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의 작가 - 한국과 프랑스의 어린이문학 작가, 편집자, 아트 디렉터, 번역자 들의 생생한 문화 교류 바깥바람 8
최윤정 엮음 / 바람의아이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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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책을 읽니?” 지인이 물었다. 미리 생각해둔 답지는 없어 즉흥적으로 대답했다. 실제 삶의 작은 반경 내 엇비슷한 사람살이 안에서는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 있다. 하지만 책에는 범접하기 힘든 다양한 사람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수시로 밀도 있게 만날 수 있다. 말해놓고 보니 과연 그렇구나 싶다. 듣기를 좋아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알고 싶은 누군가의 가지런한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다. 가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끄덕이는 시간이 평화롭다. 내 머리와 가슴 속 우주가 드넓어지는 느낌이 황홀하다.
책 속에만 빠져 있는 것을 넘어 책 밖으로 기웃대기도 한다. 북토크, 강연회 등이 열리는 학교, 도서관, 서점 등으로 분주히 쫓아다녔다. 코로나 시대에는 ZOOM, 인스타 라방 등으로 지역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 퇴근 후 서울 강연을 들을 기회가 더 많아졌다. 작가를 마주하고 집필 동기나 작품의 숨은 이야기 등 책 밖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다.

이 책은 ‘프랑스 작가에게 듣는다’, ‘프랑스 편집자, 아트디렉터, 번역자에게 듣는다’, ‘한국 작가에게 듣는다’ 크게 세 장으로 이뤄진다. “듣는다”, 듣는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이국의 작가, 출판 관련 직업군의 이야기는 접하기 힘드니 더욱 그러하다. 이메일 대담, 전화 인터뷰 등 새로운 시도를 포함한 다양한 소통의 형식과 내용이 흥미로웠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이 쓰고 만든다는 생각을 새삼 확인했다.
이름만으로는 낯선 작가였는데 작품을 보니 다 연결고리가 있는 작가들이어서 뒤늦게 환호했다.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는 내가 너무 좋아해 해마다 아이들에게 애정 듬뿍 담아 읽어주던 책이었다. 그 저자가 수지 모건스턴이었다니! 언제 사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글쓰기 다이어리’도 책꽂이에 꽂혀 있다. 그리고 미카엘 올리비에 작품도 읽었다. 바람의 아이들 꼬독단이 되면서 랜덤으로 선물 책 꾸러미를 받았다. 그 중 ‘뚱보 내 인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뭐지? 어떻게 알았지? 당혹스러웠다. 그다지 호감 가는 표지와 제목은 아니었지만 왠지 끌렸다. 재미, 의미를 다 채우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었는데 알고 보니 진작 인정받은 작품이었다. 작가 이름보다는 작품 제목만 알았는데 이제 이 두 작가는 확실히 기억하고 다른 작품들을 더 찾아 읽어보고 싶다. 얼핏 ‘사고’를 ‘살고’로 잘못 보고 놀라 다시 본 ‘나는 사고 싶지 않을 권리가 있다’, 소비문화에 대해 관심과 걱정이 많은 터라 더 궁금하다. 최근 주목하게 되어 신진작가인 줄만 알았던 김혜진 작가가 오래된(?) 작가라는 걸 알게 돼 놀랐다. 그 외 좋아하는 작가 유은실, 평론가 김지은도 반가웠다.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쓰고, 낱말 하나도 굉장히 고민을 하는데, 사실은 애들이 이걸 다 이해하나? 애들은 엉뚱한 거 하나에 꽂히는데 내가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한국 작가 좌담 중 이 고민에 무척 공감했다. 이렇게 알려주고, 저렇게 가르쳐주고 싶은데 아이들은 얼마나 받아들이고 제 것으로 소화하고 있나 회의가 드는 순간이 많다. 다른 직업군 고민과 이렇게 겹치다니 아이들 대하는 일이 그런 건가 보다. 하지만 최윤정의 정리처럼 답을 모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무엇을 보든지 자기 안에 무의식적으로 쌓이는 게 많은 시기이므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한 인간의 내면의 질, 감성의 질을 좌우한다는 데 백프로 동의한다. 어차피 배부른 건 똑같다고 하면서 아무것이나 욱여넣어도 되는 것이 아니듯 우리 영혼의 양식은 더하지 않겠는가.

프랑스 작가 미카엘 올리비에는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우리 안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은 똑같다. 사회는 진화하지만 인간성의 밑바닥을 이루는 것은 그렇지 않다. 바로 그 점이 우리를 세계 시민으로 만든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 다른 나라 책을 읽는 것도, 이전 세대의 책을 읽는 것도, 지금 작가가 다음 세대 이야기를 쓰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경계선 밖의 낯선 것들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들이 자기 안에 잊혀졌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계속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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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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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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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Dear 그림책
강현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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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아우성, 글 없는 그림책을 역설적으로 더 시끄럽게 읽게 된다. 글 없는 그림책을 보면 작가가 해주지 않는 말을 대신하느라 되려 수다스러워진다. 면지에서부터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는 초록빛 고개를 유유히 넘는다. 차가 지나가는 풍경이 여러 빛과 모양으로 다가온다. 산이라고, 녹색이라고 뭉치기에는 다양한 지형과 빛깔이 펼쳐진다. 풍경을 보다 놓칠세라 빨간 버스를 쫓아가다 보면 속표지에 도착하고 비로소 버스 안 아이들이 당겨 보인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네 명의 아이들은 낯선 피서지에 내려 길을 찾아간다. 그중 공을 가진 한 명은 일행과 좀 떨어져 걷고 있다. 멀찍이 이 아이들과 다른 갈색 피부색을 가진 아이가, 그 일행아이들이 이 살구색 아이들, 특히 공을 가진 아이를 지켜본다. 무리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나서 끼지 않던 아이와 같이 축구를 한다. 그러던 중 공이 튀어 저만치 갈색 아이에게 날아간다. 공을 맞은 아이가 넘어지고 아이들이 달려간다.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하고 손을 내밀어 일으킨다. 그렇게 말을 트고 살구색과 갈색 아이들이 함께 공놀이를 하게 된다.
단순한 형태로 구현하는 움직임 포착이 기막히다. 아이들의 심장 박동, 헉헉 숨을 헐떡이며 뛰는 소리, 공과 발이 부딪는 소리, 모래가 튀는 소리가 고막을 꽉 채운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한낮 뜨거운 공기, 아이들의 땀도 느껴지고 아이들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정도 보인다. 부지런히 공을 쫓고 공수 흐름을 따라가며 지루할 틈 없이 긴박하게 진행되는 경기에 쑥 빨려 들어가 몰입하게 되는 힘이 있다. 축구 한판이 끝났다. 해가 지고,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났다. 우와! (거의) 글 없는 그림책이고 (면은 선으로 이뤄진 것이나) 선 없는 그림책의 (호들갑스럽지만) 마법이다. 작가가 최대한 절제한 것들은 독자가 다층적 공감각으로 가득가득 채울 수 있다. 절제한 듯 보이지만 독자가 최대한 장면을 재현하고 자연스레 연결 가능하도록 작가는 적절히 세팅해두었다. 2D가 4D가 된다. 어마마한 책이다. 내가 작가라면 내가 만들고도 엄청 뿌듯해 하며 스스로가 대견했을 것 같다.

하얀 도시 아이들과 새까만 시골 아이들, 비흑인과 흑인, 관광객과 원주민 등 사는 곳, 생활 패턴, 인종, 입장 어떤 차이로든 구분되는 아이들이 공을 굴리고 뛰어다니며 하나가 된다. 해가 지고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 서로 구분되지 않는 모습으로 원래 친구와 새 친구, 나와 너란 분별 없이 어우러진다. 뭉클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글이 없어도 오롯이 다 전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감동이 있다. 짧게는 반나절, 더 기나긴 시간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울컥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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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차일드 - 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아동문고 104
이재문 지음, 김지인 그림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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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 대한 시선은 극단적이다. 천상 동심으로 한껏 띄우기도 하고 제멋대로 굴어 속을 뒤집어놓는 작은 괴물로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미디어에서도, 현실에서도 오락가락한다. 어린이는 그렇게 예뻤다 미웠다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본디 다 그럴 텐데 어린이는 취약하고, 어른 누구나 지나온 시기라 고유성을 무시하고 속단해버리기 때문에 더 극단이 강화되는 면이 있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을 때는 그간 어린이를 대하던 자세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앞으로는 친절하게만 대해주리라 다짐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편 천사 같은 아이들만 있지 않은 현실을 떠올리며 혐오 유발 상황에 놓여본 적 없는 작가가 제한된 경험에 근거해 충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감도 슬쩍 든다. 반대로 혐오스러운 아동학대 사건을 접하면 악마 같은 양육자의 삐뚤어진 시선에 외면당하고 짓밟혔을 피해 아동의 천진한 본심, 꺾인 천사의 날개를 걱정하게 된다. 어린이는 천사도 괴물도 아니다.
내내 흥미진진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가 지어낸, 판타지스런 변이를 일으키는 신종 질병인 MCS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은유다. 어른보다 숨김의 요령이 부족한 성장기에는 자꾸 본능이 꿈틀대고 제어하지 못한 본능이 탈출해 문제를 일으킨다. 누구나 본능은 들끓고 그 본능을 어찌 억제하는가에 따라 사회(학교)생활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문제시하는 시선에 아이들은 상처받고 낙인찍힌 제 모습을 자책한다. 누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누르면 곪게 되고 곪은 상처는 점점 커져 갈 것이다. 그래서 에너지를 적절히 방출할 필요가 있고 그때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변이는 나를 지켜내기 위한, 또 다른 나의 출현이다. 변이 전과 후, 둘 다 나다. 변이를 자기 수호의 은유, 방어 형태로 이해한다. 또 다른 나를 부정하고 싶지만, 그 또한 나 자신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성장의 과정이겠다. 어린이는 재단되지 않는 고유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사람은 다 그렇다. 다만 아이는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을 남다른 아이디어로 풀어낸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마지막 탈출이 호쾌하다. 법 테두리 밖에서 현실적인 답을 찾아가는 것으로 매듭지은 것에 동의한다. 갇혀 비극을 맞는 것은 동화가 아니고, 법을 벗어나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자칫 위험하다고 비난이 재기 될까 염려되었을 텐데 감수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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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모자 이야기 돌개바람 53
김혜진 지음, 천은실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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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일주일의 학교’를 재미있게 읽은 터라 신작 ‘일곱 모자 이야기’는 또 어떤 이야기일까 기대되었다. 삼 형제, 세 번의 시험 등 옛이야기의 중요한 숫자 3만큼 김혜진 작가의 숫자 7은 상상의 고리다. 다양한 변주에 능한 작가의 다음 7이 또 기대된다. 현실에 발 붙이고 있으면서도 폴짝폴짝 현실을 넘는 상상력 맛집의 다음 메뉴가 궁금하다.
빨간 모자, 동굴, 마녀, 잡화점, 웃음과 눈물로 치르는 물건값, 무한히 뻗는 덩굴, 이상한 가게, 모자 장수 등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고 읽어본 것 같은 이야기 소재들을 특제 상상 소스로 버무려 감쪽같이 짜깁기해 친숙하고도 어디서도 들어보고 읽어보지 않은 특별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작가는 뜬구름 잡는 상상을 손에 잡히는 이야기로 오밀조밀 촘촘히 직조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작가는 말도 셈도 잘하는 어린이였을 것 같다. 전작 ‘일주일의 학교’에서는 외자 이름으로 성별을 가렸는데 여기 아이들은 아예 이름이 없다. 초반에는 우리, 누군가, 한 아이로 지칭되다가 각자 모자를 쓰게 되면서 색깔별 모자로 칭해진다. ‘~습니다’, ‘~어요’보다 성큼 가까이 다가오는 어미 ‘~어’를 쓰는 화법도 그렇고 1인칭, 관찰자, 전지적 시점을 교묘히 오가는 것도 다 공감을 이끄는 효과적 장치로 보인다. 노란 모자처럼 믿을 수 없다고 했다가 믿게 되고 더 믿고 응원하는 독자로 조련한다.
모자는 가림막, 방어기제, 이내 바뀔 수 있는 개성, 지난 추억 같은 것일까. 그저 읽다가 막판 노랑 모자의 추적 분투, 모자 장수의 회수에 한 방 맞은 느낌이다. 아이들 주변 조연으로 등장하는 부모 어른들의 언행, 생활 형태, 마음도 전면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가랑비 옷 젖듯 스며들며 생각거리를 준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정작 대상이 되는 아이들이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글자 크기만 커졌을 뿐 담은 내용이 만만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우일 것이다. 바람의 아이들 바깥바람 시리즈 중 ‘책 밖의 작가’에 “작가의 역할은 우리 모두가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말을 하는 것이다.”라는 아나이스 닌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맥락으로 수지 모건스턴은 열 살 정도 된 아이들을 위한 글에서는 표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며, 아이들이 모든 낱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들 속에 들어있는 힘을 믿고 아이들을 낮게 보거나 무조건 베풀려는 태도를 취하면 절대 안된다고 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더 깊이 더 넓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알 수 없는데 괜한 잘난 척이었는지 모르겠다. 동등한 눈높이로 고쳐 앉아 열 살 이상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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