 아니라 사건과 상황 사이사이에 장치해 둔 반전들이 분위기를 적절히 고조시켜 소설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됐다.
3.
영화 연출을 통한 배우의 세심한 연기를 잡아내는 것처럼 등장인물의 사소한 감정 변화로 인한 행동 변화를 독자로 하여금 포착하게 하는 데는 실패한 것 같고 채팅으로 이름과 사는 곳, 이메일 주소 등을 바로바로 알아내지 못하는 모습 같은 구시대적 상황 설정이 아쉬웠다.
4.
지원이라는 인물은 20대 남자들이 실제로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여성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